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클로즈업]

클로즈업의 기적

남다은(영화평론가)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들 중 하나는 엄마(김혜자)와 아들(원빈)이 서로를 응시하는 장면들, 특히 대화 장면이 등장할 때다. 영화는 마주보고 있는 두 사람을 대개의 경우 각 인물들의 얼굴 클로즈업을 오가며 찍었는데, 엄마와 아들이 서로를 응시하는 이 장면들은 우리에게 종종 당혹감을 안겨준다. 왜냐하면 이 장면들에서 엄마와 아들 사이에는 상대의 시선이나 언어에 대한 리액션이 부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이들 각각의 얼굴은 서로로부터 철저히 고립되고 단절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얼굴 클로즈업은 교감이나 소통, 혹은 내면의 표현이 아니라, 완전히 텅 비었거나 온전히 홀로 충만한 표면처럼 보이면서도 특정 인물에게 예속되지 않은 정념 그 자체로서 엄마-아들의 서사를 넘어서는 잉여다.

한 편의 영화를 예로 들었을 따름이지만, 영화 속에서 클로즈업은 단지 대상의 이미지를 확대하는 기술적 차원을 넘어서 현실에서는 우리가 감지할 수 없는 시공간을 확장해주는 영화에서만 가능한 욕망이자 마법이다. 일찍이 영화 이론가 벨라 발라즈는 클로즈업 쇼트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여기던 삶의 내밀한 뿌리들을 발견하고 이미지를 확장시킴과 동시에 깊게 만들며, 새로운 것들을 보여주면서 새로운 것의 의미 또한 드러낸다고 찬탄을 보낸 바 있다. 프랑스의 화가 페르낭 레제 또한 클로즈업은 “부분적인 것들을 인격화”시킨다고 말했는데, 우리는 스크린 속에서 클로즈업된 담배꽁초 하나, 단추 하나, 시계 하나가 그 어떤 인물보다 빛을 내며 불가해함과 신비로움, 두려움을 자아내던 순간들을 기억해낼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클로즈업은 우리의 현실에서 우리가 이전에는 체험하거나 알지 못했던 방식으로 세계의 여러 측면들을 그 어떤 위계질서에 근거하지 않고도 온전히 감각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하는 것이다.

철학자 질 들뢰즈가 그의 위대한 저서 <시네마>의 첫 번째 권인 <운동-이미지>에서 언급한 “감정 이미지”의 맥락도 클로즈업의 존재론과 연결된다. “클로즈업은 객체를 모든 시공간적 좌표로부터 추상화한다. 다시 말해 클로즈업은 객체에게 하나의 실체로서의 지위를 부여한다. 클로즈업은 크기의 변화를 내포하고 있기는 하지만 확대가 아니라 절대적 변화이며, 표현이 되기 위해 변용이기를 중단하는 운동의 변화다.” 한 인물에게, 혹은 한 시공간에, 혹은 한 장면에 속해있으면서도 그 모두로부터 분리되어 자율적인 영역으로 존재할 수 있는 역량이 클로즈업에게 있다. 위대한 감독들은 그 역량을 이용하여 2차원적인 시공간을 전혀 다른 깊이와 층위의 영역으로 이행시키고, 대사나 연기, 혹은 다른 영화적 장치 없이도 효율적으로 그 영역의 문을 여는 법을 탐구한다.

이를테면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의 무성영화인 <잔다르크의 수난>(1928)에서 우리는 잔다르크의 절규와 분노와 고통의 신음소리를 듣지 못하지만, 지속적으로 클로즈업 되어 스크린 위를 채우는 마리아 팔코네티의 얼굴을 보며 그 이상의 감정적 동요를 경험한다. 그 때 마리아 팔코네티의 얼굴은 단순한 개별 인간의 내적 표현물이 아니라, “영혼의 끔찍하면서도 근본적인 맨살의 상태”(자크 오몽, <영화 속의 얼굴>)이자 하나의 역사이며, 그 역사가 포괄할 수 없는 어떤 공백이자, 언어로는 도달 불가능한 슬픔과 잔혹함의 영역이다. 우리는 이 영화에서 그녀의 얼굴을 대체할 다른 무엇을 떠올릴 수 없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우리는 그녀의 클로즈업 앞에서 얼굴의 미세한 변화와 움직임을 더 가까이, 더 자세히 보고 싶다는 호기심과 그 얼굴의 압도적인 숭고함이 불러일으키는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는데, 이 모순된 감정이 우리를 매혹시키는 것이다.

덧붙여, 전체화면과 클로즈업을 컷으로 나누지 않고 전체화면에서 바로 줌(초점길이가 변하는 렌즈를 사용해서 앞으로 당기면 클로즈업이 된다)으로 클로즈업을 하는 예들도 있다. 카메라가 이동하지 않고 렌즈를 당겨서 대상에 근접하게 되는 이런 경우, 우리는 공간적 밀도의 순간적 변화를 느끼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홍상수의 영화에서 종종 사용되는 줌인 클로즈업이 바로 그런 감흥을 우리에게 준다. 이를테면 <북촌방향>에서 집 창가에서 갑자기 저 멀리 보이는 북한산을 당겨서 담아낼 때, 프레임 안에서 뿌옇게 일렁이는 북한산은 더 이상 우리에게 친숙한 ‘그’ 산이 아니라, 영화 속 세계에 불쑥 꿈처럼 등장하는 초현실적인 영화적 시공간으로 탈바꿈한다. 홍상수는 줌렌즈가 몽타주 없이도 영화적 공기를 가장 효율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수단이라고 말한 적 있는데, 아마도 촬영현장에서 직관에 따른 판단을 중시하는 그에게 줌은 그 직관을 바로 그 순간 영화 속에 구현하게 해주는 멋진 도구일 것이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8 16:3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