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그는 물었다 "왜 이 일을 하려고 하느냐"

▲ 안암동의 한 바에서 고대생 바텐더와 손님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속의 인물들과 바(Bar)는 기사 내용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사진 | 유민지 기자

“과감해져야 해!” 이렇게 되뇌며 화장을 시작했다. 눈가에 검은색 아이라인을 과도하다싶을 정도로 굵게 칠하고 눈꼬리 쪽으로도 길게 그렸다. 체리주스 색 틴트를 바르니 입술이 새빨갛게 정열적으로 보였다. 그래도 부족했다. 코 양쪽에 쉐딩으로 심하게 명암을 주어 코가 우뚝 솟아보이게 만들었다. 이제 얼굴 윤곽이 제대로 뚜렷해졌다. 백팩을 매고 책을 든 수수한 여대생은 온데간데없었다.

  8월 27일 저녁 7시, 서관 2층 여자화장실에서 그렇게 단장을 하고 건물을 나섰다. 서관은 내가 속한 서어서문학과가 있는 곳이다. 곧장 마주친 과 친구 H 씨는 “야, 화장이 과한데…”라고 말했다. 그 말도 듣기 좋았지만 그 직전에 그녀가 보인 반응이 더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멈칫하면서 “이건 뭐지?”라는 경멸조의 호기심을 잔뜩 드러냈던 것이다. 나는 도발적인 내 얼굴 화장에 만족하면서 일터로 출근했다. 그 전날부터 그곳에서 일했으니 고작 이틀 만에 내가 스스로 이렇게 바뀐 것이다.

  나는 인터넷 웹사이트 알바천국에서 이곳을 찾아냈다. 돈을 많이 준다고 돼있어서 선뜻 선택했으며 학교 근처인 점도 좋았다. 8월 19일 면접 때 사장을 처음 만났고 일터도 처음 봤다. 지하 1층의 출입문을 들어서니 벽면의 흐릿한 주황색 조명이 어두컴컴한 방을 비추고 있었다. 방은 긴 사각형으로 ㄴ자 모양의 스탠드 테이블이 방의 두 측면을 연결하고 있었다. 큰 사각 방에 조그만 사각 방이 들어있는 모습이었다. 스탠드 좌석은 15개였으며 스탠드 바깥쪽에 4인석 테이블 7개가 놓여있었다. 스탠드 안쪽 벽면엔 여러 종류의 술병들이 LED 조명을 받으며 진열돼있었다. 내가 일할 곳은 바로 거기였다. 그렇다. 이곳은 바(bar)이며 나는 바텐더 일을 하려고 왔던 것이다.

  A바의 김 모 사장은 고풍스러운 멋이 있는 중년 여성이었다. 그녀는 찬찬히 신상정보를 묻다가 내가 고려대생임을 알고서 실망스러워했다. 고려대생들은 대개 불성실하며 금방 그만둔다고 했다. 그래서 사장이 “향후 1년간 별다른 계획이 있느냐?”라고 물었을 때, 나는 “그냥 쭉 학교를 다닐 것”이라고 말했다. “왜 이 일을 하려고 하느냐?”라고 물었을 때는 기다렸다는 듯이 “등록금이 급해요”라고 답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나는 뜨끔했다. 정말 등록금이 없어서가 아니라 등록금을 벌면서 학업을 병행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보려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한 학기(16주) 등록금 350만 원을 마련하려면, 한 달에 약 87만 원, 1주일에 약 22만 원을 벌여야 한다. A바의 시급은 1만 2000원으로 소개돼있었으므로 하루에 4~5시간씩 1주일에 4일을 일하면 벌 수 있었다. (그렇게 4개월을 일해야 한 학기 등록금을 번다.) 그러나 이 계획은 무산됐다. 사장은 내가 초보자이므로 시급이 8000원이며 일을 잘 하면 다음 달에 9000원으로 올려주겠다고 했다. 난 사장의 제안에 응했다. 그 시급으로도 한 달에 80여만 원을 벌 수 있으니까. 일반 아르바이트로는 도저히 이만큼의 시급을 받지 못한다. 고액과외를 하면 이보다 더 많이 받겠지만 그런 자리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를 지칭하면서 “귀엽게 생겼네”라고 사장에게 말해주었다. 그런 지원사격까지 받아가며 나는 A바의 바텐더로 채용됐다. 한 학기 내내 이렇게 일할 수는 없어서 한두 달만 해보기로 했다.

