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우칼럼]

우리가 건축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

김윤정
건축학과 석사과정



건축학과 친구들의 삶은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모두가 잠이 드는 시각인 밤은 낮과 같고, 밤 12시가 되어서야 ‘이제 시작이다’라는 말을 할 수 있다. 학기 중 건축과의 보통 하루 일과를 얘기하자면, (물론 남다른 생활 패턴을 가진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아침 9시 수업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정이다. 9시 정각에 침대에서 깨어난 친구, 씻지도 못하고 엉망인 모습으로 강의실 책상에서 잠이든 친구. 편의점에서 사온 샌드위치로 아침을 때우는 친구.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를 되뇌며 멍하게 앉아있는 친구 등 과연 이곳이 붉은 청춘의 대학교 강의실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모든 학과 수업 일정이 끝나면 그때부터 과제를 시작한다. 보통 일반적인 학과 학생들은 자유 시간을 가지겠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다. 금전적인 필요로 인해 하는 아르바이트 역시 학과에서 요구하는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서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건축학과에 애인을 둔 남자 친구 혹은 여자 친구들은 과제로 인해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머무르고 있는 애인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백이면 백 모두가 애인에게서 “과제를 시간 될 때 미리미리 해두지 않고 왜 밤에 하냐?”라는 질문을 한다. 이 말을 들은 건축학과 친구들은 그저 머리가 하얘질 뿐이다. 우리의 힘든 상황을……. 날마다 밤을 새도 모자라는 시간을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어떻게 이해시킬지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학과의 애인을 둔 사람들끼리 술자리가 생기면 똑같은 고민을 주고받게 된다.

우리는 왜 24시간이 모자랐을까? 5년제를 졸업하고 석사과정 중인 지금, 이제야 깨닫지만 그땐 융통성이 없었던 듯하다. 그냥 욕심 없이, 디자인 철학 고집 없이, 내가 원하는 건축을 향한 도전정신 없이 과제의 완성에만 목표를 두고 달렸더라면 14주 수업과는 상관없이 한 달 내에 끝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정성 없는 건축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겼다.

한 번은 5일 동안 뜬눈으로 버틴 적도 있었다. 온 몸이 으스러지는 듯 했고 사람이 밥을 먹으면서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최종 마감을 앞두고 2일째 밤은 그럭저럭 조금 피곤한 정도였고, 3일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앉아 있는 상태에서 몸이 흔들리고 어깨에서는 바늘로 찌르는 고통이 느껴졌다. 아직까지도 내 오른쪽 어깨는 마우스를 한 시간 이상 사용할 경우에 그때의 증상이 나타난다.

이처럼 밤새는 일이 잦고 강한 끈기를 요구하는 만큼 낙오자도 많다. 1,2학년쯤에 적성과 맞지 않음을 깨달은 친구들은 일찍이 전과나 편입을 하게 되고, 그 시기를 놓친 경우 1~2년 휴학을 하기도 한다. 학부에 입학할 당시 총 14명의 여학생이 있었는데 졸업식엔 총 4명의 여학생 뿐이었다. 다들 건축학과를 떠나거나 휴학으로 인해 학교에 없었다.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네덜란드 건축학과 여자아이를 알게 되었다. 정말 놀라웠던 것은 이 친구도 한국에서 공부하는 나와 다를 것이 없었다. 늦은 저녁시간까지 과제를 하고 있거나 구글 검색을 통해 외국에 있는 건물을 조사하거나 건물 모형을 만들며 밤을 새다가 모형 재료를 침대와 이불삼아 잠을 자거나 아침에 잠을 자느라 눈을 뜨면 점심을 먹게 되는 상황 등 모든 것이 나와 닮아 있었다. 서로가 먼 곳에 살고 있지만 같은 고생을 하고 있고 그것을 공유하는 대화를 통해 공감하며 위로가 될 수 있었다.

건축학과 학생으로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적어보라면 A4용지 10장을 채울 수도 있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버텨낼 수 있었던 근거는 건축계획만이 갖고 있는 매력 때문이다. 학교 수업 과정에서 건축물을 완성했을 때의 뿌듯함,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공모전에서 오는 즐거움은 삶의 활력소이다. 2명에서 5명까지 공모전의 규모에 따라 적당한 인원이 모여 하나의 건물을 완성해 나갈 수 있고, 건물이 아니라도 공원이나 가로 공간 계획, 가구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할 수 있다. 공모전 주제에 맞는 디자인을 완성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모으고 서로의 의견에 대해 비판하거나, 긍정적인 아이디어는 취합하여 더욱 좋은 결과물로 완성해나간다.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하루 종일 한 공간에 같이 숨 쉬며 토론하고 작품을 만들기를 반복한다. 점심 저녁을 함께 먹은 후 밤 12시 근처로 배달시켜먹는 두 마리 치킨의 맛이란 그 어떤 고급 음식에 비할 수 없을 만큼 감동적이다. 몸이 피곤하고 정신이 몽롱한 상황에서도 밤에 먹게 될 야식만 생각하며 힘내서 작업하곤 했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학기를 투자하여 완성한 작품으로 입상을 하면 그간의 힘들었던 기억들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해냈다는 기쁨과 뿌듯함 스스로에게 기특함 등 엄청난 성취감을 맛보게 된다. 이 맛에 또 다음 공모전을 계획하게 된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8 18:4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