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교가 2학기부터 외국어로 진행되는 교양수업과 공통교양의 폐강 기준을 수강인원 10명에서 20명으로 변경했다. 하지만 변경 과정에서 공지가 늦어 많은 구성원이 혼란을 빚었고,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폐강 기준 변경이 새롭게 적용되는 강의는 △전공 관련 교양(제2외국어) △전공 관련 교양(영문강독)과 같이 외국어로 진행되는 강의와, 공통교양 △사고와 표현 △Academic English △1학년 세미나이다. 기준 변경 이유에 대해 학적‧수업팀 관계자는 “기존 선택 교양과 핵심 교양 폐강 인원 기준은 20명이었다”며 “외국어 관련 교양과 공통 교양만 폐강 인원 기준을 10명으로 할 필요도 없고, 너무 분반이 많아 혼란만 가중됐다”라고 말했다.

외국어 수업 특성 고려 안 해
  11일, 문과대 국제어문학부 학과장들은 교무처에 ‘교양 외국어 강의 폐강 기준 상향 조정에 대한 제고 요청’ 공문을 보내 외국어 강의 폐강 기준 변화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공문에는 외국어 강의 폐강 기준 강화로 인해 수업환경이 악화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에 교무처는 16일 혼란을 최소화하고자 이번 학기에 한해 폐강 인원을 15명으로 하겠다고 발표했다. 박성철 독어독문학과장은 “이는 일시적 조치일 뿐, 현대 외국어 강의는 한 교수 당 소수의 학생을 배정해 서로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하는 추세로 변하고 있다”며 “폐강 기준 변경은 세계화와 국제화를 슬로건으로 삼는 본교의 이상에 역행하는 격”이라고 말했다. ‘교양 중국어 중급’강의를 맡은 김명학(본교‧국제어학원) 강사는 “학생 인원 수가 많으면 학생을 지도하기 위해 교실 한 바퀴를 돌고 나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개인별 지도가 어렵다”며 “외국어 강의는 1학기 때 초급반을 들었던 학생이 2학기 때 같은 교수가 여는 중급반을 듣는 게 좋은데, 폐강 기준 강화는 이를 어렵게 한다”고 말했다. 교양 중국어 중급 강의를 수강하는 이영호(문과대 영문13) 씨는 “외국어 학원에 가도 20명이 넘는 반은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늦은 공지로 혼란 빚어
  바뀐 폐강 기준에 따라 총 40강의의 외국어 관련 교양수업이 폐강됐다. 12명 학생이 수강신청해 폐강된 ‘교양 중국어 중급 수업’을 신청했던 사범대의 한 학생은 “수업에서 자기소개도 하고 수업 진행을 지난주 까지 했다”며 “교수님이 폐강 유보사유서를 제출했다고 말씀하셔서 폐강이 안 되었을 줄 알았는데, 수강인원이 15명에 미치지 못해 폐강됐다는 문자를 받아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이처럼 직접 수업을 듣는 학생에게도 사전 공지가 없어 혼란이 야기된 것이다. 본교 외국어센터 신준호 직원은 “폐강 기준이 처음 적용되는 거라 문의 전화가 많이 왔다”고 말했다. 이에 학적·수업지원팀 관계자는 “학생이 많아 폐강 인원 기준에 대한 개별 통지를 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번 사안은 2013년부터 준비된 것으로, 7월 초에 교육과정 편성‧운영 시행세칙에 대한 논의가 마무리돼, 학적·수업지원팀은 8월 4일 각 학사지원부에 공문을 보내 변경사항을 알렸다. 이에 본교 학적‧수업지원팀 관계자는 “7월 22일에 이에 대한 총장 결재가 마무리돼 시간이 촉박해 공지가 늦어졌다”고 말했다.

당사자와의 논의 없어
  폐강 인원 기준 변경 준비 당시, 문과대학과 수업담당 교수와의 논의가 없었다는 점에서 많은 우려가 있었다. 박성철 학과장은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와 강사와의 사전 논의 없이 이뤄진 갑작스러운 통보에 많은 교수님들이 당황했다”며 “폐강 기준을 정하는 건 행정적 차원이긴 하지만 교수법적 차원에서도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본교엔 외국어 교육 관련 전문가들이 많은데 그분들의 의견을 들어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명순구 교무처장은 “교무위원회에서 데이터를 보고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교수님과 협의를 통해 정해진 것”이라며 “교수들과의 논의 끝에 큰 문제가 없을 거라 판단됐다”고 말했다.

보호과목 없어져
  문과대 철학과 관할인 라틴어, 희랍어, 그리고 산스크리트어 강의는 동‧서양 고전 철학 연구에 필수적 수단인 점을 고려해 관행적으로 보호 과목으로 분류돼왔다. 보호 과목이란 규정 혹은 지침에 쓰여 있진 않지만 관례적으로 과목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폐강 유보신청서를 내면 폐강을 유보해준 과목을 말한다. 실제 본교는 △7명이 신청한 희랍어Ⅰ 강의(2014년 1학기) △4명이 신청한 희랍어Ⅰ 강의(2013년 1학기) △5명이 신청한 산스크리트어 강의(2012년 1학기) △6명이 신청한 희랍어Ⅱ 강의(2012년 2학기) △9명이 신청한 라틴어Ⅱ 강의(2012년 2학기) 개설했다.
  
  하지만 이번 폐강 기준 변경과 함께 이들 과목들이 더 이상 보호 과목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학적·수업팀 관계자는 “보호 과목 적용은 규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례적인 것”이라며 “이번에 규정을 바꾸면서 엄격하게 원칙대로 적용하자는 의견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번 학기에 신청인원 6명으로 폐강된 희랍어Ⅱ를 담당한 오지은(본교‧철학과) 강사는 “명문대라는 위상과 달리 순수학문을 배제하고 실용학문 위주로 가는 것 같다”며 “강의가 개설되지 않아 학생들이 희랍어를 배우기 위해 학원을 알아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공공연한 강사료 문제
  일각에선 폐강 인원 기준이 20명으로 증가한 것이 강사료를 줄이기 위한 조치가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익명을 요구한 본교의 한 강사는 “강사료를 줄이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 뻔히 보인다”며 “이미 이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영호(문과대 영문13) 씨는 “이번 폐강 기준 변화에 대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결국 비용, 돈 문제라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다”며 “대학이라는 곳은 학문과 연구의 질 향상이 중심이 돼야 하는데 효율성을 따져 수강인원 폐강 기준을 다시 늘리는 것은 대학의 본질에 역행하는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명순구 교무처장은 “전임교수의 강의 비율과 강사의 강의 비율이 우리 학교가 굉장히 안 좋다”며 “이것이 한동안 과목 개설시 체계적으로 조정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판단해 이번에 바뀌게 됐다”고 말했다.

박하나 기자 ㅣ knock@kukey.com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5 12:3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