  8월 26일 드디어 첫 출근. 사장에게서 간단한 직무교육을 받았다. 바텐더의 임무는 손님의 말을 들어주고 맞장구쳐주고 잔을 채워서 술을 많이 파는 것이다. 이런 토킹바는 손님과의 대화가 관건이다. 금지사항도 알려주었다. 손님 옆에 않으면 안 되며, 손님이 자기를 만지도록 허락해도 안 된다. 손님이 바텐더에게 술을 강권하면 거부해야 한다. 손님과 친해졌다고 해서 예의를 지키지 않거나 선을 넘어서면 안 된다. 절대로 자기의 전화번호를 손님에게 주면 안 된다. 술의 종류와 맛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이렇게 ‘무장’한 채 손님을 맞기 시작했다. 잘 모르는 것은 동료 바텐더에게 물어보거나 어깨 너머로 눈치껏 배웠다.

  이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은 금방 알게 됐다. 일을 시작한지 2일째, 그러니까 내가 작심하고 화장을 했던 그날이었다. 한 남자가 혼자 와서 내 앞에 앉았다. 그는 큰 계약을 따낸 덕에 회사에서 1억 원의 인센티브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즐거워했지만 그 얘기를 하려고 바에 온 것은 아니었다. 자기 부인이 자기를 돈 벌어오는 기계쯤으로 여기고 있다는 게 본론이었다. 그래서 가정을 책임지려고 일만 하는 자기의 마음 한 구석이 몹시 허전하다는 것이었다. 자기의 인생은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말도 했다. 그는 이런 마음을 달래줄 말을 기대했겠지만 나는 그저 “아, 네. 맞아요”를 반복할 뿐이었다. 급기야 그는 와인을 주문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 “민지 씨는 이해 못해요”라고 말하며 나가버렸다. 20대 미혼인 내가 남자 가장의 마음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이 장면을 지켜본 바텐더 언니들은 깔깔대며 웃었다. 사장은 ‘큰 손님’을 놓쳐서 안타까웠는지 한숨을 쉬면서도 신참인 나를 격려해주었다. 어쨌든 나는 나의 무능함이 몹시 부끄러웠다.
A바가 있는 옆살이길(인촌로 26길)의 100미터 구간에만도 토크바가 11개나 있다. 이들이 성업 중일 정도로 손님은 많다. A바의 주 고객은 고려대 졸업생이며 교직원과 동네 주민도 가끔 온다. 아주 간혹 재학생이 오기도 한다. 양주, 맥주, 와인을 파는데 양주는 12만 원, 맥주는 4만 5천 원부터 시작하니 학생에게는 부담스럽다.

  나는 주 4일, 마감 시간대에 일하기로 계약했다. 신문사 일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 화, 수, 목, 일요일 밤 9~10시에 출근했다. 손님이 모두 나가야 일이 끝나므로 퇴근시간은 새벽 2~5시로 유동적이었다. 하루는 새벽 4시에 퇴근했는데 마침 그날 오전 9시부터 1교시 수업이 있었다. 2시간 반만 잠자고 깨어나면서 해는 왜 이리 빨리 뜨는지 한스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내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보기 흉할 정도로 짙게 새겨졌고 연신 하품이 나왔다. 비누칠을 여러 번 했는데도 온몸에서 담배냄새가 났다. 수업 때 졸지 않으려면 커피가 필요했다. 학교 근처에서 제일 싼 17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샀다. 이 일을 하면서 모든 것을 아르바이트 시간과 수입으로 환산하는 버릇이 생겼다. 유명 카페체인의 커피 대신 싼 커피를 마시면 바텐더 20분만큼의 급여를 버는 것과 맞먹는다. 늦잠을 자느라 3시간짜리 수업을 빼먹은 날에 그만큼의 등록금을 계산해보니 바텐더 일 4~5시간에 해당했다.

