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처럼 먼지처럼 사라진 이후에도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 ‘횡보(橫步) 염상섭(廉想涉)의 상(像)’이 들어선 것은 올봄의 일이다. 1996년에 처음 종묘광장에 설치되었다가 2009년 종묘광장 정비 과정에서 삼청공원으로 옮겨갔던 것이 올해 들어 광화문 교보빌딩 앞으로 이전된 것이다. 염상섭이 소설가로 활동한 경력은 잘 알려져 있지만 그가 기자 생활을 했다는 사실은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 염상섭은 1920년 <동아일보> 창간 당시 초대 정치부 기자로 활동했으며 재만 시절에는 <만선일보> 편집국장으로 해방 이후에는 <경향신문> 초대 편집국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필자가 염상섭 동상을 처음 본 것은 우연히 광화문에 들렀을 때였다.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봄날이었다. 광화문의 모든 도로가 시위대를 막으려는 전경버스로 봉쇄되어 있었다. 땅을 진동할 것처럼 울리는 전경버스 소리와 매캐한 매연으로 인해 어지럼증이 일었다. 쉴 곳을 찾다가 팔을 벌린 채 벤치에 기대앉은 염상섭 동상 옆에 잠시 앉았다. 그곳에서 도로를 막고 늘어선 전경버스들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마음으로부터 한 줄기 위로가 솟아났다.

봄이 가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깊어가도록 교보빌딩 옆 광화문 광장에는 여전히 노란 리본들이 매달려 있다. 유가족들은 여전히 광장에 모여 4.16 특별법안 제정을 위한 서명을 받는 중이다. 한쪽에서 유가족이 단식을 하면 다른 쪽에서 치킨이며 피자를 먹으며 폭식을 하는 기괴한 장면이 연출된다. 한쪽에서 유가족과 관련 단체들이 4.16 특별법안 제정을 요구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어버이연합 어르신들은 빨갱이들을 규탄한다는 집회를 열기도 한다.

지금 염상섭 동상 옆에 마련된 빈자리에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앉고 간다. 어린 중고등학생들부터 한국의 중심부로 관광을 온 외국인들까지. 우리는 역사와 호흡하며 살아간 사람들 곁에 잠시 머문다. 분명한 것은 지난한 역사의 굽이를 우리보다 먼저 살아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육신이 이미 스러졌지만 그들의 정신은 여전히 또렷이 남아 이 역사를 지켜볼 것이다. 그러한 생각은 나의 마음에 한 줄기 위안을 준다.

비단 염상섭만이 아닐 것이다. 이 땅을 살고 간 수많은 굳건한 정신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남긴 그 넓고 단단한 빈자리를 어떤 권력도 힘도 장악할 수 없다고 나는 믿는다. 광활한 마음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선민서 기자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1 01:2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