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안암동 개운사1길 21-3(콩진호 건물)에 ‘영업 시작한 지 5개월 만에 재건축 통보, 왜 나를 받았습니까!’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 3장이 내걸렸다. 카페 ‘델마르’의 이진원 사장, 카페 ‘콩진호’의 차광호 사장, ‘안암동 김치찌개’의 김용석 사장은 건물주 유병훈(남·55) 씨와 명도소송 중이다. 콩진호 건물주는 재건축을 이유로 임차인들에게 가게 명도를 요구했다. 안암동 인촌로24길 27(B-Pub 건물)의 임차인들도 같은 이유로 명도소송 중이다. 김제완 본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모호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상임법)의 개정을 위해 사회 전반적인 고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논란의 중심이 된 상임법
  상임법은 사회·경제적 약자인 상가건물 임차인의 권리 보호와 임대인의 과도한 임대료 인상 억제 등의 목적으로 2001년 12월 29일 제정됐다. 상임법에서 쟁점이 되는 부분은 △환산보증금의 존폐 여부 △건물 재건축 시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 무효화 △임차인의 영업보장기간이다. 쟁점은 상임법의 몇몇 조항이 임차인들에게 계약갱신요구권을 빼앗기 때문에 발생한다. 계약갱신요구권이란 임차인이 임대차기간 만료 전 6개월에서 1개월까지 사이에 임대인에게 계약갱신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의미한다. 임차인이 계약갱신요구권이 있다면 임대인은 이를 거절할 수 없다.

아쉬운 정부 개정안
  정부는 24일 상임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번 개정안으로 임차인들은 환산보증금에 관계없이 대항력 행사가 가능해지고 영업보장기간 내에 건물주가 바뀔 시에도 대항력 행사를 할 수 있게 됐다. 대항력이란 새로운 임대인에게 임차인이 임차권을 주장할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기존에 임차인이 주장하지 못했던 권리를 개정안이 시행되면 주장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에 거래되던 권리금도 법제화된다. 여태 권리금은 임차인 사이에 암묵적으로 거래되던 음성적인 돈이었다. 이번 개정안으로 권리금이 양성화돼 법적 장치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의 실효성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개정안이 시행되기까지 여·야 합의 등의 절차가 남아있고 법률 불소급의 원칙에 의해 개정안 시행 전에 계약한 임차인들은 계약기간동안 이번 개정안을 적용받지 못한다. 아울러 대항력에 관한 부분만 개정돼 ‘반쪽개정’이라는 분석이 많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김영주(법학과 92학번) 변호사는 “이번 개정은 재건축을 이유로 임차인을 내쫓는 등 실제 피해사례에 악용된 법조항에는 영향이 없다”라고 말했다.

  상임법 개정을 위해 노력하는 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 모임(맘상모) 권구백 대표는 “우리나라는 임차인들이 마음 편히 장사하기에 척박한 환경”이라며 “임대인과 임차인 간에 발생하는 명도소송은 개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라고 말했다. 상임법 전반에 대해 김제완 교수는 “현재의 상임법은 임차인의 권리보다 건물주의 재산권 측면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환산보증금 존폐 여부  
  상임법에서 보장하는 계약갱신요구권은 환산보증금이 지정된 금액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보장된다. 중소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환산보증금은 보증금과 월세 환산액을 합한 금액으로 보증금+(월세×100)으로 계산한다.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가 350만원이라면 환산보증금은 4억 원이다.
상임법 제 2조 1항에 따르면 상임법은 상가건물의 임대차에 대해 적용되지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보증금액을 초과하는 임대차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보증금액의 범위는 각 시도별로 다르며 서울시의 경우 4억 원으로 책정돼 있다. 즉, 환산보증금이 4억을 초과하면 임차인은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이다.

