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동에 위치한 파크하얏트 호텔 24층, 이른 아침 햇살을 맞으며 로비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사이에 임세인(여·35) 통역사의 손과 눈이 분주하다. 3월 27일, 최근 유럽에서 가장 뜨거운 신인 디자이너인 줄리앙 데이비드(Julien David)의 국내 언론 매체 인터뷰 통역을 전담한 그녀는 인터뷰이를 기다리며 질문지와 과거 인터뷰 자료를 검토하고 있었다. 오전 9시 30분이 되자, 그녀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위해 줄리앙 데이비드와 함께 청담동의 한 스튜디오로 이동해 그의 2014 S/S 컬렉션 인터뷰를 통역했다. 임세인 통역사는 본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과 미국 몬트레이(Monterey) 통번역대학원을 거쳐 현재 프리랜서 통역사로 활동 중이다. 불문과를 졸업했지만 미국에서 유학을 한 임세인 통역사는 영어 통역을 주로 하고 있다.

프리랜서의 매력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패션 관련 행사, 교육 포럼, 국제 회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고, 스케줄을 유동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점이 그녀가 프리랜서의 길을 택한 이유다. “많은 분야에서 통역을 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었어요. 몸의 컨디션이나 개인적인 일정을 고려할 수 있는 점도 프리랜서의 장점이고요. 하지만 회의나 세미나가 자주 열리지 않는 여름과 겨울엔 프리랜서의 통역 일이 많지 않아 번역 업무를 맡기도 해요. 번역도 통역처럼 한 분야에 국한하기보단 논문, 기획서, 보고서 등 다양한 문서를 번역하죠.”

외국어보다 한국어가 먼저
‘통역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이지만, 임세인 통역사는 오히려 한국어를 더 잘 해야 한다고 말한다. “외국어를 한국어로 통역하는 과정에서 매 단어마다 그에 가장 잘 맞는 한국어를 바로바로 선택해야 해요. 단어 하나하나가 문장 전체의 뉘앙스를 바꿀 수도 있기 때문이죠. 또한 청중의 수준에 맞춰 단어 선택도 달리 해요. 기본적으로 청중이 어린 학생이라면 연사가 ‘ladies and gentlemen’이라고 했더라도 ‘내외귀빈’ 대신 ‘학생 여러분’이라고 통역하죠.”

사회에 꾸준히 관심 가져야      
임세인 통역사는 사회 흐름에 정통해야 하는 것도 통역사의 자질이라고 말한다. 통역을 할 때 연사가 언급하는 모든 말을 청중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공식적인 말 이외에 연사가 어떤 이야기를 할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정 주제가 있는 포럼의 통역을 맡게 되면 사전에 미리 해당 주제에 대해 공부를 하고 가요. 그런데 연사가 연설을 시작하기 전에 주제와는 관계없는 요즘 사회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청중과 사담을 나누는 경우가 많아요. 이때 연사가 언급하는 것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제대로 전달을 못한다면, 통역사의 신뢰가 떨어지고 현장 분위기도 가라앉아요. 때문에 통역사는 모든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갖진 못하더라도 신문과 책을 꾸준히 읽어 전반적인 사회 흐름을 알고 있어야 해요. 그래서 전 매일 신문과 뉴스를 챙겨보며 주요 이슈를 확인해요. 가끔 시간이 나면 여행을 가며 견문을 넓히기도 하고요.”

노동 강도가 센 직업
통역사는 고용노동부의 직업 정보처럼 ‘노동 강도가 센 편’이다. 발표자의 말을 놓치지 않고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항상 긴장해야하며 하루 종일 서있는 경우도 많다. 임세인 통역사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말로 통역사의 부담감을 표현했다. “통역사가 통역을 매끄럽게 해서 행사나 회의가 잘 진행되면 그게 당연한 것이지만 통역사 때문에 조금이라도 차질이 생기면 모든 화살이 통역사에게 돌아와요. 동시통역으로 진행되는 국제회의의 경우 8시간 동안 진행되는 경우도 많아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목이 자주 아파서 평소에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으려 하고 통역 전 날엔 말을 적게 하려고 되도록 약속을 안 잡아요.”

소득 높지만 경쟁도 치열해
그녀는 통역사가 고도의 지적 능력을 필요로 하는 전문직인 만큼 소득이 ‘전반적으로 높다’고 말한다. “통역사가 상위 소득 직업군인건 맞아요. 특히 본인이 능력이 있고 인정을 받아 수요가 많아지면 그만큼 많이 벌 수 있죠. 저처럼 통역과 번역을 둘 다 하는 통역사들도 있고요.”
그러나 그녀는 통역사의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통역사들 사이엔 현재 통역 시장이 ‘포화상태’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통역사라면 대부분 통역대학원을 졸업하는데 통역대학원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 통역 시장에 진출하는 졸업생도 그만큼 많아지거든요. 그리고 요즘엔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이 많아서 일반기업체의 경우 회의나 세미나를 할 때 통역사에게 통역을 의뢰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요. 통역사는 점점 많아지는데 통역 수요는 줄어드는 거죠.”

삶의 자세를 배우다
그녀는 통역사로 살며 의연함과 겸손함이라는 삶의 교훈을 얻는다고 말한다. “통역 경험이 쌓일수록 의연함을 배우는 것 같아요. 통역을 하면서 실수를 하면 다음 통역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실수를 하거나 그 날의 통역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최대한 빨리 잊고 다음 통역을 더 열심히 준비하거든요. 그리고 통역을 하면서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거나 본받을만한 분들을 자주 만날 수 있는 것도 통역사의 매력이에요. 그 분들의 말씀을 듣고 전달하면서 삶에 대한 자세나 겸손함을 배우곤 하죠.”

글·사진│이예원 기자 april@kukey.com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14 00:34: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