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야구는 꽤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건 뭐 동네 야구 수준이잖아?, 하하"
"여러분 웃지 마세요! 야구 좀 한다고 먼 길 온 사람들 이렇게 우습게 봐도 되는 겁니까?"

연습 중 일본 관중이 비웃자 투수로 나섰던 강효람 선수가 던진 한마디였다. 순간 관중은 조용해졌고, 이윽고 경기는 시작됐다.

결과는 53:0.
그렇게 2004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여자야구선수권대회에서 일본을 상대로 우리나라 팀은 완패 했다. 애초에 게임이 될 수 없었다. 개최국인 일본의 여자 야구는 세계최강을 자랑하고 있었고, 우리나라는 창단한지 몇 개월도 안 된 초보 선수들이 출전한 것이었다. 이런 객관적인 실력 차이는 둘째 치더라도 그저 야구가 좋아 출전한 우리 선수들의 상황은 열악했다. 명색이 국가 대표인데 코치 스태프들이 다수 온 다른 나라 팀들과 달리, 우리나라 팀은 후원사도 없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한 벌 뿐인 유니폼으로 경기를 이어왔던 것이다. 그렇게 홍콩, 일본, 캐나다가 참가한 첫 국제대회에서 우리나라 팀은 3전 3패의 기록을 남겼다.

그 후로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우리나라에선 한국여자야구연맹이 창단되고, 등록된 여자 야구단의 수만 26개에 이르게 됐다. 그저 야구가 좋아 세계대회에 출전했던 초보 선수도 이제는 한 여자야구단의 감독이자, 어린이 야구 교실의 강사가 되어 있었다. 이번 '기자가 만난 사람'에선 더 이상 야구를 빼놓곤 인생을 논할 수 없게 된 강효람 선수의 야구 인생을 따라가 보았다.

어떻게 야구를 시작하게 됐나요?

어렸을 때부터 야구를 좋아했다. 동네에 리틀 야구단 아이들이 훈련하는 것을 보고 '어! 야구단도 있네?' 생각했다. 그래서 길도 모르던 초등학교 2학년 때 한강을 돌아다니며, 리틀 야구단을 찾아다녔다. 결국 2군데의 리틀 야구단을 찾아냈지만, 여자는 유니폼이 나오지 않아 가입할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 나중에 커서 알았지만 여자를 받지 않는 핑계를 이렇게 댄 것이다. 그 후로 23살 쯤 첫 여자 야구팀이 창단한다는 소식을 접했고, 그렇게 야구를 시작하게 됐다.

'제 3지대'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유니폼도 직접 빨아 입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대회에 출전 하던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요. 야구를 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없었는지?

프로 선수들처럼 매일 훈련 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 훈련이 힘든 것은 버텨낼 수가 있다. 그러나 감독을 하면서 나이 많은 팀원도 있고, 어린 팀원도 있어 각자 바라는 것은 많고 다양한데, 그런 요구들을 모두 들어 줄 수는 없다. 그러다보니 싸우기도 하고 사이가 안 좋아 지기도 하고 팀원들이 팀을 나가기도 했다. 다들 야구가 하고 싶어서 모인 거지만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 상처를 너무 많이 받다 보니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있다.

이런 힘든 순간들에도 불구하고 야구를 계속하는 야구만의 매력이 있다면? 

이전에 야구를 할 때는 그게 명확했다. 다른 사람들이 실수 했을 때 내까 딱 잡아주는 커버플레이가 좋았다. 그런데 야구를 계속 하면서 안타 쳐도 매력 있고 잡아도 매력 있고, 이기면 이기는 대로 지면 지는 대로 즐기게 되었다. 야구 그 자체가 매력인 것 같다.  

1번 타자로 뛰고, 투수로도 활동하던데 가장 좋아하는 포지션은 무엇인가요? 

