[기자칼럼]

그것은 언제 시작된 일이었을까


학창시절 나는 한 번도 아침을 거르지 않았다. 아무리 늦게 일어났다 하더라도 어머니는 밥을 안 먹은 나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아침식사는 내게 등교 전에 피할 수 없는 과업이었다. 지각을 면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밥을 빨리 먹은 다음 학교에 빨리 뛰어가는 것뿐이었다. 물에 밥을 말아서 허겁지겁 먹고 이도 안 닦고 문 밖으로 뛰쳐나가는 날에는 왜인지 꼭 정류장 바로 코앞에서 학교로 향하는 버스를 놓치곤 했다. 교무주임에게 엉덩이를 매질당하면서 나는 밥만 안 먹고 나왔어도 지각하지 않았으리라 속으로 되뇌었다. 고교 졸업 이후 상경하여 하숙생활을 시작한 나는 아침을 종종 걸렀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지각하는 버릇은 잘 고쳐지지 않았다.

과정을 공유할 때 우리는 최소한의 이해에 이를 수 있다. 이 말을 하기 위해서 나는 추억을 좀 더 나누려 한다. 창원은 서울에서는 제법 먼 도시다. 이십대 초반의 나는 두세 달에 한 번 정도 고향에 내려갔다. 부모님을 만나 뵙기 위해서라고 효자처럼 말하고 싶지만 그런 말은 전화라도 자주 걸면서 해야 될 것 같고, 실은 고향친구들과 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들과 있어야만 만들 수 있는 고유한 분위기가 그리웠다. 시간은 흘러 친구들은 전국 각지로 하나둘 흩어졌다. 고향에 내려가도 딱히 나와 놀아줄 사람이 남아있지 않을 즈음의 어느 한적한 날, 나는 거실에 앉아서 TV를 보다가 무심코 부엌에 있는 어머니를 봤다. 계속 바라본 것 외에 그 순간 내가 딱히 한 일은 없었다. 다음날 나는 어머니와 손을 잡고 동네 앞 재래시장에 장을 보러 갔다. 식사는 식탁에서가 아니라 시장에서 장을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자취를 시작하면서는 가끔 밥을 사먹지 않고 해먹었다. 가끔이라고 하는 것은 대략 한 달에 한 번 정도를 뜻한다. 원룸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밥솥과 주방시설에 대한 예의는 그만하면 됐다 싶었다. 남은 김치가 너무 시어 못 먹겠으면 찌개를 끓이기도 했는데 그럴 때 나는 어머니가 안쓰러웠다. 매일같이 이 지겨운 일을, 눈에 보이는 실적이 쌓이지도 않는데 계속 했다니. 이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어머니를 이해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최근에 나는 평소에 가까이 지내고 호의를 표명했으나 딱히 해드린 것은 없는 어떤 분을 위해 이런저런 요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전혀 지겹다거나 번거롭지 않았다. 지겹지도 번거롭지도 않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순간이라는 것이 물론 항상은 아니겠지만 있었다. 어머니는 내 생각보다는 훨씬 더 자주 이런 마음으로 새벽에 눈을 떴을 것이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안쓰러운 분이 아니라 존경받을 만한 분이었다. 어머니와 더 친해진 것 같은 기분으로 나는 전화기를 들었다. 무정에서 동정으로, 다시 동정에서 우정으로 나아가는 것이 이해에 이르는 길인가보다. 집에 가고 싶게 만드는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들려왔다.

박성태 기자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8 22:30: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