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읽기]

베버. 막스. 1919(2006).『직업으로서의 학문』. 전성우 역. 나남.


오늘날 학문을 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김경필 본교 사회학과 박사수료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내가 왜 공부를 하지?’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내가 하는 공부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질지도 모른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각양각색일 것이다. 물론 타율적으로 공부를 하는 이들은 이 문제가 의미 없는 것이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독일의 대표적인 인문사회과학 이론가 중 한명인 막스 베버 역시도 한 강연에서 이 문제에 대해 학생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렇다면 베버는 학문을 하는 것의 의미를 무엇이라고 이야기했을까?


예술과 학문 그리고 기존의 생각들

이 문제에 대한 베버의 답은『직업으로서의 학문』이라는 강연집에 담겨 있다. 물론 이 강연은 학문의 의미라는 주제만을 다룬 것은 아니다. 이 주제는 전문직(profession)과 천직(vocation)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는 직업(beruf)의 차원에서 학문을 논하는 데 있어서 일부분을 구성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강연의 일부분일지언정, 이를 통해 우리는 베버가 생각하는 학문의 의미뿐만 아니라 베버의 인식론을 파악할 수 있고 당대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포착할 수 있다.  

베버는 예술과 학문을 대비시키며 논의를 출발한다. 예술과 달리 학문은 탈주술화 내지 합리화라고 하는 지속적인 변화의 과정 속에 있다. 그 결과 우리는 학문적 성과들이 금방 낡은 것이 되어버리고 마는 현실에 처하게 되는데,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가 학문을 통해 ‘어떤 의미있는 것을 성취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몇 가지 통념들에 대해 간략히 검토한 후 저자는 기존의 학문론을 비판한다. 여기서 베버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플라톤과 르네상스시기 지식인들의 주장이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통해 학문이 인간세계는 물론 자연과 우주의 본질을 깨우치게 하며, 삶에 있어서의 올바름과 좋음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고 주장했다. 또한 르네상스 지식인들은 학문이 진정한 예술, 자연에 도달하는 길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하지만 베버에 따르면 이러한 주장들은 잘못된 것이다. 오늘날 그 누구도,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세계의 본질이나 좋음, 의미에 대해 자연과학이나 문화과학이 뭔가를 가르쳐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오히려 학문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이 당대 젊은이들의 생각이었다. 베버가 보았을 때 20세기 초반의 서구사회는 ‘진정한 존재, 진정한 예술, 진정한 자연, 진정한 신, 진정한 행복으로의 길’과 같은 모든 환상이 무너져 버린 사회였다. 또한 세계의 여러 다양한 가치들이 서로 해소될 수 없는 투쟁 속에 처해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다보니 당시 세분화, 전문 영역화의 추세를 보이고 있던 학문은 우리가 윤리적, 당위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줄 수 없었다.


합리화 시대의 학문의 의미

합리화, 탈주술화가 진척되는 시대, 그리고 이른바 가치다신교의 시대에 베버는 학문의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학문은 어떻게 외적 사물과 인간행동을 계산을 통해 잘 다룰 수 있는가에 대한 기술적 지식을 제공한다. 학문은 사고의 방법, 도구, 사고를 위한 훈련을 제공한다. 목적과 수단의 문제에 있어서도 학문은 그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지의 여부에 대해서 보여줄 수 있다”. 그러면서 베버는 학문은 오늘날 자기 성찰과 사실관계의 인식에 기여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행해지는 직업일 뿐이지, 구권이나 계시를 바라는 예언자의 선물이 아닐 뿐만 아니라 세계의 의미에 대한 현인과 철학자의 사색의 일부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학문에 대한 베버의 이러한 입장은 동시대에 유사한 주제에 대해 고민했던, 사르트르나 그람시와 같은 맑스주의자들의 지식인론, 학문론과는 상반되는 것이다. 또한 수십년 후에 나타나는 리오타르와 같은 포스트모던주의자들의 논지와도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이는 분명 이들 간의 상이한 삶의 경험과 철학적 기초에서 초래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현대의 독자들은 이와 같은 여러 이론가들의 학문, 지식인에 대한 주장들을 비교해서 읽어보며 그것의 의미를 음미해볼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9 22:4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