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빨래


맑고 파란 하늘이다. 품을 수 없는 하늘처럼 보인다. 파란 하늘에 비행기가 흰색 선을 그으며 지나간다.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시간의 궤도가 그려진다. 조금씩 조금씩 나아간다. 하나의 풍경. 곧 흐트러질 것이다. 간직해왔던 몇 가지 생각을 지워버린다.

오래 전, 시간 위에 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간을 붙잡아야 한다고 스스로 말했다. 그리하여 선명한 흔적을 가슴 속에 그어야 한다고 말했다. 살아갈 삶이 유한하므로 아로새긴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언제부턴가 그런 생각을 지워버렸다. 묘비명에 많은 문장을 써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한밤중 강변북로를 달린다. 강의 차가운 비린내가 차창을 넘어와 나를 훑고 지나간다. 자동차 바퀴가 아스팔트 도로를 단단히 밟고 지나가는 소리. 라디오에서 조삼모사(朝三暮四)를 비판한다. 원숭이들에겐 당장 지금이 중요한 것 아닌가, 나중 저녁을 생각할 겨를이 있는가 하면서. 미래를 생각하는 삶이, 현재의 삶을 갉아먹지 않겠느냐고. 조용한 미소를 짓고는 입모양을 다시 바로 잡았다. 삶은 이런 것이야, 라고 말하는 같아 라디오를 껐다. 제한 속도 80km를 준수하기 위해 브레이크를 서서히 밟는다.

아주 가끔은 세상을 제멋대로 상상해본다. 시간을 다시 설정하고, 사람들과 풍경을 다시 조각해놓는다. 그러다가 어느새 태엽이 풀린 듯, 세상의 중력들이 들어서 부유했던 것들을 지상으로 끌어내린다. 무엇이 진짜인지 모른다. 당분간 규정하려는 모든 것들을 거부하기로 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려는 모든 것들을.

정오의 시각
맑고 파란 하늘이다.
그 파란 하늘에 비행기가 하양을 그리며 지나간다.
그 하늘 아래 빨래를 넌다.


박해경 기자. efferus21@gmail.com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8 00:5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