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발언대]

이런 환경인데도 좋은 직업?


시간강사.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대학교에서 일하고 선생님 혹은 교수님 소리를 들으니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아니 대학교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면 아주 좋은 직장이라고 한다. 특히 여자라면 결혼해서 직장도 다니고 내가 맡은 강의가 끝나면 바로 집에 와서 살림도 하고 방학 때는 집에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직장이 없다고 주위에서 난리다.

나는 시간강사이고, 여자이고, 기혼자이다. 시간강사라는 직업을 가졌을 때만 해도 이 직업이 여자에게는 더없이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을 준비하고 임신을 준비하면서 이 생각은 나의 착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주위에서는 말한다. 주 5일 근무도 아니고 하루에 3~4시간, 많으면 5~6시간을 일하고 시간당 꽤 좋은 보수를 받으면서 일한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 직업에 발을 들이 놓기 전까지는, 시간강사에게 불리한 법이 생기기 전까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원하는 요일, 내가 원하는 강의, 강의시간까지. 마치 지명 받아 일하는 일일노동자처럼 방학이 끝나가고 개강이 다가올 쯤 언제, 몇 시간을 어떤 강의를 할지 궁금해 하고, 혹시나 이 학교에서 이번 강의가 없는 것은 아닌지 전전긍긍하면서 다른 학교의 일자리를 기웃거리기도 한다. 나는 두 곳에 강의를 나가기 때문에 혹시나 이 두 학교의 강의가 겹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매 학기마다 생각을 한다.

강의가 시작되면 강의 준비, 학생들의 과제 피드백, 시험 준비, 성적처리를 하고, 가끔은 다른 선생님, 교수님 심지어 행정직원 선생님, 조교의 눈치를 볼 때도 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일에 신경을 쓰다 보면 가정에 소홀해 지기 일쑤이다.

여자라고 해서 경력에 공부에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또한 결혼 후에도 임신 후에도 출산 후에도 일하고 공부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시간강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결혼 했으니까 임신 했으니까 아이가 있으니까 그만 두는 분들도 계신다. 본인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위에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기 때문이다.

시간강사는 출산휴가라는 것도 없고 한 학기만 쉬고 다시 할 수 있는 그런 직업도 아니다. 또한 결혼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사라도 간다면 장거리 출퇴근이 될 것이고, 근처 가까운 곳으로 다시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아프다고 휴가를 내고 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강도 쉽지 않고 보충강의를 하는 것도 이것저것 확인해야 하고...

나도 장거리 출퇴근을 하다 유산을 하는 힘든 일도 있었지만 이러한 상황 때문에 하루 이틀 쉴 수도 없고 당장 그만 둘 수도 없는 상황이 있었다. 이렇게 되니 축복받고 행복해야 되는 결혼, 임신, 출산 때문에 항상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 갈림길에 서게 된다.

내가 좋아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지만 회의감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러한 환경에 지치지 않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에 보람을 느끼면서 일하고 싶은 생각뿐이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7 22:3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