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민주주의 경험에 기초한 영국계 및 프랑스계의 두 주류 세력을 하나의 사회 내로 통합시키려는 캐나다 다문화주의는 다문화주의의 전형적 사례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반해 21세기에 들어 유럽사회는 다문화주의와 관한한 정체성 위기의 기치 하에 급진적 우익 정당들의 득세로 점차 이민정책의 보수화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한동안 학계의 한 흐름으로는 다문화주의를 당위론적으로 수용해야할 이념으로 묵인하려는  경향이 엿보였다. 본 강의에서는 이러한 다문화주의 수용의 ‘낭만성’을 극복해야할 필요성을 먼저 지적하고자 한다. 이어 현재 유럽 다문화주의 사회 내에 일고 있는 시민통합(civic integration)의 쟁점의 현황을 살피는데 논의의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먼저 다문화주의에 관한 올바른 인식을 위해 ‘가치논변’적 (혹은 ‘문화철학’적) 담론으로서의 다문화주의와 ‘정책기능’적 측면의 다문화주의로 구별할 필요가 있다. 후자의 맥락에서 다문화주의를 바라보게 될 때, 집단 정체성의 안보쟁점화가 상대적으로 더욱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 대체로 가치논변적 다문화주의의 경우, 대체적으로 ‘동화주의’를 포기하고 결국 ‘다문화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는 진화론적 사고를 대변하게 된다.

  1970년대 이래 현재까지 다문화주의는 비록 제한적이나마 규범적이고 당위론적 요소와 내용이 강화되는 추세를 보여 왔다. 현실적으로 정책적 입론의 입장에서는 개별 국가들이 다인종․다문화적 다원성을 관리하고 통합하기 위해 ‘정치적 개입’을 할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유럽의 다문화주의는 외양은 다문화주의이지만, 점차적으로 ‘포스트 다문화주의’(post-multiculturalism)를 지향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빈번히 직면해 왔다.  

  본 논의에서는 국가안보 혹은 인간안보 개념과 함께, 최근 새로운 담론으로 떠오르는 코펜하겐학파의 사회안보 (societal security)개념을 통해 유럽의 다문화성의 정치화를 새롭게 접근하고자 한다. 그 배경을 살펴보면 다문화적 상황에서 집단정체성(collective identity)의 쟁점이 점차 ‘안보문제화’(securitization)되는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최근 21세기 유럽사회는 집단정체성 문제가 국가 내의 사회간(between societies)안보로 쟁점화 되는 경향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 브라이언 잡(Brian Job)에 의하면, 한 사회 내의 인종적, 사회적, 종교적 세력 간에 양립할 수 없는 요구로 인해 ‘불안딜레마’(insecurity dilemma)에 빠질 수 있음을 지적했다. 최근 유럽의 주요 3개국(영국, 프랑스, 독일)과 북유럽 국가들의 다문화주의를 경험적 사례 분석을 해 볼 때, 사회응집력과 ‘집단정체성’ 문제로 상당한 사회안보 딜레마를 겪고 있다.

  ‘사회안보딜레마’는 안보 위협이란 국가의 외부로부터 기원한다는 종래의 관념을 탈피하게 만든다. 이제 국가내의 집단정체성 간의 갈등으로 인해 내부의 안보도 더 이상 안전할 수 없다는 함의를 던져주고 있다. 즉 사회안보의 개념에서는 내부-외부의 안보의 구별이 더 이상 그 적실성이 없다. 이로 인해 최근에 난민 혹은 이주민으로n  인한 인종 공포증으로 서구 사회 내 -오스트리아, 벨기에, 덴마크, 네덜란드 등-에서 극우 정당이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다. 한 국가의 집단정체성은 중·장기간 형성되는 것이어서, 집단 간 정체성 위기의 국면에 처하게 될 때 단 시일 내에 그 위기를 반전시키거나 회복시킬 수 없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안보의 쟁점은 점차 국가안보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사활적인 사안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다문화주의에 내재된 분열성을 극복하려는 주장 때문에 EU내에 이민과 관련된 정체성 안보가 유럽통합의 새로운 아젠다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유럽 국가의 다문화성 논쟁에서 그동안 간과되었던 주류사회의 반발(blacklash)이 새로운 정치담론이 되고 있다. 한 예로 2011년 노르웨이의 브레이비크 테러 사건은 주류사회에 대해 극우주의가 테러를 가한 사건이다. 사회안보의 인식 문제로 주류사회가 주류사회에 가한 테러사건이다.  

  다른 한편으로 2005년 런던 테러로 7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후, 영국 다문화 사회 내에서 무슬림 이민자라는 내부의 적을 키우고 있다는 자성의 소리가 높아졌다.  영국은 그동안 주요 유럽 국가에 비해 ‘자유주의적’ (liberal) 다문화주의 정책을 비교적 잘 고수해 온 국가이다. 최근 점차적으로 영국은 시민통합(civic integration)을 강조하는 포스트다문화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라인홀드 니이버(Niebuhr)의 시각을 빌면, 사회내의 여러 정체성 집단들이 예외없이 상당 수준 우상화 기제 속에 갇히게 되어 오만한 집단의 종교적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 다문화주의도 이러한 잠재성을 안고 있다.      
            
김두진 연구교수(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정치외교학과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5 15:1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