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부터 서울시가 진행한 ‘무단횡단 근절을 위한 저승사자 퍼포먼스’의 모습이다. 이번 퍼포먼스는 15일 강남역을 시작으로 △서울시청 △세종대로 △신촌 △청량리역 △송정역 등 서울시내 총 22곳에서 진행됐다. 퍼포먼스를 담당한 서울시 교통운영과 문기영 주무관은 “서울 시내에서 연간 교통사고로 400여 명이나 목숨을 잃는다”며 “그 가운데 약 31%가 무단횡단으로 사망해 무단횡단의 위험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퍼포먼스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실제 퍼포먼스를 진행한 6명은 어린이 교통안전 뮤지컬 ‘노노이야기’ 출연 배우들이었다.
▲ 25일 청량리역 앞, 경동시장 등에서 무단횡단을 방지하기 위해 저승사자로 변장한 뮤지컬 배우들이 퍼포먼스를 펼쳤다.사진 | 차정규 기자 regular@kukey.com
시민들은 멈춰있는 저승사자들과 할머니, 그리고 젊은 남자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한 40대 여성이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자 멀리 감치 지켜보고 있던 시민들이 한 둘씩 다가와 연신 카메라 세례를 터뜨렸다. 처음 사진을 찍기 시작한 이혜연(여‧43) 씨는 “생소한 경험이어서 딸에게 보여주고 싶어 사진을 찍었다”고 말했다. 1~2분이 흐르자 뒤에 있던 서울시 관계자가 손짓을 하자 퍼포먼스 팀은 일어나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저승사자 분장을 하고 퍼포먼스를 한 한나겸(여‧32) 씨는 “퍼포먼스를 하다가 어르신들이 무단횡단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고, 아이와 함께 한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무단횡단이 위험하다고 말해주는 걸 보면 뿌듯하다”고 말했다.
청량리역에서의 퍼포먼스 후, 일행은 경동시장으로 이동했다. 7개의 횡단보도가 있는 청량리 청과물 도매시장 앞 사거리에서 같은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시민들의 반응이 조금 달랐다. “이게 뭐예요?”라고 허공에 묻는 시민들, ‘뭐야’라는 입 모양이 곳곳에서 보였다. 하지만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퍼포먼스는 무언(無言)이 원칙이었고 푯말에 쓰인 글만이 시민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한나겸 씨는 “말을 하면 연기가 어색해질 수도 있고, 충분히 푯말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마임(mime) 형식을 띤 퍼포먼스에 시민들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왜 할머니가 무릎을 꿇고 저승사자 앞에 앉아있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문기영 주무관은 “무단횡단으로 사망하는 사망자 비율 중 나이가 많은 여성의 비율이 가장 높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할머니가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60대 이상의 여성들은 퍼포먼스를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반응이 많았다. 한 60대 여성은 “푯말에 쓰여 있긴 해도 말을 안 해주니까 진짜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청량리역에서는 퍼포먼스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주변 2~30대의 반응에 기대 60대 이상의 어른들이 저승사자를 보고 가볍게 지나칠 수 있었던 반면, 상대적으로 2~30대가 없던 경동시장에선 어르신들이 저승사자의 메시지를 더 강렬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저승으로 인도하는 무서운 저승사자의 분장은 시민들의 바쁜 발걸음을 막기엔 부족했다. 횡단보도 바로 앞에서 퍼포먼스가 진행 중인데도, 시민들은 무단횡단을 했다. 버스정류장에 막 도착한 167번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달려가는 사람. 무거운 장바구니를 끌고 가느라 신호등을 놓쳐 빨간 불에 횡단보도로 뛰어가는 사람. 순간의 운에 몸을 맡긴 사람들의 눈에는 횡단보도의 빨간 불도, 검은 저승사자도 보이지 않았다.
박하나 기자 ㅣ knock@kukey.com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8 09:5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