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들이 스크린을 보고 뉴스를 전달할 때 이창훈 아나운서의 손은 점자 대본을 따라간다. 국내 첫 시각 장애인 아나운서로 화제가 됐던 그는 여전히 왕성한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 <기자가 만난 사람>에서는 국내 첫 시각 장애인 아나운서 이창훈 씨를 만났다. 한 시간여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아나운서를 꿈꾸게 된 계기부터 앞으로의 계획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Q 요즘 근황은 어떤가?

2011년부터 2013년 4월까지 KBS 보도국에서 앵커로 있었고, 활동 기간이 끝나고 지금은 ‘좋은 이웃 엔터테인먼트’라는 소속사에 들어가 있다. 현재는 KBS 2TV에서 매주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방송되는 ‘사랑의 가족’ 중 ‘이창훈의 마주보기’라는 코너를 맡고 있다. KBS 라디오에서는 ‘한 주간의 장애인 소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열심히 하는 중이다. 그리고 한국정책방송에서 ‘이창훈의 포피 초대석’을 진행한다. 가끔씩 토크 콘서트, 강연 등 비정기적인 활동들도 하고 있다. 이렇게 말하다 보니 굉장히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고 있다.

Q 유년시절, 학창시절이 궁금하다

긍정적인 성격을 가졌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이는 어머니의 영향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나는 태어난 지 단 7개월 만에 뇌수막염을 앓고 실명했다. 가족들은 여러 방법을 알아봤지만 결국 시력을 되찾을 수는 없었다. 분명 낙담하고 억울해 할 수도 있었지만 어머니는 그러지 않으셨다. 아들이 시각장애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좌절하지 않고 나를 사회에 적응시키려고 많은 노력을 하셨다. 학교는 시각장애인 특수학교인 한빛맹학교에 진학해서 음악활동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면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 이후에는 일반 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아나운서도 도전하게 됐다.

Q 특수학교를 다니다가 일반 대학교에 진학했다. 적응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아무래도 내가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적응하기에 더 쉬웠을 거라고 생각은 한다. 하지만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고, 결과적으로 난 지금 성공적이었다고 평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시각장애인 학생 비율이 높은 대학교가 몇 군데 있다. 나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그런 학교가 아닌 서울의 일반 대학교에 진학했고, 실제로 과에서 시각 장애인은 나 하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성격이 밝고 여러 활동에 참여하려는 욕심이 많았기 때문에 큰 무리 없이 남들처럼 재미있는 대학생활을 보냈다.

Q 아무래도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갖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아나운서를 언제부터 꿈꾸게 됐나?

처음부터 아나운서를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 시각장애인하면 흔히 생각하는 직업이 있다. 안마사, 사회 복지가, 특수교사 등등. 나도 마치 누군가가 정해준 것처럼 사회 복지 쪽으로 진로를 생각했다. 그런데 대학원 졸업 이후 장애인 아나운서를 모집하는 공고를 우연히 접하게 됐고, 생각이 바뀌었다. 전에 한국 시각 장애인 인터넷 방송을 했던 경험이 있어서 더 쉽게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처음 도전할 때는 ‘아나운서를 꼭 해야지!’라는 생각보단, 국내에 시각장애인 아나운서가 없었기 때문에 도전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다.

Q 방송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처음에 내가 아나운서로 활동을 시작할 때, 많은 사람들이 ‘저 사람 진행하다 실수하는 거 아닌가, 할 것 같은데…’하며 뉴스 내용보다 다른 것에 더 관심을 가졌다. 아무래도 장애인 아나운서가 흔하지 않으니까 그런 것 같다. 그러나 몇 개월이 지난 후에 한 지인한테서 “처음에는 점자 대본을 읽는 손에 눈이 갔는데, 이젠 너가 전달하는 뉴스 내용에 집중하게 되더라”라는 말을 듣게 됐다. 그때 뉴스를 전달하는 능력이 인정받은 것 같아 가장 큰 성취감과 보람을 느꼈다. 정말 좋았다.

Q 방송일은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일인데 이에 대한 불편함은 없었는가?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눈치 보는 성격이 아니다. 어렸을 때는 남과 나를 비교하고 열등감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하고, 헤매기도 했다. 하지만 나 스스로 그런 것들을 하나 둘 고치려는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런 노력으로 내가 얻은 깨달음은 내가 처한 현실이 어떻든 내가 당당하면 대인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줄어든다는 것이다. 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Q 혼자 살고 있다고 들었다. 생활하는데 불편한 점은 없나?

물론 시각 장애인이 혼자 생활하는 건 매우 불편하다. 그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불편함을 통해 이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서 나는 세탁, 청소를 할 때 이게 제대로 됐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 그 때마다 영상통화로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개선책을 찾아나가는 중이다. 불편하지만 하고자 하면 혼자 생활하는 것도 가능하다.

Q 시각장애인으로서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사는 건 어떤가? 개선되어야 할 점이 있다면.

예전에 비해 장애인 편의와 관련한 법이나 제도는 많이 발전했다. 내가 지금껏 살면서 느낀 것은 장애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개선이 같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을 내 옆의 친구, 동료로 생각하지 않는다. 불쌍한 사람이나 혹은 대단한 사람으로 우리를 대한다. 처음부터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낯설어한다. 그런 시선들이 장애인이 쉽게 사회에 섞이지 못하는 환경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한 대안은 미디어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소통의 중요한 창구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를 통해 장애인들의 일반적인 모습이 많이 노출되고 대중과 친숙해질 때 건강한 인식개선이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Q 앞으로의 목표는?

더 많은 것에 도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요즘 나눔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재능이든 물질이든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다. 또한 뉴스나 강연 이외에도 예능같은 대중적인 방송에 도전해보고 싶다. 이런 활동들을 통해 장애인들이 친숙하게 대중과 소통해 편견이 완화되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싶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만난 이창훈 씨는 한눈에 봐도 밝고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터뷰 내내 웃음을 머금고 여러 질문에 성실히 답변하던 그의 모습에서 지난날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왔는지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가 국내 첫 시각 장애인 아나운서가 될 수 있었던 건 이러한 성실성과 긍정적인 성격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창훈 아나운서의 앞으로의 도전이 더욱 기대된다.

▶아나운서 이창훈 씨는…

경상남도 진주 출생으로 태어난 지 7개월만에 뇌수막염으로 시력을 잃었다. 숭실대학교 대학원을 나와 2011년 KBS가 방송 사상 최초로 공모한 장애인 앵커모집에서 523대 1의 경쟁을 뚫고 국내 첫 시각장애인 아나운서로 입사해 화제를 모았다. 입사 후에는 'KBS 뉴스 12'를 진행하며 활발한 방송 활동을 펼쳤다. 현재는 KBS에서 퇴사해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사랑의 가족>, <이창훈의 포피 초대석>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강다현 기자(dh0918@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