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온 유학생 정혜(Ding Hui, 문과대 영문12) 씨는 2012년도 1학기에 수강한 ‘영문강독’에서 C학점을 받았다. 출석, 과제는 물론이고 발표도 열심히 했지만 영어 문장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시험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IELTS 6급의 영어성적으로 입학했지만 한국어로 해석하는 건 역부족이었다. 해당 과목의 담당교수는 “열심히 한 것은 알지만 외국인이라고 해서 채점기준을 달리한다면 특혜를 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설명했다.

다른 대학에 비해 낮은 기준      
본교 순수 외국인 입학생 전형은 한국어 성적을 의무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지원자들은 △본교 한국어정규과정 수료증 △TOPIK(한국어능력시험) 성적 △기타 한국어 능력 성적 △공인영어성적(TOEFL, TEPS, IELTS 중 하나) 중 한 가지 이상을 보유하기만 하면 된다. 영어성적이 있으면 한국어 성적은 없어도 지원이 가능하며, 졸업 전에만 TOPIK 4급 이상을 취득하면 된다.
서강대는 TOPIK 4급 또는 국내 대학 소재 한국어연수기관 4급 이상을 소유해야 입학할 수 있다. 한국외대는 영어 관련 전공을 제외한 전 학과에 지원하려는 유학생에게 TOPIK 3급 이상을 요구한다. 연세대의 경우 입학 시 한국어 성적 제출이 필수적이진 않지만 입학 후 한 학기 이내에 TOPIK 4급을 취득하지 않으면 한 학기 이수 학점을 최대 12학점으로 제한한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2013년 본교 정규 외국인 재학생 중 TOPIK 4급 이상을 취득한 학생의 비율은 5.4%로 전국대학 평균(22.7%)과 수도권 대학 평균(24.7%)의 4분의 1 수준이다. 연세대(41%), 서강대(36.4%), 한국외대(20.5%) 등 서울 시내 다른 사립대와 비교해봐도 현저히 낮다.
본교 순수 정원 외 입시(외국인 전형)를 담당하는 국제지원센터 김숭진 과장은 “본교는 교육부가 외국인 유학생이 졸업 전까지 TOPIK 4급 이상을 취득하도록 권장한 것을 준수하는 것”이라며 “한국어 성적을 입학 필수 요건으로 지정하면 한국어에 상대적으로 덜 친숙한 칠레, 노르웨이 등의 비아시아권 국가의 학생이 본교 유학의 기회를 제한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4급도 강의 이해는 어려워
TOPIK 4급 정도의 실력도 외국인이 ‘한국어 대학 강의’를 이해하는 데에 한계가 있는 편이다. TOPIK을 주관하는 한국어능력시험 본부에 따르면 4급은 ‘일반적인 업무 수행에 필요한 기능을 어느 정도 수행할 수 있는’ 수준이다. 대학 강의를 이해하는 것에 해당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친숙하지 않은 소재에 관해서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은 5급 이상에 해당한다.
본교 한국어문화교육센터의 한 관계자는 “한국어 교육 과정에서 규정하는 4급은 ‘짧고 쉬운 수필이나 신문을 읽을 수 있고 기본 업무 처리를 할 수 있는’ 정도”라며 “전공 수업은 전문적인 용어 사용이 많아 외국인 학생들이 강의를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TOPIK 4급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으로 평가되는 본교 한국어문화교육센터의 한국어교육과정 4급을 취득한 뒤 입학한 장선(Zhang Xan, 미디어11) 씨는 “한국어교육과정을 1년간 수료했지만 한국 학생들과 같이 팀플을 하는 경우 내 생각을 한국어로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답답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교수와 한국학생도 불편 느껴
외국인 학생의 낮은 한국어 실력은 본인과 한국학생, 교수 모두에게 불편을 끼친다. 2013학년도 2학기 ‘미디어와 문화’ 수업을 맡은 육현승(교양교육원) 강사는 “수업을 하다 보면 한국어 실력이 낮아 강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 학생이 다수 있고 제출하는 답변이 거의 백지상태인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2012학년도 2학기에 수강한 한 교양수업에서 외국인 학생과 같은 조를 배정받았다는 구영경(사범대 영교12) 씨는 “당시 외국인 학생이 한국말을 거의 할 줄 몰라서 같이 발표해야 하는 부분이 어떤 내용인지도 이해를 못해 자료 제작부터 발표까지 모두 혼자 해야했다”며 “한국어를 못하는 학생이 한국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은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수강생들도 힘들게 한다”고 말했다.
김숭진 과장은 외국인 학생의 한국어 수준에 대해 “다양한 국가의 학생들에게 입학 기회를 주기 위해 한국어 능력을 의무 조건으로 설정하지 않았지만 이에 따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8월에 외국인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본교가 주관하는 한국어 능력시험을 시행해 그들의 실력을 전반적으로 파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한 “‘졸업 전 TOPIK 4급 취득’ 항목을 보다 강화시킬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글│이예원 기자 april@kukey.com
일러스트│홍유리 전문기자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14 00:06: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