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면 시론인터뷰

표창원 전 경찰대학 교수


극단적 진영주의 버려야 정의구현 가능해



표창원 전 경찰대학 교수는 경찰대학을 졸업하고 영국 엑서터대학교에서 범죄학 석박사과정을 이수한 한국의 범죄심리학자다. 작년까지 경찰대학에서 교수직을 역임하던 중, 제18대 대선 관련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에 대해 견해를 표명하면서 대중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경찰대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교수직을 사퇴하고 국정원과 당시 정부 여당의 선거개입의혹을 제기하면서 그가 줄곧 내세운 것은 정의였다. 본지에서는 정의와 학문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표창원 전 교수와 대화를 나누었다.

본교 민주광장에서는 지난 9월 9일 오후 3시 30분에 표창원 전 교수의 강연이 열렸다. 주제는 ‘국정원 사건을 통해 진실과 정의를 말하다’였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약 150여명의 학생들이 참석한 성공적인 강연이었으나, 강연이 열리는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애초 예정된 강연 장소는 4.18기념관이었다. 그러나 학교 측이 대관을 취소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실외 민주광장에서 강연이 개최됐다. 당시 과정에 대한 소회를 묻는 것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외압이 있다고 해서 변하거나 약해지지 않습니다. 해야 할 말은 합니다. 이번 고려대 강연의 매끄럽지 못한 절차는 외려 제게 행운이었습니다. 덕분에 사회적 관심이 커졌고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과 국정원 문제를 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말 안타까운 것은, 정확히 누구의 소행인 줄은 알 수 없으나, 대학이 권력의 눈치를 보았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민족사학의 명문인 고려대가 그러했다는 것은 한국 대학들의 현주소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참가한 학생들은 다들 성실했고 또한 날카롭게 질문을 하며 강연의 수준을 높였습니다. 일베에서 활동했었다는 학생 한 명도 그곳에 와서 자신의 의견을 표하기도 했었구요. 물론 그는 제 답변을 듣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실외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토론의 장을 펼쳤다는 점에서 진정한 아고라를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정의는 보편타당하고 선명한 것



강연이 어렵게 성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표창원 전 교수는 웃음을 띠면서 여유롭게, 그러나 말을 흐리지 않는 단호한 태도로 강연 당시의 순간에 대해 서술했다. 본격적으로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앞서 말했듯 그는 지속적으로 정의를 강조하고 있다. 대선 직전에도, ‘정의는 천천히 하지만 반드시 온다’라는 문구를 표지에 달고 금년 2월에 출간된 책 『표창원 보수의 품격』에서도, 그리고 최근의 강연에서도 그러했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그리고 한국에서 정의는 왜 실현되기 어려운 것일까?

“정의 개념은 아주 분명합니다. 올바름이니까요. 법과 윤리 및 철학, 때로는 종교와 같은 것들이 정의를 규명해 왔습니다. 정의는 누구나 다 옳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정의는 실현되어야 하며 따라서 정의구현에는 응당한 처벌이 뒤따릅니다. 한편 정의는 시대에 따라 바뀐다거나 혹은 강자의 전유물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의견에 수긍할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근본적으로 정의는 보편타당하고 선명한 개념입니다. 그런데 작년에 마이클 샌델이 한국에 왔을 때 시행했던 한 설문조사에서는 한국이 정의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질문에 응한 이들 중 60%를 넘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정의가 온전히 구현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진영주의에 있다고 봅니다. 극단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는 함께 보편적 정의를 논하고 그것을 구현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양쪽 극단에 있는 세력들은 각각 반대쪽 극단을 몰아내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다른 소중한 가치들이 훼손되기 쉽습니다. 가령 표현의 자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번 저의 고려대 강연처럼 한쪽 극단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의 입을 막는 대응을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식으로는 정의에 다가갈 수 없습니다. 표현의 자유라는 것은 틀린 것도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합니다. 장을 펼쳐놓고 말한 다음에 서로 논리적으로 비판하고 토론하면 됩니다. 그러나 극단적 진영주의는 발언기회를 원천 차단하려 합니다. 결국 토론을 통한 소통의 가능성을 상실시키는 것입니다.”

표창원 전 교수는 여러 강연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월남한 반공주의자로 소개했다. 포항 출생이며 경찰대학 교수이자 일선 현장에서 형사로 활동한 그의 경력은 그를 우익세력을 지지하는 경직된 보수주의자로 보이게 한다. 그러나 그는 지난 대선 당시 새누리당이 국정원 사건을 대하는 방식과 토론에서 나타난 박근혜 당시 후보의 부족한 역량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보수주의는 전통적 가치와 정신을 지키는 것이지 특정세력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 표창원 전 교수의 생각이다. 그것은 한국사회에서의 정의구현을 위한 그의 노력과 맥을 같이 한다.



사회 현안에 대한 학계의 비판과 개입 필요



표창원 전 교수는 영국에서 공부한 박사이면서 동시에 오랜 기간 교편을 잡았던 학자이기도 하다. 그에게 한국사회에서 학문을 직업으로 삼는 이들이 어떤 자세를 가지고 어떻게 학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먼저 그는 학문의 길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말문을 열었다.

“학문을 하기로 다짐한 학생들이 먹고 살기 어려운 시대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대학에 남아 자리를 얻기 위해서는 선배들 및 교수들과의 관계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논문 주제를 선정하는 것부터도 자유롭지 못한 측면이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학문에 전념하기로 하면 벌이가 넉넉지 않아 생계유지가 곤란해지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학문하기를 결정하기 이전에 내가 이것을 해도 좋은가 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합니다.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학문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학문이 자체의 권위와 사회적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에 연연하는 공부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보여주기식 학회 개최나 실적을 쌓기 위한 논문작성은 오히려 학문의 가치를 저해할 것입니다. 학문이 사회와 단절되기 않기 위해 고민해야 합니다. 대학은 고립된 상아탑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납득할 수 없는 사안들이 사회에서 발생할 때 학계에서는 이에 대해 정확하고 강도 높게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령 이번에 교학사 역사교과서 논란이 있습니다. 일제 침략이나 친일 및 독재를 미화하는 내용들이 교과서에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학계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발언해야 합니다. 학계는 진실을 수호하기 위한 하나의 보루가 되어야 하며 공부하는 사람들은 항상 이것을 염두에 둬야 할 것입니다.”

표창원 전 교수는 학문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먼저 학문한 경험을 바탕으로 원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학문을 하다 보면 아무도 안 보는 일을 하는 것 같은 고독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논문들은 거의 읽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학문할 때는 어느 것 하나 소홀히 여기지 않는 자세를 견지하기를 바랍니다. 미래의 일은 알 수 없습니다.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작성한 논문이 읽히고 그것이 효용을 발하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박성태 기자 clsrnofu@korea.ac.kr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9 08:4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