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우칼럼] 마르코 폴로와 ‘대항해시대’

본교 사학과 박사과정 권용철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우리에게 이름이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는 고전이다. 이탈리아 베니스 출신의 상인이었던 마르코 폴로가 13세기 후반에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인도양, 중국 등지를 오고가며 보고 들었던 것들을 서술한 이 견문록은 원래 제목이 <세계의 서술>이었다. <동방견문록>이라는 이름은 일본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어로서 이를 우리가 그대로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마르코 폴로는 ‘동방’보다도 범위가 넓은 ‘세계’에 대해서 기록을 남기고자 한 것이었다. 비록 이 기록은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서 베니스로 돌아온 이후 제노아와의 전투에서 사로잡혀 감옥에 갇혔을 때, 그가 말하는 내용을 다른 사람이 받아 적으면서 만들어진 것이었지만 그 정확성과 방대함은 지금 보아도 매우 놀라울 정도이다. 하지만, 십자군 전쟁 이후로는 아시아에 대해 거의 지식을 갖추지 못했던 13세기 당시의 유럽인들은 마르코 폴로가 남긴 기록을 허풍이라고 치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서 머물렀던 시기는 몽골제국(원 제국)이 남송을 정복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던 때였다. 오랜 시간에 걸쳐 나름 안전하게 마르코 폴로가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몽골제국이 마련해놓은 여러 가지 교통 시설 덕분이었다. 당시 몽골제국을 통치했던 쿠빌라이는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를 통치하기 위해 다양한 출신 성분의 지식인들을 포섭했고, 마르코 폴로 역시 쿠빌라이의 환대를 받으면서 중국에서 만족스러운 생활을 보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마르코 폴로는 17년(1274～1291) 동안 중국에 머무르며 수월하게 자신의 견문을 넓혀 나갔던 것이다. 그 덕분에 마르코 폴로는 개인적인 느낌이 많이 서술되어 있는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어느 지역에 대한 정치, 문화, 지리, 종교 등에 관한 사항을 전반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독특한 자료를 남길 수 있었다.

  세계사에서 몽골제국의 등장은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칭기즈 칸이 몽골의 여러 부족들을 통일하고 제국을 세워 정복 전쟁에 나선 이후, 몽골제국은 주변의 여러 국가들을 정복하여 세력 범위를 넓혀 갔으며 1241년에는 지금의 폴란드, 헝가리까지 침공하여 유럽의 중세 기사 군대를 격파하면서 유럽인들을 놀라게 했다. 몽골제국의 정치적 격변으로 인해 유럽 원정이 도중에 중단되지 않았다면, 몽골 군대는 아마 유럽 전체를 휩쓸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동방에서 나타난 갑작스러운 몽골족의 출현에 놀란 유럽인들은 선교사를 몽골에 파견하여 정보를 캐내오게 했다. 이러한 선교사들이 몽골제국에 대해서 기록을 남겼지만, 유럽인들의 인식에는 그리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하지만, 마르코 폴로는 이들 선교사들과는 달리 몽골제국에 대한 염탐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고, 전성기의 몽골제국에 대한 여러 가지 현상들 그 자체를 기록에 남긴 것이었다. 하지만, 마르코 폴로와 동시대에 살았던 유럽인들은 동방에 대한 이야기들을 흥미로운 환상으로만 받아들였고, 현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코 폴로의 기록은 사라지지 않았고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유럽인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보물창고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게 되었다. 심지어 마르코 폴로의 기록은 유럽인들 사이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을 정도였다.

  마르코 폴로의 기록을 통해 호기심을 충족했던 여러 유럽인들 중에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 바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였다. 마르코 폴로보다 200년이나 늦게 등장한 콜럼버스가 동방에 대한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늘 손에 들고 있었던 것이 바로 <세계의 서술>, 즉 동방견문록이었던 것이다. 마르코 폴로가 말하고 있는 동방의 화려한 모습들은 콜럼버스의 뇌리에 계속 각인되었고, 결국 그를 세계사의 중요한 전환점인 신대륙 발견으로 이끌게 되는 요인의 하나가 되었다. 몽골제국이 광범한 지역을 정복, 지배하면서 만들어진 ‘세계화의 시대’를 배경으로 탄생할 수 있었던 마르코 폴로의 기록이 200년이 지나 더 큰 규모의 세계화를 이룩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즉, 13세기 몽골제국이 만들어 놓은 활발한 동서 문물 교류의 영향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대항해시대라고 하는 결과를 탄생시켰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서방에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동아시아 사람들과는 다르게 유럽인들이 동방에 대해 지속적인 호기심과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 점은 13세기의 세계화가 15세기의 대항해시대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이렇게 몽골제국에 의해 정복된 지역이 아닌 유럽에서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더 나아가 동방에 비해서 한참이나 뒤처졌던 현실을 유럽이 극복하면서 훗날에는 발전된 기술과 군사력으로 아시아를 침략할 수 있었던 힘은 낯선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무관심이나 두려움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렇게 역사에서는 의도하지 않은 시간, 공간에서 커다란 변화의 불씨가 되는 사건들이 생겨나곤 했다. 하지만, 그 변화는 결코 하늘 위에서 떨어지듯이 갑작스럽게 생겨난 것이 아니었고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의 변화를 향한 지속적인 갈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현재 우리는 500년 전보다 더욱 광범한 세계에 대한 정보들이 대량으로 생산되고 신속하게 전파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렇게 무한정으로 파급되는 정보의 바다 속에서 자신에게 유용한 것들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무언가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할 것이다. 마치 일부 유럽인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동방에 대한 지적 호기심과 동경, 열망을 꾸준히 가지면서 낯선 세계에서부터 전해진 정보를 생산적으로 흡수했던 것처럼 말이다. 콜럼버스가 미지의 동방을 찾아나서겠다고 했을 때, 아마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열정은 콜럼버스라는 이름을 세계사에 영원히 남겨두게 하였다. 학문에 매진하고 있는 우리들도 찾고자 하는, 발견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한결같은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관련 정보를 찾아나간다면 자신이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바를 찾아내어 나아갈 길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모든 원우들께서 자신만의 새로운 항로를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2 10:5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