  계약갱신요구권이 없으면, 임차인들은 상임법에 보장된 영업기간인 5년을 보장받지 못한다. 아울러 환산보증금이 4억이 넘는 가게들의 월세인상 폭은 제한이 없다. 이는 보증금과 월세를 포함하는 환산보증금이 임차인의 부를 측정하는 지표가 돼 이 환산보증금이 4억원을 넘는 경우에는 상임법으로 보호할 이유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맘상모 권구백 대표는 “서울에 있는 1층 상가 중 환산보증금으로 보호받는 중소 상인은 30%미만”이라며 환산보증금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콩진호의 차광호 사장은 “환산보증금 제도는 건물주가 월세를 대폭 인상하는 것을 가능하게하고 이는 결국 임차인들을 건물로부터 내쫓는 수단이 된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홍대에 위치한 한 카페의 경우 환산보증금이 4억을 넘어 건물주가 월세를 1300만원에서 2100만원으로 대폭 인상해 세입자가 버티지 못하고 나간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임차인들은 상임법에 명시된 환산보증금 관련 내용을 백지화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환산보증금을 높여 보호받는 상인의 비율을 늘리는 의견에 대해서 권 대표는 환산보증금이 중소상인과 부유한 상인을 나누는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자도 환산보증금이 낮은 곳에서 영업할 수 있다”며 “중소상인과 부유한 상인을 나누는 기준을 환산보증금이 아닌 임차인의 소득수준 등으로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제완 교수는 “지금 시세와 맞춰 환산보증금 규모가 적합한지 등의 여부를 검토해야할 필요가 있다”이라고 말했다.

계약갱신요구권 무효화
  상임법 제 10조 7항에 따르면 임대인이 목적 건물의 전부 또는 대부분을 철거하거나 재건축을 위해 목적 건물의 점유를 회복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영업보장기간 내에도 계약갱신을 거부할 수 있다. 이는 임대인이 건물을 재건축을 할 계획이 있다면 임차인과 재계약을 거부해도 된다는 의미다.

  안암동 콩진호 건물에서 벌어진 명도소송도 이 문제와 얽혀있다. 콩진호 건물주 유병훈 씨는 “건물을 재건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3년 8월 27일 콩진호 건물의 소유권을 이전받았다. 소유권 이전 직후 그는 임차인들에게 “투자를 목적으로 매입한 건물이기에 재건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유 씨는 콩진호 건물 임차인들과의 계약갱신을 거부한 상태다.

  콩진호 건물 임차인들은 건물 재건축을 이유로 임차인들과 계약갱신을 거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맘상모 권구백 대표는 “재건축을 이유로 계약갱신요구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임차권, 영업권 침해”라고 말했다. 이에 김제완 교수는 “재개발 및 재건축 시 피해를 입는 임차인에게 어떤 보상을 해줄 수 있을지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임차인은 임대인이 재건축 계획으로 임차인과 계약갱신을 거부한 후 재건축을 하지 않아도 법적 제재가 없다는 점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맘상모 권구백 대표는 “재건축 주장으로 임차인을 내쫓은 후 재건축을 하지 않아도 이를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김제완 교수는 “명도소송 시 임대인의 재건축 계획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등의 법률에 따라 검토한다”며 “명도소송 후 재건축을 하지 않아도 그에 대한 고의성을 입증할 수 없기 때문에 법적 제재를 가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재판소는 9일 상가 재건축 시 임대차계약 연장을 거부하는 것에 대해 합헌이라 결정했다. 헌법재판소는 재건축 시점 등의 규정이 분명하지 않아 남용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임차인 계약갱신요구권으로 인해 침해될 수 있는 임대인의 권리를 보호해 양자의 권리관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규정”이라고 합헌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5년으로 제한된 영업기간
  상임법 제 10조 8항에 따르면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은 최초의 임대차기간을 포함한 전체 임대차기간이 5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행사할 수 있다. 이는 예외조항이 적용되지 않는 한 임차인의 영업 기간은 5년을 보장받는다는 의미다. 하지만 영업보장기간 동안 임대인은 월세 인상 등의 이유로 임차인과 1~2년 계약한다.

  맘상모 권구백 대표는 상인들의 영업보장기간인 5년이 턱없이 짧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영업보장기간을 5년으로 하는 법 조항은 인테리어비용을 포함한 시설비, 각종 권리금 등의 초기투자비용, 창업자 수의 대폭 증가 등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조항”며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서는 것은 5년으로 부족하다”고 말했다.
반면, 콩진호 건물주 유병훈 씨는 영업보장기간이 5년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직종에 따라 다르겠지만 5년이면 초기투자비용을 메우고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업기간을 5년으로 제한하는 것에 대해 김제완 교수는 “‘5년 안에 임차인이 초기투자금을 회수하고 흑자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명확한 통계와 이에 따른 세부적인 사항들이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훈 기자 ㅣ hoony@kukey.com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7 14:2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