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인디 뮤지션]

아시안체어샷

글. 이경준 (대중음악평론가)


<가사 박스>

해야 해야 눈부신 해야
내 가슴속에 타올랐던 해야
해야 해야 눈부신 해야
내 가슴속에 타올랐던 해야

해야 해야 눈부신 해야
내 가슴속에 타올랐던 해야
해야해야 눈부신 해야
내 가슴속에 타올랐던 해야

드넓은 들판에 홀로 서서
난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이요
이 내 맘 등지고 떠난 이여
이 내 몸을 불태워주오


“우리는 외국 밴드보다 국내 선배 밴드들에 더 애착이 있다. 그 명맥을 잇고 싶은 욕심이 있고 그 라인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한다.” (2013년 인터뷰 중)



한국 록 계보의 어느 좌표를 점유하고 싶다

아시안 체어샷. 의자로 상대방을 강타하는 프로레슬링 반칙기술의 명칭. 여기 소개하는 록 밴드의 음악은 그 이름만큼이나 불현듯 리스너의 허를 찌른다. 틀림없이 아시안 체어샷은 서양의 문법으로 서양의 록 음악을 연주하고 부르는 밴드이다. 하지만 그 이름의 행간에서 확인할 수 있듯 밴드는 서구 록 밴드의 스타일을 적절히 카피해 인기를 얻으려 하거나 트렌드를 휘젓고 다니는 힙스터들은 아니다. 사이키델릭과 그런지, 프로그레시브, 헤비메탈 등 여러 레퍼런스들이 참고되기는 하나 밴드의 정신은 1970~80년대 조선 땅을 관통했던 이 땅의 선각자들의 그것에 더 맞닿아 있다. 그래서 이들은 송창식, 산울림부터 들국화로 내려오는 ‘한국 록의 정서’를 열심히 깎고 다듬고 매만진다. ‘소녀’나 ‘해야’를 들어보면 밴드의 목표지점을 잘 확인할 수 있다. 약간은 낡고, 어떤 의미에서는 치기어린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뮤지션이란 음악으로 말하는 것.

해외의 바이어들로부터 호평 받아 록의 본고장 영국에서 공연하기도 했고, 1990년대 한 획을 그었던 슈퍼밴드 스매싱 펌킨스의 기타리스트 제프 슈뢰더는 이들의 음악을 듣고 반해 기꺼이 프로듀서 역할을 자임했다. 얼마 전 공개된 정규 1집 [Horizon]이 바로 제프가 사운드의 키를 잡고 완성해준 첫 작품이다. 기라성 같은 록 밴드들의 음악세례를 받으며 성장한 외국인이 한국의 록 밴드에 빠져든 사연은 뭘까. 예단할 순 없지만 나는 그가 경험해보지 못한 ‘경관’을 봤다고 추측해본다. 그건 전술했던 ‘한국적 정서’의 일면과도 맥이 통할 것이다. 헌데 이런 ‘특이성’ 말고도 아시안 체어샷의 음악에는 ‘록 팬의 마음을 홀릴 수 있는 소구력’이 동시공재한다. 그게 없었다면 우연히 마주친 동양의 무명 록 밴드에게 빠져들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애초부터.

사실 개인적으로 이들의 음악을 유심히 본 이유는 밴드의 노랫말과 음악이 절묘하게 조응해 다가왔기 때문이다. 홍대 곳곳에서 목격되는 밴드 음악은 대부분 들을 만하다. 그중 다수는 당장 경연무대에 세워놓아도 손색이 없을 것만 같다. 허나 ‘음’의 나열에만 신경 쓴 나머지 가사와의 호흡에는 무신경한 경우도 놀라울 정도로 많은데, 아시안 체어샷의 곡들은 음악이라는 것이 왜 복합적이고 총체적인 텍스트로 작동하는지 알려준다. 뮤지션들은 ‘곡이 노래에 붙는다’는 표현을 쓰는데, 가령 ‘소녀’의 경우만 봐도 “가득찬 달빛에 취해/ 나도 모르게 뒤따라간 소녀/ 춤을 춘다/ 세상 모든 것들이 숨죽인듯/ 나도 모르게 뒤따라간 소녀”의 흐름은 경탄할 만큼 정확하게 계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기타리스트 겸 보컬리스트 황영원은 “멜로디를 억지로 덧붙이거나 거꾸로 멜로디에 가사를 구겨 넣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으니 이들의 고단한 작업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두 번째 이유는 과장된 제스처 없이 담백한 사운드를 만들어내면서도 묵직한 감상의 포인트를 남긴다는 점이다. 이것을 ‘개성’이라 표현해도 좋을 텐데, 유수한 록 밴드들은 장르를 막론하고 다른 아티스트들과는 차별화되는 무언가를 소유하고 있다. 레드 제플린, 메탈리카, 펄 잼, 라디오헤드. 밴드를 이 반열에 올리기에는 터무니없이 민망하지만, 최소한 이들이 연주하는 곡이 무엇이든 그것이 아시안 체어샷의 음악이 된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외국인들이 더 좋아하는 한국의 록 그룹

이들이 쓴 곡들의 소재는 본인들의 체험 아니면 지인의 경험으로부터 따온 것인데 그 면면을 보자면 형광등 살 돈이 없던 어려웠던 시절(그렇다고 지금 팔자가 폈냐면 그건 아니다)의 단상, 아버지 친구분의 귀신목격담 등 주로 생활 속 단편들이다. 흔하디흔한 남녀상열지사를 읊는 것은 관심 분야 바깥이다. 그렇다. 남녀사이를 노래하면서도 충분히 수작을 뽑아낼 수 있다. 그러나 아시안 체어샷은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영역에 집중한다. 일상 속 ‘작은 이야기들’로부터도 무수한 스토리라인을 뽑아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하듯이. 그렇게 찾아낸 작은 이야기들이 멤버들의 거친 에너지와 한 옷을 입었고, 그 재능을 알아봐준 사운드 조율사와 만났다. 이제 남은 일은 마지막 한 계단을 올라가는 것뿐이다.

다행히도 밴드를 위한 판이 조금씩 깔리고 있다. 제프 슈뢰더와의 만남이 그 서곡이었다면, 내년 초로 계획된 프로듀서 스티브 알비니(너바나, 픽시스 등과 함께했던 전설적인 프로듀서) 소유의 스튜디오 방문은 밴드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는 큰 이벤트다. 밴드는 그곳에서 EP를 녹음할 계획인데, 스티브가 직접 참여할 수도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만일 밴드의 곡이 더 좋은 인력, 장비와 만나 화학작용을 이룬다면 그 결과물은 상상 그 이상의 파급력을 발휘할지도 모른다. 물론 아직 정해진 것은 없고 미래는 보장되어 있는 게 아니지만 앞으로의 싹이 보이는 팀들이 있다. 그 후보군 사이에서도 아시안체어샷은 단연 선두권에 있는 그룹이라고 생각한다. “공연을 하게 되면 외국인들이 더 좋아한다”는 밴드의 말은 은근한 단서다. 잠비나이가 국악을 해체하며 국악을 재구성해 성공했듯, 아시안체어샷은 한국성(Koreaness)을 가장 범세계적인 음악언어로 풀어나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고 이건 필경 먹힐 수밖에 없다고 확신한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1 00:14: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