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없던 봄 가뭄이 들녘의 농부들 시름을 깊게 하더니 오랜만에 비소식이다. 나라에 가뭄이 심할 때면 민간뿐 아니라 국왕부터 지방 관속에 이르기까지 갖은 제물과 정성으로 비가 오기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비를 내리는 것이 우리의 정성과 기도가 아니라, 구름과 적절한 기상조건(습도와 온도 등)이라는 사실은 오늘날의 초등학생 정도면 쉬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고대와 같은 제사나 정성이 불필요한 과학의 시대이다. 비와 같은 자연현상의 예측에는 이러한 현상에 대한 원인으로 추정할 수 있는 요소에 대한 이해와 이를 통한 연관관계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러한 인관론적 관계 맺음은 비단 자연현상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공중보건적 차원의 정책과 관리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공중보건적 차원의 정책개발과 관리는 일반적으로 공중보건 문제의 원인으로 추정되거나 확인된 요소에 대한 대응차원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반 국제역학회지(1984년 13권 240~242쪽)와 영국암학회지(1982년 46권 961~964쪽) 등을 비롯한 여러 편의 연구결과에서 음주자의 경우 비음주자에 비하여 폐암 발생율이 더 컸으며 이는 음주가 폐암의 원인일 수 있음을 제기하였다. 알코올 섭취로 인한 생리적 대사과정과 독성화에 대한 그간의 이론을 고려할 때, 이렇듯 높은 상관성을 보였다는 점에 있어 많은 역학연구자들은 논문 결과에 대한 의구심을 제시하며 논쟁거리가 되었다. 이러한 논쟁 중에 2001년 발표된 Zang과 Wynder의 연구(예방의학회지, 2001년 32권 359~370쪽)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이 연구에서는 연구참여자의 흡연상태에 대하여 흡연상태를 고려하지 않았을 때는 음주자의 경우 비음주자에 비하여 폐암발생율이 대략 2.4배 더 큰 것으로 평가되었으나, 흡연상태를 고려했을 때 음주자와 비음주자간의 폐암발생률의 차이는 없었다고 연구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도대체 이러한 분석결과의 차이는 왜 이루어진 것일까?

이 차이를 설명함에 있어 학문적으로는 혼란편의라 일컫는 것으로 주변 요소들(흡연)에 대한 적절한 통제와 고려가 없는 경우, 평가하고자 하는 기본 요인간(음주와 폐암)의 상관관계에 편의, 즉 오류가 발생하는 상황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음주와 폐암과의 상관성 유무를 추정함에 있어 주변요소인 ‘흡연’의 조건을 적절한 고려하지 못하면 언급한 혼란편의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상관성을 평가하기 위하여 일반적으로 집단간(여기서는 음주자집단과 비음주자집단) 폐암발생률을 비교하는 방법을 활용하게 된다. 한편 기존 사회조사에 의하면 음주자들의 특성은 비음주자들에 비하여 흡연행위에 대하여 관대할 뿐 아니라 음주행위 시 개인별 흡연량도 평소에 비하여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이유로 흡연자 비율이 비음주자 집단에 비하여 음주자집단에서 높을 것이라는 점이 쉬 납득이 되며,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둔다면 흡연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분석결과에서 음주자 집단에서의 높은 폐암 발생율은 결국 상대적으로 높은 흡연율 때문이었던 것이다.

우리들은 주로 주변에서 전해지거나 교육받았던 상식과 경험에 의하여 주변 사물 사이의 인관관계를 인지하게 된다. 많은 경우 큰 오류가 없으나 특별한 상황에서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인과관계가 왜곡된 사실로 나타나기도 한다. 의도하건 또는 의도치 않던, 원인을 규명하는 일은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위이다. 왜냐하면 우리 일상은 이미 원인과 결과에 대한 이해와 이를 활용한 삶의 지혜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길을 걷거나 운동을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또는 음식을 조리하거나,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마실 때에도 부주의한 자신의 행위, 즉 원인으로 생각되는 요소에 대한 부적절한 대응이 우리 자신 또는 지역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을 쉽게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주와 폐암의 사례처럼 앞에 드러난 사실보다는 감추어진 진실을 찾는 노력과 선택은 많은 경우 선지자들에 의해 예비되기도 한다. 하지만 스스로 납득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우리 고대인에게 필요한 지점이고 이를 위해 항상 주변요소들의 영향이 넘나들고 있다는 점을 밝은 눈으로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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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5 06:4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