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동향]

이우춘희 (前 이화여대 아시아여성학센터 연구원)

아시아여성주의 연대를 상상해 낸다는 것, 상상력을 함께 공유한다는 것



1977년 이화여대에서 처음으로 여성학 학부수업 강의가 개설되었고, 한국의 여성학 역사가 30여년 넘게 축적되어왔다. 이러한 성과를 토대로 아시아 여성들의 경험과 정체성에 기초한 여성학 이론과 실천방안들이 모색되었다. 아시아 여성들의 국제적인 교류와 연대 필요성을 바탕으로 1995년 이화여대 아시아여성학센터가 설립되었다. 1997년부터 아시아여성학 교과과정이 개발되고, ‘아시아 여성’, ‘아시아여성학’이라는 새로운 범주 및 개념이 등장하였다. ‘아시아’는 구체적 공간/현장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여성 주체들이 ‘아시아 여성’으로서의 중층적 정체성을 수행해가면서 연대적 실천을 통하여 창출해내는 지평이다. 본지에서는 새로운 여성주의 지식생산으로써 ‘아시아 여성학’의 등장과 ‘한국 여성학’의 인식론적 접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아시아 여성학’의 함의하는 바를 살펴보고자 한다.


여성주의적 지식을 제도화하는 정치학

김은실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The Politics of Institutionalizing Feminist Knowledge: Discussing “Asian” Women’s Studies in South Korea” 라는 글을 통해, ‘서구(여성학의 기원)’와 ‘아시아(한국에서 여성주의 지식생산을 위해 새롭게 떠오르는 맥락으로써)’에 관한 한국여성학의 인식론적 접점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아시아’라는 용어를 이해하고 전유하는 방식은 각기 다양한 층위에서 다르며, 심지어 한국에서 ‘아시아여성학’ 담론에 참여하는 여성주의 학자들 사이에서도 다르다. 동시에 여성주의자들은 글로벌 담론이 여전히 국민국가 발전모델에 기초해있으며, 글로벌 담론이 아시아를 초국가적 기업자본의 파트너로서, 생산성과 이윤이 있는 시장으로써 ‘아시아’를 동원해왔다고 많은 염려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시아 국가의 여성주의 학자들은 글로벌화되고 재지역화되고 있는 아시아에서 여성에 관한 질문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 논의해야 하며, 또한 여성주의자들이 새로운 의사소통의 공간을 만들어 가는데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논의해야 한다.

우선, 한국여성학 발전과정을 살펴보자. 한국에서 여성학 발전과 인식론적 틀로써 보편성과 특수성 (1984-1994)의 시기가 있다. 여성학은 개념과 이론적 틀 모두 서구의 경험에 바탕 한 것이라고 비판을 받았고, 그래서 여성학이 한국의 특수성에 대답해야 하는 압력을 느꼈다. 특히 ‘특수성’은 ‘한국적,’ ‘서구와 다른 것’으로 간주된다. 보편성은 주로 서구 이론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한국적’이고 무엇이 ‘서구적’인가? 우리/한국적/민족주의 대 여성주의적/서구적/국제주의라는 이분법 대신에 제 3의 영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새로운 준거 집단인 ‘아시아’에 초점이 맞춰질 필요가 있다.

둘째, 여성학의 제도화와 ‘젠더’의 전문화(1995-2004)가 그 다음 단계이다. 이 시기의 주요한 물음은 한국여성학이 서구의 여성학과 어떻게 다른지, 현실에서 여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성학이 정부 성주류화 정책과 여성운동에 어떻게 통합될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IMF경제위기로, 여성들은 노동시장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여성들은 신자유주의 세계시장에서 독립된 개인이 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인 전문적 지식을 얻는 것에 눈을 돌렸다. 그러면서 ‘아시아’가 새롭게 부상하였다. 여기서 아시아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 동아시아 자본주의 발전의 독특한 성격의 설명에 유래한 아시아적 가치의 문화적 특수성에서 나타난 자신감의 산물이다. 둘째, 국민국가를 대표하지 않는 새로운 연대체로써 아시아의 부상이다.

셋째, 한국에서 여성학을 문제화하는 단계(2005-현재)가 있다. 한국에서 초기 여성학연구에서 질문은 ‘한국’여성학에서 보편성과 특수성이었다. 1990년대에는 한국여성학의 특수성을 위해서 기반으로 한 서구와 다학제간 연구 범위가 문제화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적 경험을 의사소통하고 해석할 수 있는 준거와 의사소통의 영역으로써 다른 영역의 재발견을 하도록 하였으며, 그것이 바로 ‘아시아’이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한국여성학 내에서 ‘아시아’의 범주의 정치화는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첫째, 아시아에서 여성학(women’s studies in Asia)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있는 여성학의 축적과 통합을 의미한다. ‘아시아’라는 단어는 특정 지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며, 그 지역에서 나타나는 여성학과 연결되어 있다. 둘째, 서구와 다른 공통의 식민지 경험과 근대세계사에서 배제된 경험은 ‘비서구’라고 흔히 인지된다. 그러나 식민지의 경험을 ‘아시아’로써 하나로 묶기 어렵다. 그렇다면, 서구/근대 경험으로부터 배제는 반드시 아시아의 경험을 구축하는지에 대한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셋째, ‘아시아’라는 단어의 사용은 정치적인 수행을 획득할 수 있고, 이는 기존의 ‘보편적,’ ‘일반적,’ ‘서구’라는 가치가 있는 여성학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아시아에서 여성학(women’s studies in Asia)’은 아시아와 여성학을 문제화시키는 정치적인 영향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아시아여성학(asian women’s studies)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이는 비판적으로 ‘서구/보편’ 여성학과 ‘국가적’ 여성학을 문제제기 하는 것이다. 넷째, ‘아시아’가 국경을 넘는 네트워크의 의미를 지니는 아시아-간 여성학 (Inter-Asian Women’s Studies)이 있다.


