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동향] 소수자의 시선


동물권과 종차별주의

최훈(강원대 교양과정 교수,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저자)



동물권과종차별주의, 모두 낯선 용어이다. 동물권은 동물(정확하게는 인간 아닌 동물)의 권리를 말하는 것 같은데, 동물에게 무슨 권리가 있다는 말인가? 권리가 있으려면 그것을 주장할 수 있어야 하는데 어떤 동물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역시 아무 주장을 할 수 없는 갓난아이도 분명히 생명권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함부로 침해할 수 없다.갓난아이게게는 그 권리를 대변해 줄 수 있는 가족이 있는 것처럼 동물에게도 그 권리를 대신 주장해 주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동물권이라는 말은 그렇게 터무니없지 않다. 문제는 어떤 종류의 권리가 얼마만큼 있느냐이다.

종차별주의는 무슨 말인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영국의 심리학자 리처드라이더에 의해 만들어지고 호주 철학자 피터싱어에 의해 널리 퍼진 ‘종차별주의’라는 말은 ‘인종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를 떠올리면 무슨 뜻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인종차별주의는 어떤 인종이냐에 따라 차별하는 것을 말하고 성차별주의는 남성인가 여성인가에 따라 차별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 종차별주의는 어떤 종이냐에 따라서, 예컨대 사람인가 돼지인가 닭인가에 따라서 차별하는 것을 말한다. ‘차별’이라는 말에는 뭔가 부당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인종에 따라 다르게 대우하는 것을 차별이라고 부르는 것은 백인이 됐든 흑인이 됐든 인종과 상관없이 침해되어서는 안 되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종에 따른 차별을 거론할 때도 사람이 됐든 돼지가 됐든 닭이 됐든 공통적으로 침해되어서는 안 되는 어떤 권리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일 것이다. 종에 따른 차별은 동물권이 있기 때문에 성립하는 말이다. 그 동물권은 무엇일까?

종차별이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에 빗대어 나온 말이므로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에서 동물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디 감히 흑인과 여성을 동물에 빗대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차별 받는 소수자라는 점에서는 똑같기 때문이다. 이제는 적어도 공적인 자리에서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을 옹호하는 사람은 없다.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은 누구나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이 왜 옳지 않느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사람은 누구나 다 똑같은데 피부색이나 성별에 따라 차별하므로 옳지 않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사람이 다 똑같은가? 키도 다 다르고 능력도 다 다른지 않은가? 회사에서 신입 직원을 뽑을 때 당연히 능력 있는 사람을 뽑을 텐데, 이것을 차별이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무엇을 능력으로 보아야 하는지는 논란이 되기는 하지만, 적어도 능력이 있는 사람을 채용하겠다는 것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이 문제가 되는 것은 피부색과 성별이 능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능력이 떨어지는 흑인이나 여성이 있겠지만 그것은 능력이 떨어지는 백인이나 남성이 있는 것이나 똑같다. 만약 능력이 떨어진다면 그것은 개인의 문제이지 그가 속한 집단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특정 피부색과 성별과 능력을 연결 지어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지만,그런 관련성을 보여 주는 과학적인 근거는 전혀 없고 오직 편견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인종차별과 성차별은 옳지 않은 것이다.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옳지 않은 근거가 그러하다면, 종차별은 옹호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사람의 경우에는 능력은 개인의 문제이고 집단의 문제가 아니지만 사람과 동물의 차이는 사람 개인과 동물 개체의 차이가 아니라 집단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이 돼지에게 기본적인 계산 능력도 없는 것은 그 돼지 개체의 문제가 아니라 돼지 집단 전체의 문제가 아니냐는 것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면 종에 따른 다른 대우는 더 이상 차별이 아닌 것 같다.

정말 그런지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다시 생각해 보자. 노예제는 인종차별의 대표적 사례이다. 그리고 노예제가 없어진 한참 후까지도 미국 사회에서는 버스에서 흑인들은 백인들이 앉는 좌석에 앉지 못했다. 만약에 흑인이 백인보다 지능이 낮다고 가정해 보자.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정이다. 만약 지능이 낮다면 노예로 부려도 되는가? 만약 지능이 낮다면 버스에서 빈 자리가 있는데도 앉지를 못하는가? 그런 주장을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인간이라면 지능에 상관없이 다른 사람에게 구속 받지 않을 자유가 있고 피곤하면 앉아서 쉴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의 관행들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지능과 상관없이 인간이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옳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됐든 동물이 됐든 지능과 상관없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권리가 있다면 그것을 침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극히 일부의 예외를 제외하면 인간은 지적인 호기심이 있고 정치에 참여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피부색과 성별과, 심지어는 능력과 상관없이 학교에 다니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그러나 동물에게는 그런 지적 호기심이나 정치 참여 욕구가 없으니 그런 권리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 반면에 적어도 척추 동물들은 고통을 느끼면 피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어떤 동물이든 때리면 아프고 피하고 싶어하며 이것은 지능과 상관이 없다. 그러면 그런 욕구를 존중하여 권리를 부여해야 하지 않을까? 이유 없이 고통을 받지 않을 권리, 이것은 대부분의 동물이 가져야 할 권리인 것이다.

우리가 동물을 다루는 일반적인 관행은 그런 권리를 무시하고 있다. 고기를 위해 사육하는 농장을 보면 좁은 우리에 가두어 놓고 사육에 방해된다며 뿔이나 부리를 잘라버린다. 말 못하고 머리가 나쁘다고 해서 좁은 곳에 갇혀 지내고 뿔이나 부리를 잘리면 고통스럽지 않겠는가? 동물원에 갇힌 동물은 좁은 우리에서 하루 종일 왔다갔다만 한다. 지루함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어떤 고통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동물권이라고 해서 동물에게 학교에 다닐 권리나 투표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고통을 피하고 싶다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이 옳지 않다면 종과 상관없이 똑같지 가지고 있는 그런 권리를 무시하는 종차별도 옳지 않다. 그리고 현재 고기를 얻기 위해 이루어지는 동물 사육과 동물원, 수족관 등의 놀이 시설은 대부분 그런 종차별에 근거하고 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30 19:5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