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가 지난 2008년 실시했던 2009학년도 수시 2-2 일반전형에서 고교등급제를 사실상 적용했다는 판결이 나와 다시금 화제가 되고 있다. 현행 법령에 따르면 고교별 학력 차이에 따라 환산된 점수를 적용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어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소송을 담당한 창원지법 제6민사부는 지난 15일, 이 전형에 응시했다 떨어진 학생과 학부모 24명이 학교 측에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해당 학생들에게 위자료 70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어 “고려대가 일류고 출신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교별 학력 차이를 반영한 점이 인정된다.”며 “이는 입학 전형의 목적 등에 비춰볼 때 현저히 부당해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경우로 위법하다.”고 밝혔다.

논란이 된 2009학년도 수시 2-2 일반전형은 해당 년도에 처음 도입되었던 전형으로, 고등학교 내신 교과영역 90%와 비교과영역 10%만을 반영해 모집 정원의 15~17배수를 선발하는 1단계 서류전형과 1단계 합격자들만을 대상으로 치르는 2단계 논술전형으로 이뤄져 있었다. 문제는 내신만으로 학생들을 선발한 1단계에서 주로 불거졌다. 일반계고의 우수한 학생이 불합격한 반면 외고 등 일부 특목고에서 낮은 내신을 받은 학생들이 다수 합격한 사례가 드러나 논란이 됐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실제로 해당 년도에 정경학부를 지원한 인문계고 출신의 A학생은 내신이 1.5등급인데 불합격한 반면 외고 출신 B학생은 5.8등급의 내신을 받고도 합격한 사례가 있어 논란은 더욱 가중됐다. 특히 비교과 영역에서도 A학생은 교내 수상실적 38건, 지각 및 결석 0건 등인데 비해 B 학생은 수상 실적과 출석률에서 모두 A학생에 뒤처지는데도 1단계에서 합격했다.

 ▲권영길 의원은 일부 학생들의 생활기록부 내용을 공개하면서 고려대의 고교등급제 의혹을 제기했다.

불공정 의혹이 계속 불거지자 서태열 입학처장은 “일반고 학생 중에서도 우수한 학생들을 차별할 이유가 뭐가 있겠나. 논란과는 반대로 외고 학생이 내신이 더 높은데도 불합격하고 내신 등급이 낮은 인문계고 학생이 합격한 사례가 있다.”며 “학교별로 보정된 점수를 적용하다 보니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학교별로 각기 다른 내신점수를 일괄된 점수로 합산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이 과정에서 다른 전형에서는 내신에서 주로 과목별 , 학년별, 난이도별로 가중치를 달리 해 적용한다. 진보신당이 공개한 고려대의 소명서 자료를 살펴보면 내신 등급 조정이 3단계의 ‘교과영역 성적산출’ 과정을 통해 이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1단계는 시험 난이도와 학생 수를 고려하는 방식이다. 여기까지는 다른 대학들의 전형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2, 3단계를 거치면서 고려대는 ‘평균이 높고 표준편차가 적은 고교’에 가중치를 부여해 등급을 높였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일반적으로 특목고와 비평준화 지역 일류고 학생들의 성적이 좋고 편차가 크지 않다. 따라서 학교에서는 이들을 선발하기 위해 일부러 이런 수식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출신 학교별 가중치 혜택’은 학생 개개인의 능력이 아닌 지원자가 어쩔 수 없는 출신 학교의 성적을 입시에 반영한 것은 ‘입시 연좌제’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이 전형으로 사회학과에 지원했다 떨어져 10학번으로 다시 지원한 사회학과 이종호 학우는 “내신이 1.5등급이었는데 당연히 붙을 줄 알았던 1차에서 불합격 소식을 들으니 어이가 없었다. 처음에는 더 잘한 학생들이 있을 거라고 위안했었는데 연일 내신이 5,6등급인 특목고 학생들의 합격소식이 보도되자 화가 났다.” 고 말하며 “60명이 지원한 학교 전체에서 1차에 붙은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신생고인 이군의 고등학교(서울시 노원구 위치)에서는 수시 전형에서 단 한명도 합격하지 못하자 ‘전년도 입시 실적이 이듬해 입시에 반영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됐다고 한다.

