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우발언대]


메뚜기신세 대학원생


대학원생들의 삶은 고단하다. 만20세가 지나면 법적으로 성인이지만 대학진학률이 80%에 육박하는 한국에서 대학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잡은지 오래이기 때문에 대학생들도  고등학교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졸자 대다수는 실질적으로는 학부를 졸업해야 그때부터 스스로를 성인처럼 인식하고 책임감을 갖게 된다. 대학교를 졸업하면 취업을 하거나 유학을 가거나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창업을 하는 등 진로가 갈린다.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하든 이제부터는 정말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시점이다. 홀로서기에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조건은 경제적인 독립이다. 뿐만 아니라 20대 중반이 넘어가면 부모와의 동거가 갈등을 일으키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니 독립해서 살고 싶은 욕망이 몽실몽실 피어오른다. 이 역시 경제적인 여유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우리 대학원생들처럼 공부를 하기로 결정했다면 이제부터는 이른바 ‘직업으로서의 학문’의 세계에 진입하게 된다. 학문에 몰두하는 것이 우리들의 제1순위 노동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저절로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며 따로 일을 하지 않아서 돈이 없으면 입에 풀칠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아무리 학문에 대한 열정이 대단해도 열정 그 자체만으로 먹고 살 수는 없는 것이다. 또래의 직장인 친구들은 꼬박꼬박 월급을 받아 차도 사고 재테크도 하지만 대학원생 특히 이공계보다 열악한 처지의 인문사회계열 대학원생들에게는 이 모든 게 남의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그래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학원생들은 몇 가지 부류로 분화된다. 우선 집에 여유가 많아서 여전히 원조를 받는 유형이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이제는 성인인지라 집에 손 벌리는 것이 민망한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이런 사람들은 기댈 곳이 있는 처지이기에 다른 대학원생들보다 나은 처지라 할 수 있을 수도 있겠다. 이와 대척점에 있는 유형은 최저생계비도 안 되는 돈을 쪼개고 쪼개서 궁핍한 생활을 힘들게 영위해 나아가는 대학원생들이다. 이른바 ‘정신적 귀족’이 되는 것에 위안을 삼고 남루한 일상을 어떻게든 견디는 친구들이 바로 이들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 주변에서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들은 바로 이 두 유형들의 중간쯤 되는 여기저기 아르바이트와 날품팔이를 하느라 분주한 대학원생들일 것이다. 시간당 수입이 가장 높은 학원 강의나 과외부터 시작해서 녹취풀기, 번역 기타 등등 가리지 않고 일한다. 그러다가 가끔 주객이 전도되기도 한다. 공부를 하려고 일을 하는 건지 일을 하면서 취미로 공부를 하는건지 상황이 헷갈린다. 늘 마음은 불편하고 무겁다.

학교 안에서 조교일이나 행정일을 하면 동선도 짧고 다시 공부에 몰입하는데 드는 시간과 버리는 시간도 현저하게 적으며, 보다 결정적으로는 안정적인 수입이 확보되어 심리적으로도 편하다는 장점을 들면서 이런 일들을 선호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장학금이 넘치면 금상첨화지만 그렇지 못한 걸 어쩌겠는가. 그래서 학교에 일자리라도 생기면 밖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좋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경쟁이 치열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마저도 자리가 한정되어 있어서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급여가 아주 야박한 수준인 경우도 많다. 대학원에 진학한 이상 세속적인 부귀영화와 안락한 삶은 내게서 멀어진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곤궁하고 궁핍하게 살고 싶은 것은 아니다. 기본적 생활만은 가능하게, 최저생계비 정도는 교내에서 문제없이 해결할 수 있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가진다.

물론 단점도 있겠지만 유럽처럼 대학원생을 학생이 아닌 노동자로 여겨 학비 면제에 월급까지 주는 시스템이 부러운 것은 남의 떡이 커보여서일까. 이공계가 상대적으로 월급을 많이 받는다고 말하지만 밤을 지새우면서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가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많다’라는 표현이 맞는지도 의문이다. BK21 최다선정학교라며 떠들썩하지만 그 혜택도 일부에 돌아갈 것이며 거기에서 배제된 대학원생들은 또다시 나의 본업은 무엇인가하는 자괴감에 시달리면서 학문적 고민이 아닌 생계전선에서의 고민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할 것이 눈에 선하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8 18:2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