가장 티가 나지 않는 거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성격이 잘 맞고 좋아하는 포지션은 포수이다. 사람들 눈에는 잘 안보이지만 팀원들은 다들 잘한다거나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포수를 하면서 전체적으로 팀을 리드하는 게 가장 재미있다.

지금까지 야구를 해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무엇인지

두 개의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하나는 지난 2004년 세계여자야구대회이다. 처음 출전한 대회에서 홍콩, 일본, 캐나다를 상대로 3전 3패를 했다. 그 중 일본을 상대로 한 경기에서 연습하는 우리를 보고 일본 관중이 비웃자 발끈 해서 웃지 말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용기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고 나니 조금은 자신감이 생겼다. 경기는 53:0으로 완패했지만 말이다.

두 번째 작년에 홍콩야구협회가 주최하는 피닉스컵 국제여자야구대회에 출전해 홍콩을 상대로 첫 승을 거둔 것이다. 월드시리즈에서 패했던 홍콩을 상대로 거둔 첫 승이었다. 더군다나 홍콩은 국가 대표라 부르는 팀이 참가했지만 우리는 클럽 팀인 선라이즈 팀과 강팀(강여자연식야구단)이 합쳐 참가했던 경기였다.

<홍콩 피닉스컵 당시 강효람 감독의 모습>

 

아직까진 상대적으로 우리보다 잘하는 외국 선수들과 경기를 하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외국 선수들을 보면서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 여자 어린이들이 운동을 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자 아이가 운동을 하면 '너 참 특이하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런데 외국 선수들을 보면 어려서부터 클럽에서 남자 선수들과 같이 뒹굴고 럭비도 하고 한다.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공을 접한 외국 선수들에 비해 우리나라 여자 야구선수들 성인이 돼서야 공을 접한 경우가 많다. 어렸을 때 운동을 하지 못한데서 많은 차이가 발생한다고 본다. 외국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인원수도 많고 운동장도 좋고 하지만, 우리나라도 여건만 주어지만 세계무대에서 보다 빨리 (우승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2008년도에 '강여자연식야구단'이란 이름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연식야구단을 창단했는데, 창단 계기는?  

야구를 하다보면 공에 맞아 다치는 선수들을 너무 많이 봐왔다. 팀원들이 다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연식야구단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어린 아이들이 가족과 함께 야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연식야구단을 만들게 됐다. 

 

얼마 전에는 천하무적 야구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52:1의 경쟁률을 뚫고 유일한 여자선수로 경기에 참가하는 것을 보았어요. 웬만한 남자 사회인 야구 선수 못지않은 실력에 다들 놀래던 모습이 기억나는데 천하무적 야구단은 어떻게 출연하게 되었나요? 

몇 해 전 실업 야구팀을 뽑는 데에 참여해 MBC에 나온 적이 있다. 꼭 거기에 뽑혀야겠다는 생각보다는 홍보도 할 수 있고 여자도 야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참가를 했었다. 그러다 이번에 천하무적 야구단에서 일반 사회인 야구선수들을 뽑는 것을 알 게 돼 신청을 했고 테스트를 봤는데 우연찮게 통과해 출연하게 됐다. 여자 어린이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우리 팀이 그냥 남자만 뛰는 것이 아니라 여자도 뛰는 팀이라는 것을.

 

출연 후 달라진 점이 있는지? 

여자 선생님하고 남자 선생님하고 있을 때 대부분 남자 선생님한테 배우려는 선입견이 강하다. 그런데 그 이후로 아이들 저를 좀 더 많이 찾는다는 거. 그게 가장 좋았던 점이다.

  

마지막으로 야구인으로서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는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외국 선수들과 훈련을 해보고 싶고, 지도자 수업도 받고 싶다. 그리고 아직은 우리나라에 없지만 여자 리틀 야구단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야구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꿈이다.

 

우리나라에도 '야구 아는 여자'를 넘어 '야구 하는 여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론 '여자가 얼마나 하겠어?'하는 인식의 벽을 넘기는 그녀들의 홈런이 더욱 잦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