‘아시아’적인 것의 의미 생산과 아시아 여성학

이상화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의 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아시아/아시아적인 것의 의미와 아시아 여성학의 관계에 대한 고찰이 나타난다. 저자는 ‘아시아’를 지리적/인식적 공간으로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새롭게 형성되는 과정 속에 있는, 진행 중인 관념(idea)으로서 맥락에 따라 지속적인 의미 생성을 허용하는 기표로서 이해한다. 또한 ‘아시아’라는 개념을 여성주의 이론과 실천의 맥락 속에서 재개념화하고 의미화하는 일이 필요하다. 재개념화를 통해 여성주의를 아시아 여성의 관점에서 맥락화하고, 아시아는 동시에 여성주의 정치학의 인식적 공간에서 ‘생성(becoming)’되는 의미화의 범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아시아 여성학’을 이해하기 위해서, ‘아시아 여성’에 대한 개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아시아 여성을 보편주의적이고 본질주의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아시아여성학의 기획은 ‘아시아’를 넘어서서 ‘지구적 여성주의 연대’라는 포괄적인 여성주의 실천에 도달하기 위해서 아시아라는 공간과 다른 공간을 ‘경계 짓는’ 개념화를 할 필요가 있다. 찬드라 모한티(『경계없는 페미니즘』, 2005)는 “경계를 넘어서는 것을 배워야 하는 만큼이나, 경계를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경계 없는 페미니즘은 국가, 인종, 계급, 섹슈얼리티, 종교, 장애를 통과하며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경계선들이 실재함을 인식하는 페미니즘이다. 그러므로 경계 없는 페미니즘은 설정되어 있는 경계나 구획선을 넘나들면서 변혁과 사회정의에 대한 상상을 제공해야 한다. 따라서 아시아여성의 정체성은 아시아 여성들 사이의 교류와 만남을 통하여 ‘생성’되는 것이며, 다른 지역의 여성들과의 차이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아시아 여성’이라는 개념은 아시아에서 이론적으로 그리고 실천적으로 수행되고 있는 여성주의 정치학의 전략적 개념으로서, 아시아 내의 이질적인 여성들 간의 연대성과 연합을 구축할 수 있는 집단적인 권력 형성을 위한 실천적이고 전략적인 범주로서 의미를 갖는다.

여기에서 여성주의는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특정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구성된 지역적이고 상황적인 하나의 ‘현장’ 여성주의이다. 그러므로 현장 여성주의가 차이를 주제화하기 위한 전략적으로 채택하는 개념은 ‘공간성(spatiality)’이다. 시간성(temporality)은 특정한 시기에 활성화된 여성주의적 연대와 실천을 포착하지만, 차이를 중심에 두고 사유하는 새로운 여성주의의 흐름을 포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공간성의 수사학’으로의 전이가 요청된다. 공간성의 수사학은 시간성 자체를 재해석한다. 복수적 위치들의 수만큼의 복수적인 시간성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현장’은 단순히 상이한 공간성을 표현하는 개념이 아니라 역사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결정되는 다수의 시/공간성과 그 안에 살아가고 실천하는 여성 주체들을 주제화할 수 있는 개념이다.

아시아 여성학과 차이/생성의 존재론을 살펴보자. 여성주의는 여성과 남성의 차이에 주목하고, 여성들 사이의 차이를 보며, 차이/생성의 존재론에 기반하여, 차이의 차이에 기반한 차이 생산의 정치학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여성들 간의 차이에 대한 고려는 여성 경험의 다양성과 특수성을 고려하여 서로 다른 삶의 조건과 현장 속에서 여성주의 의제를 맥락화 하는 데에 유용한 전략이다.

지구적인 것은 동일성/정체성을 가진 반면, 현장은 이질성/차이를 보전한다는 이분법으로는 진정한 의미의 여성주의를 실현할 수 없다. 현장 여성주의는 여/남 차이, 여성들 간의 차이라는 차이/차이를 사유하는 차이의 정치학을 통해 여성들간의 차이를 사상시키지 않고도 여성들의 연대를 위한 가능성을 모색한다. 현장 여성주의는 역사성이라는 시간적 차원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여성주의 이론과 실천의 현장이라는 공간적 차원을 도입한다. 현장 여성주의는 범주들의 복합적인 교차점 위에서 지역적 특수성과 지구적 보편성이 동시에 파악될 수 있다. 차이/차이의 존재론을 통찰하고 수용하면서 차이의 고착성을 뛰어 넘어야 하며, ‘연대의 정치학’의 이론적 기반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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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2007), ‘아시아’적인 것의 의미 생산과 아시아 여성학, 2007 Asian Association of Women's Studies (AAWS) Inaugural Conference.
KIM Eun-Shil (2010), “The Politics of Institutionalizing Feminist Knowledge: Discussing “Asian” Women’s Studies in South Korea,” Asian Journal of Women’s Studies, 16(3).
(김은실, 여성주의적 지식을 제도화하는 정치학: 한국에서의 “아시아” 여성학)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8 06:28: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