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동향] 소수자의 시선

인종주의, 차이, 차별


박경태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소수자와 한국사회』 저자



다른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된다는 것, 누구나 알고 있는 얘기다. 하지만 주위를 돌아보면 이런저런 차별이 곳곳에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도대체 우리는 왜 차별을 할까? 차별을 하는 사람에게 이유를 물어보면 어쨌든 ‘우리’와는 다르지 않느냐,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대답한다. 아무래도 여자는 약하니까 군대에 가더라도 전투병이 되기는 어렵지 않으냐, 영업부서는 고객들의 눈이 있으니 장애인을 고용하는 것은 곤란하지 않으냐, 이주노동자는 한국말이 서투니까 임금이 낮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우리’와 다른 것이, 즉 차이가 차별의 근거라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차별이 있지만 그것은 전혀 정당화될 수 없다. 인종차별도 마찬가지다. 미국 루이지애나 주에서는 1983년에 매우 놀라운 판결이 있었다. 수지 핍스라는 백인 여성이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서 여권을 신청했는데, 신청서에 기재를 잘못했다는 이유로 발급이 거절되었다. 출생기록부에는 흑인으로 되어있는데도 신청서에는 백인으로 표시했기 때문에 발급을 거절한다는 것이다. 자기는 물론 부모, 친가․외가의 조부모를 포함한 모든 친척들이 다 백인인 이 여성은 자신이 백인이므로 출생기록부의 잘못된 기록을 정정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담당 부서는 자신들의 기록이 정확하다면서 정정을 거부했다. 핍스 씨는 자신의 인종을 되찾기 위해서 주 법원에 제소를 했지만 패소했다. 그런데 법원이 제시한 이유가 참으로 황당하다. 당시 루이지애나 법은 누구나 최소 32분의 1 이상의 흑인 피가 섞여 있는 사람은 흑인으로 규정하게 되어 있었는데, 핍스 씨는 5대조 조상 중의 1명이 흑인이므로 32분의 1에 해당한다는 것이 판결 이유였다. 단 한 방울이라도 흑인의 피가 섞여 있으면 흑인이라는 이 법칙은 미국에서 ‘피 한 방울의 법칙(one drop rule)’라고 불린다. 도대체 흑인은 누구이며, 백인은 또 누구인가? 인종이란 과연 무엇인가?

흔히 우리는 인종의 정의를 “신체적 특징에 기초해서 분류한 인간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위의 예를 보면 인종의 진정한 정의는 “신체적 특징에 기초해서 ‘사회적으로’ 규정한 사람들의 집단”이다. 즉 우리 마음대로 기준을 정해서 사람들을 나누면 그게 인종이 된다는 것이다. 생물학계와 의학계에서는 이미 1960년대에 ‘인종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그리고 현실 사회에는 인종구분이 엄연하게 존재하고 있다. 게다가 이런 구분의 역사는 꽤 길고 치밀하다.

19세기 서구에서는 백인이 흑인에 비해서, 아니 다른 어떤 인종에 비해서도 우월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과학적 측정’이 크게 유행했다. 어떤 학자는 두개골의 가로와 세로 비율을 측정해서 백인이 더 길므로 더 우월한 인종이라고 주장했다. 어떤 학자는 배꼽과 성기까지의 길이를 측정했는데, 그 길이가 짧은 원숭이처럼 흑인은 짧고 백인은 길므로 역시 백인이 더 우월한 인종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학자들 중에는 코와 입술까지의 길이를 잰 사람도 있었고 이마의 각도를 잰 사람도 있었다. 그야말로 아무거나 재고는 이게 증거라고 주장하는 셈이다. 물론 이런 측정에 사용된 표본이 제대로 뽑혔을 리가 없다.

소위 과학적 측정의 백미는 두개골의 부피를 잰 것이었다. 두개골이 크다는 것은 두뇌가 크다는 것을 의미하고, 두뇌가 크다는 것은 더 똑똑하다는 것, 즉 더 진화한 인종이라는 것의 증거로 여겨졌다. 두개골 측정에서 대표적인 과학자였던 사무엘 모턴이라는 미국의 의사는 다양한 인종의 수많은 표본을 측정해서 백인의 두개골이 흑인이나 다른 인종에 비해서 크기 때문에 가장 진화한 인종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백인이 아닌 인종은 아직 진화가 끝나지 않은 존재들, 즉 아직 완전한 인간이 되지 않은 존재라는 말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만약 두개골이 큰 사람이 더 똑똑하다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대부분의 여자들보다 더 똑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말이다. 둘째, 그렇다면 측정을 했더니 백인의 두개골이 더 크게 나왔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여기에는 ‘사기’가 포함되어 있다. 모턴은 측정에 사용된 표본을 고를 때 백인은 전원 남자의 두개골을, 흑인은 남녀가 섞인 두개골을 골랐고, 아메리카 인디언의 표본은 페루의 체격이 작은 어느 부족의 두개골을 사용했다. 과학이기는커녕 사기 중에서도 엉성한 사기에 불과했지만, 당시의 사람들은 의심을 하지 않았고 측정 결과가 보여준 결론에 환호했다.

그런데 어차피 엉터리이기는 하지만 이런 사이비 과학을 해석할 때 주의할 점이 하나 더 있다. 여기에서 백인이 흑인보다 우수하다는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고, 과학은 단지 그것을 정당화해주는 도구로 활용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측정을 하다 보니 차이가 있더라는 것이 아니라, 차이가 있는 게 분명할 테니 그것을 입증할 수 있는 것을 골라서 측정을 한 셈이다. 그래도 피부색이 다르지 않냐고, 생물학적 차이는 엄연히 존재하는 것 아니냐고? 예를 들어보자. 사람의 피는 크게 보면 네 가지 혈액형으로 나뉜다. 그렇지만 우리는 혈액형에 따라 인종을 구별하지는 않는다. 세상에는 키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지만 누구도 키에 따라 인종을 구별하지 않는다. 오직 피부색만이 인종을 구분하고 차별하는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 이유는 피부색에 따라 이미 노예제도라는 착취-피착취의 관계가 만들어져있었기 때문이며, 피부색에 따라 기득권이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정리해보자. 차이가 있어서 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다. 차별을 하기 위해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차이를 굳이 만들어내는 이유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인종주의란 “인종에 따른 생물학적 차이가 인간의 능력을 결정한다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한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는 믿음을 내포하고 있으며, 따라서 인종 간의 불평등은 어쩔 수 없거나 당연하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이런 생각 때문에 인간이 다른 인간을 노예화함으로써 짐승처럼 부리는 일이 벌어졌으며, 문명화를 빙자한 식민화라는 비인간적인 지배가 이뤄졌으며,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이 수많은 학살과 살육이 벌어졌다. 오늘날 한국에서의 인종주의는 외국인 혐오, 이주노동자 차별, 이슬람 증오 등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외국인의 평균 범죄율이 한국인의 절반에 불과한데도 마치 모든 외국인이 범죄인인 것 같이 법석을 떠는가 하면, 이주노동자를 모두 추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이런 목소리가 인종주의와 무엇이 다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존재하지도 않는 인종 간의 차이를 근거로 다른 사람들을 차별을 하는 인종주의, 과연 21세기에도 보고만 있을 것인가!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2 15:3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