이 의문과 관련해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은 자료를 토대로 이를 최근 3년간 고려대 합격자 수가 당시 수시전형의 합격률과 강력한 연관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수시전형은 내신을 주로 반영하기 때문에 수능 및 논술 실력이 모두 반영된 각 학교별 입시 실적과는 상관관계가 낮은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외고 사이에서의 합격률 차이를 조사하기 위해 만든 전국 23개 외고의 표본을 모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고등학교의 최근 3년간 입시 실적과 1단계 합격률의 상관관계가 0.795로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서울 지역의 한 외고는 212명이 지원해 190명이 합격하기도 해, 450명 내외인 학교 정원을 감안해도 최소 5등급까지 합격을 했다는 점이 밝혀졌다.

그러나 학교 측에서는 소송 당시 일부 소명 자료만을 제출하고 구체적인 변환 공식을 ‘영업상의 기밀사항’이라며 공개하지 않아 더욱 논란이 커졌다. 이에 대해 소송을 주도한 박종훈 경남 교육위원은 “당초 학교 측에서는 내신을 강화하기 위해 이 전형을 도입한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특정 학교에 유리한 전형을 진행시킨 것은 수도권에 비해 정보력이 약한 지방 학생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며 “대학의 자율화로 인해 평등한 교육권 보장을 위한 3불 정책(3不: 본고사 불가, 기여 입학제 불가, 고교 등급제 적용 불가)이 무너지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한편 이번 판결은 지난해 2월 대한 교육 협의회(이하 대교협)이 내린 무죄 판결과 번복되는 것이어서 대교협에 대한 논란도 잇따르고 있다. 당초 우리학교 측에서는 수시 논란에 대해 이 문제를 대교협 윤리 위원회에 회부한 바 있다. 그러나 대교협 측에서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복잡한 수식은 잘 알지 못하므로 고려대 측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라며 책임을 회피했었다. 특히 당시 협회 부회장이 이기수 현 고려대 총장 및 대교협 협회장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총장들의 협의체인 대교협이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했는지는 알 수 없다. 때문에 일부 야당 의원들은 당시 대교협이 ‘수박 겉핥기식, 눈 감아주기식’ 수사를 진행했다며 강한 비판을 한 바 있다.

고교 등급제 논란은 정치권에까지 이어졌다. 한나라당 최고의원인 정두원 의원은 “처음에 반영 비율을 공개하는 것은 학생들과 학교 사이의 약속이다. 그런데 이를 어기고 다른 방식으로 우수한 특정 고등학교 출신 학생들만 선발하는 것은 당시 고려대에 지원했던 전국의 4만 학생들과의 약속을 어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판결에 대해 입학처 측에서는 “납득할 수 없다.”며 항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기수 총장은 “대학이 우수한 학생들을 뽑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라며 말을 아꼈다. 현재 입학처에서는 아무런 반성이나 사과 절차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한편 1436명을 선발하는 올해 2011학년도 수시 2-2 일반전형은 논술만으로 정원의 50%를 우선 선발하고, 나머지 50%에 대해서는 학생부 교과 36점과 비교과 4점, 그리고 논술 60점을 반영해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선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논술 반영 비율이 늘어난 것은 모든 학생들에게 같은 조건에서 논술 시험을 치게 해 불공정성에 대한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논란 속에서 합격 소식을 받은 09학번이 어느덧 2학년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다. 올 수능은 50일도 채 남지 않았다. 고대의 고교 등급제 적용 논란에 이어 전 외교부 장관의 딸이 외무고시에 합격하고 입학 사정관이 지인에게 ‘트위터 메시지‘를 보내 합격을 보장하는 등 사회 전반적으로 공정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가장 공정해야할 것 중의 하나인 대학 입시에서 부당하게 피해를 받는 학생이 올해는 발생하지 않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