▲ 금요일 밤 화장기 없는 얼굴로 신문 마감을 하고있는 유민지 기자사진 | 장지희 기자 doby@kukey.com

지난 한 달간 나는 낮에는 대학생, 밤에는 바텐더로 이중생활을 했다. 손님들은 내가 고려대생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물론 우연찮게 알게 되기도 하지만… 극소수의 재학생 손님 중에 영문과를 다닌다는 그 학생이 A바를 두 번째 찾았을 때, 그는 일전에 서관 계단을 올라가던 나를 봤다고 내게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기회가 되면 술 한 잔 사주겠다고 했다. 그때만큼은 그는 내게 손님이 아니라 학교 선배였다. 간혹 고려대 교수가 오면 나는 더 예의를 갖추려고 했다. 한 교수 손님은 기분 좋게 취하자 담배를 찾았고 나는 곧장 한 개비를 구해 드렸다. 그랬더니 팁이라며 1만 원을 내게 주었다. 그런 추가 수입을 올린 날은 그럴 수 없이 좋았다.

같이 일하는 바텐더들의 처지도 비슷했다. 한 바텐더 언니는 낮에 회사를 다니고 밤에 일했다. 부모님 효도여행을 보내드리려고 일한다고 했다. 그래도 생계를 위해 일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나와 같은 대학생들은 등록금과 용돈이 목적이었다. 지난 4월 알바천국이 대학생 2,564명을 조사해보니 89.8%가 ‘알바를 하고 있거나 그럴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대부분이 생활비와 등록금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실제로 아르바이트 급여만으로 등록금과 생활비를 충당하기는 쉽지 않다. 문과대 등록금 약 350만 원을 내려면, 바텐더로 총 437시간, 즉 주 4일간 일하는 방식으로 21주간 87일의 밤을 새야한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의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각자의 절실함은 동일하다. 매일 피곤하고 지치면서도 우리들은 그렇게 일한다.

▲ 토킹바로 출근하기 전 화장을 짙게 한 유민지 바텐더사진 | 장지희 기자 doby@kukey.com

  일은 녹록치 않았다. 고려대 의대 졸업생들인 남자 4명이 들어와 잔뜩 술을 마시고는 고연전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나도 익히 아는 내용이라 맞장구를 잘 쳐주었다. 그래서였는지 그중에 안암병원 의사라는 사람이 두 손으로 내 손을 잡고 커피 한 잔 하고 싶다면서 자기의 휴대전화를 내게 건넸다. 나는 규정상 전화번호를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 바람에 분위기가 어색해지면서 침묵이 흘렀고, 손님들은 흥이 깨졌다고 생각했는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들이 나간 직후에 나는 그 사람이 서류봉투를 두고 간 것을 발견하고 바로 뒤쫓아나가서 그에게 봉투를 건네주었다. 그랬더니 그는 다시 내 팔목을 꽉 잡고서 자기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며 그저 자기 얘기를 들어달라고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나도 모르게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 동료들이 그를 만류하고서야 나는 풀려날 수 있었다.

  동네 주민인 한 손님은 내게 데이트를 신청하기도 했다. 그때 나는 “아!, 예~예~”라고 응답했는데, 그 말을 들은 그는 “와, 얘 끼 부리네”라고 말해 나를 무안하게 만들었다. 예전의 나라면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당연히 기분 나빠하며 단호하게 거절했겠지만 바텐더 일을 하다 보니 능청스럽게 응대하는 데 익숙해졌다. 어느 새 내가 그렇게 변한 것이다. 더 황당했던 것은 바로 그 다음의 상황이었다. 그의 친구가 위스키로 잔뜩 붉어진 얼굴에 반쯤 감긴 눈으로 한참동안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대뜸 내 손을 잡더니 손등에 뽀뽀를 하려고 했다. 그러자 모두 낄낄거리며 휴대전화를 꺼내 동영상을 찍었다. 유부남인 그가 호기를 부리는 장면을 담고 싶었던 것이다. 시급 8,000원은 그저 받을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고려대 졸업생이라고 했던 한 손님은 내가 예쁘다면서 추근거리다가 만취하자 내게 “너랑 자고 싶어”라고 말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도와주고 나를 키워주겠다고도 했다. 그러니 일이 끝나면 밖에 나가서 술 한 잔 하자고 나를 졸랐다. 그러다가 내가 고려대에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는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고개를 저으면서 “아, 안 되는데…”라고 중얼거렸다. 사장이 그를 만류하고 설득해서 일단락됐지만 그는 바를 나가면서 연신 욕을 해댔다. 마치 좋은 기회가 재수 없는 바람에 달아났다고 느끼는 것 같이 보였다. 이런 일을 하는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그렇게 쉽게 보이는 것일까? 이날 집에 돌아와서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 한참 울었다.

