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이맘때쯤이면 대학수학능력평가 때문에 온 나라가 들썩인다. 지난 18일에 수능은 끝났지만 수험생들에겐 아직 또 하나의 관문이 남아있다. 바로 또 하나의 영역이라 불리는 ‘원서영역’이 그것이다. 대학의 입학 허가증을 받기 위해 수험생들은 마지막까지 서로 ‘눈치 싸움’을 벌이며, 거기서 이긴 승자만이 원하는 대학, 학과에 진학할 수 있게 된다.

같은 시기 대학에서도 이 ‘눈치싸움’은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11월말, 자신의 전공을 정해야하는 1학년 학부생들은 또 한 번의 눈치싸움을 벌이게 된다. 무엇이 문제이기에 그들은 또 다시 입시전쟁을 치러야 하는 걸까?

▶ 문제가 되고 있는 해당 단과대는? 

문과대학의 인문학부와 국제어문학부, 생명과학대학의 생명과학계열학부, 정경대학, 이과대학이 있다. 그리고 보건과학대학의 보건과학부가 있다. (자유전공학부의 경우 해당 학부 내에서 전공배정을 받는 것이 아니므로 제외한다.)

-학부제 전공배정 시스템

▶ 가장 큰 문제는 본인 성적도 모르고 전공 신청을 해야 하는 것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전공신청이 기말고사도 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최종 성적 공시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학점 순으로 전공 진입에 제한을 두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형편상 제한을 둘 수밖에 없다면 최소한 성적 공시 후에 신청을 받고 배정을 하는 것이 옳다. 

이에 대해 인문학부 10학번 한민 학우는 “애초에 학점 순으로 전공 신청에 제한을 둔다고 했으면 최소한 본인이 성적을 알고 신청할 수 있게 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이것은 이 자체가 모순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 이에 대한 학교 측 입장 

-상황을 보지 말고 원하는 과에 지원하라? 

학교 측에서는 모순적인 말을 한다. 교무처의 박용준 담당자는 “미리 전공신청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점수에 빗대어 현실적으로 생각하기보다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곳에 지원하게 하려함이다”라고 말했다. 즉, 본인의 학점을 알고 지원하게 되면 원하는 곳에 지원하기보다 합격 가능성이 높은 과에 지원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학점 앞에 꿈을 접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성적 공시 전에 신청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말은 모든 학생이 원하는 과에 갈 수 있을 때만 의미 있는 말로,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학생들의 선호도가 높은 소수의 학과에서 진학하기 원하는 모든 학생을 수용할 수 없고 그에 따라 “학점 순”이라는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교 측에선 이런 이상적인 말을 하기에 앞서 현실을 정확히 직시할 필요가 있다. 

-행정상의 문제로 제도 개선을 불가능 해

학교 측에서 제도 개선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행정적인 문제이다. 시기상으로 성적 공시 후에 전공신청을 받을 경우 다음 학기가 시작하기 전까지 전공 배정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여러 단과대의 수많은 학생들을 처리해야하는 만큼 시간과 인력적인 부분에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학교의 행정적인 문제는 분명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학생들 한명 한명의 미래가 걸린 문제인 만큼, 좀 더 사려 깊은 배려가 있어야한다. 인터뷰 과정에서 담당자가 보인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는 안일한 태도와 피해자들의 의견에 대해 ‘소수피해자들의 큰소리’라고 치부해 버리는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학점이란 게 원래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예상보다 높게 나올 수도 있고 기대에 못 미치게 나올 수도 있다. 현행 제도에서 “학점 순”이라는 제한이 있는 만큼 누구에게나 최선의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현실을 학생들은 알고 있다. 따라서 그들이 원하는 것은, 이런 상황에서 본인의 위치를 파악 해 차선의 선택이라도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 의미 없는 지망 순서

학부제 전공배정의 운영사항에 관한 사항을 총괄하는 부서인 교무처에서 학생들의 상황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학교 측에서는 1지망, 2지망같이 지망 순으로 신청 할 수 있는 제도가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실질적인 대안이 못 되고 있다. 

신동진(독어독문 09) 학우는 “2지망에 쓴 과는 학점 상으로 충분히 갈 수 있었지만 지망과의 120%가 넘으면 무작위 배정이 된다는 교칙 때문에 2지망학과에도 떨어졌다.”며 지망 순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위 학우의 상황을 보면 전공 선택제도의 또 다른 비합리성을 알 수 있다. 

현 상황에 대해 좀 더 극적인 비유를 사용한다면 수능점수가 발표되기 전에 대학 원서를 쓰는 셈이다. 학생들이 바라는 것은 완벽한 커트라인이 나온 후에 원서를 쓰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지금 바라는 것은 최소한 수능점수가 발표된 후 원서를 쓰게 해달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학교에는 전공재선택제도 마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이번 전공 배정이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단 한 번”의 기회인 셈이다.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지만 학교 측에서는 그만큼의 배려가 없다. 학생들의 인생이 걸린 문제인 만큼 학교에서 학생들의 심정을 좀 더 이해하고 배려 해 주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