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인디 뮤지션] 파블로프  

“지금. 강북사운드를 들어라.” (2014년 1집 [26] 홍보문구에서)


글. 이경준 (대중음악평론가)





그렇구 말구요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생각이란 것을 해봤습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상상이란 것을 해봤습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그럼 이제야 확실히 말해둘게요
스스로 보란 듯이 속여넘기는 건 지쳤거든요
알아두세요 이것은 결코 치기가 아닙니다
자 밀린 월급을 주세요지금 당장
<그렇구 말구요>中




본능과 욕망에 충실한 스물여섯

파블로프 정도면 이 코너에 적었던 밴드 중 제일 인지도가 높다고 할 만하다. 심지어 공연장마다 이들을 따라다니는 오빠부대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수가 많지는 않으므로 기꺼이 지면을 할애해 이들을 소개하기로 마음먹었다. 파블로프로 말하자면 얼마 전 정규 1집을 공개하고 현재 활발히 활동 중인 ‘강북 출신’의 4인조 남성 록 밴드이다. 밴드는 자신의 말마따나 노래를 썩 잘하지는 못하지만 충만한 똘기와 잠재적 광기로 이를 커버하는 보컬 오도함, 그와는 대조적으로 사뭇 안정적인 플레이를 자랑하는 기타 류준, 팀의 사령탑을 맡은 지휘자 베이스 박준철, 든든하게 뒤를 받치는 드럼 조동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이 공개한 첫 번째 풀렝스 음반의 제목은 [26]이다. 26이란 바로 이들의 현 나이를 지칭한다. 개인적으로 올해의 음반 인디음악 타이틀로 꼽고 싶은데, 단순해 보이는 숫자 속에 어느 덧 장래를 진지하게 생각할 나이가 되어버린 청춘들의 고민과 상념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처음엔 무작정 달리기였다. 2003년 서울예고 스쿨밴드로 커리어를 출발해 닥치고 공연만 해왔던 것이다. 허나 군대도 다녀와야 했고, 밴드 경연대회에서는 족족 고배를 마셨다. 열정과 에너지만으로 주어진 상황을 극복하기에는 벅찼다. 그렇다고 포기하거나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고, 오히려 정공법으로 이겨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들이 꺼내든 카드는 “더 양아처럼 살자”였다. 뼛속까지 로큰롤러가 되지 않으면(단지 체하는 것으로만 머문다면) 그저 록 뮤지션을 연기하는 워너비로 멈추게 될 터였다. 진지하게 머리를 맞댄 이들은 자신들과 친밀한 토픽인 여자와 밤, 향락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경박하게 생각되지만 이는 로큰롤의 기원과도 맥을 같이하는 진지한 성찰이었다. 이런 아이디어들이 앨범의 혈관을 이루었고,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한국 가요(산울림, 신촌블루스, 임재범)들이 그리로 수혈되었다. 공연장에선 어쩔 수 없이 서양 록 음악을 하지만 한국에서 자라 이곳의 음식을 먹고 이곳의 여인네를 만나 연애하는 터. 자연스럽게 이곳의 정서가 움틀 수밖에 없는 청년들 아니겠는가.

그들은 자신들의 방향성을 ‘강북사운드’라 명명했다. 공연은 주로 홍대에서 하지만 천문학적인 월세를 자랑하는 홍대본진에 포함되기보다는 그 변두리를 서성거리는 음악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강남이 스타일로 대변되는 곳이라면 이들이 생각하는 강북은 단지 지리학적인 개념만이 아니라 심리적, 정서적으로도 주변인일 수밖에 없는 스물여섯 살의 음악가들이 거하는 복합다면적인 공간이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이스턴사이드킥, 아시안체어샷 등이 함께 거론되지만 파블로프는 이런 구획에 묶여 있으면서도 또 뚜렷한 정체성을 지닌 밴드다. 아직 ‘독보적’이라고 하진 못하겠지만 충분한 개성과 욕망으로 똘똘 뭉친 음악. 이것이 밴드의 초창기와 현재를 갈라놓는 변별지점이고 이들은 그때보다 부쩍 자라났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2014년 10월. 자신에게 물을 먹였던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인 연말결선에 진출해 있는 상태이다.


항상 불안하게, 늘 초조하게

사실 이들의 데뷔작 [26]은 햇빛도 보지 못한 채 유산될 수도 있었다. 소속사(러브락 레코드)에 생긴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이들의 앨범제작에 할당된 비용이 전부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강북사운드’의 태동은 대책 없는 유예와 기다림의 다른 이름이었다. 발매날짜가 계속해서 바뀌는 동안 초조감은 쌓여갔지만 넋을 놓고 있기에는 시간이 아까웠고 멤버들은 그 기간 동안 차라리 사운드의 질을 높이는 데 전념하기로 했다. 녹음용 앰프를 스스로 제작했고, 지미 헨드릭스처럼 마이크 각도를 테스트했으며 연습실에 틀어박혀 미치광이 과학자마냥 이런저런 실험을 지속해보았다. 게다가 멤버 전원이 녹음 내용에 대해 동의해야 다음으로 넘어간다는 반민주적 규율 때문에 레코딩은 한없이 느리게, 정말 끝날 수나 있는 것인지 하는 의구심과 더불어 진행되었다. 하지만 이런 파쇼적 내부규정 덕택에 역설적으로 팀워크는 증강되었고 2014년 5월 공개된 새 음반은 누구에게 들려주어도 부끄럽지 않은 산물이 될 수 있었다(뉴턴과 헬리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불안은 가끔 발전의 동력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하여 [26]은 불가피하게 사력을 다했고 부득이하게 퀄리티를 높일 수밖에 없었던 질풍노도의 청춘들이 만들어낸 생생한 기록이 되었다. ‘한껏 조여진’, ‘담아만 두세요’, ‘이미 끝났다는 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해마다 이맘때쯤’ 등 수록곡들은 미래에 대한 불완전한 예측, 현재의 좌절, 돌아올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향수 등 본인들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시간축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으며 밴드는 이를 적확한 한국어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합주실에서 연주하다가는 까먹고 기억했다가는 바로 상실된 수많은 습작 같은 리프와 멜로디들도 최대한 가감 없이 드러내려 했고 그 결과 앨범은 가장 뛰어난 음반은 아닐지언정 2014년 가장 솔직한 인디 록 음반이 되었다. 때로는 까불거린다고 혼나고 가끔은 안개 깔린 앞날이 두렵기도 하나 어쨌든 삐걱거리면서 여태껏 온 자신들이 대견할 수밖에 없다. 과연 이들이 염원대로 미국 밴드 파블로프의 개(Pavlov’s Dog)의 명성을 능가할 수 있을지 내내 지켜볼 일이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2 13:5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