  손님이 없을 때는 진열장의 술병을 닦았다. 술병이 50여개나 되니 그것도 큰일이었다. 술병을 손에 쥐면 당장 돈이 연상됐다. 이곳에서 양주 한 병을 마시는 데 드는 돈은 내가 하루 5시간, 주 4일 일해야 벌 수 있다. 이런 소박한 생각에 찬물을 끼얹는 손님은 늘 있다. 한 손님은 1천만 원짜리 술을 정말 좋아한다고 말했다. 어디서 마신 어떤 술인지는 몰라도 그런 술을 마셔야 기분이 난다는 것이다. “대학생 때 이런 곳에서 일하면 돈은 언제 벌고, 언제 모을래?” 그의 말처럼 밤에 바텐더로 일하는 것보다 공부를 하는 게 미래를 위해 더 좋겠지만 그럴 수 없으니 일을 하는 것이다. 나 역시 단기 체험이지만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투잡을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어떤 처지인지 도무지 모르는 것 같았다.

  “몸이 피곤하거나 아프더라도 일당 5500원을 벌기위해 일을 해야 했어요.” 안암동 치킨집에서 일했던 생체의공학과 황하련 씨는 아플 때 아르바이트에 대한 회의감이 강하게 들었다고 했다. 나도 한밤에 출근해서 새벽에 퇴근하는 일과가 반복되면서 한 시간에 8000원짜리인 내 생활에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소리 안 나게 집에 들어와도 어머니는 부스스 일어나 내게 따뜻한 물 한 잔을 갖다 주었다. 내 몸이 담배 냄새에 찌들어 있어도 어머니는 아무 말 안했다. 남자 친구는 내가 퇴근할 때까지 전화 메시지로 나를 격려하며 잠을 자지 않았다. (바텐더들이 퇴근할 때 사장은 자기 차로 각자의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체험삼아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진짜 내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저녁에 A바로 걸어가다가 거리가 한가하면 왠지 초조했다. 그러다 “민지, 오늘은 손님이 없어서 안 나와도 돼요”라는 사장의 전화를 받으면 맥이 탁 풀렸다. 이런 갑작스런 취소는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있었다. 반가운 휴식이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공들여 했던 화장을 지우고 자리에 누우면 그날 하루 벌 수 있었던 약 5만 원이 눈에 아른거렸다. 그걸 4개월간 모아야 한 학기 등록금을 낼 수 있다.

  내 친구 중에 강남역의 바에서 일하는 문과대 남학생은 3년 간 고연전에 가본 적이 없다. 안암동 바에서 일했던 문과대 여학생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다.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대학생의 사연이 어디 이뿐이겠는가?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는 그만큼 어렵다. 지치고 힘들지만 그래도 일해야 한다.

  A바에서 일을 할 때는 그렇게도 시간이 안 가는 것 같았는데 지난 한 달은 훌쩍 지나가버렸다. 어떤 아르바이트도 학업과 병행하기는 쉽지 않다. 나 역시 무척 힘들었다. 그래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다음 달까지 이 일을 해보려고 한다. 손님이 없어서 쉬는 날이 있었던 탓에 지난 한 달의 수입은 65만원이었다. 나는 좀처럼 이 돈을 쓰지 못할 것 같다.

유민지 기자 ㅣ you@kukey.com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8 07: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