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의 미학

   글 송승엽 기자
사진 점프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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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파울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를 먼저 떠올린다. 경기 흐름을 끊고 플레이를 방해할 때 자주 사용되기 때문이다. 어느정도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파울도 유용하게 쓰면 경기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문제는 파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하는 의도다.

때론 고의적 반칙이 필요하다 

파울은 수비수(스토퍼)에겐 또 하나의 무기다. 농구를 포함한 모든 구기종목에서는 상대 에이스를 막기 위해 필요 이상의 견제를 하곤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점수를 쉽게 빼앗기기 때문. 감독은 이런 현실을 반영해 수비를 잘 하는 선수를 에이스에게 붙인다, 이를 박스 원 혹은 맨투맨이라고 부른다.

박스 원을 수행하는 스토퍼들의 역할은 한정되어 있다, 거친 수비 혹은 파울로 에이스의 공격을 끊는 것. 특히 발이 느리고 운동능력이 떨어지는 경우 몰래 옷을 잡거나 끌어당기는 등 지저분한 파울로 공격을 끊는다. 이 파울이 정도가 심하면 언스포츠맨라이크파울(舊 인텐셔널파울), 즉 더티파울이 되는 것이다. 지금은 스포츠맨십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이런 부분이 발생할 시 엄격한 판정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이전에는 이런 요소가 경기의 흐름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요소로 여겨졌다.

실제로 7~80년대 NBA에서는 한 두명의 공격수를 막기 위해 더티파울을 구사하는 전문 수비수가 기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더티 파울과 함께 트래쉬 토크(경기 중 심리전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 상대에게 거칠게 말하는 행위)를 구사하며 상대 선수의 심기를 건드리는 싸움꾼들은 팬들의 야유를 받는 대신 감독의 신뢰를 얻었다. 경기 중 이루어지는 거친 파울과 욕은 상대가 소극적으로 경기를 펼치도록 만들고, 이는 수비와 동시에 심리전에서 우위를 가져오는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지만 그 시절에는 이런 작전이 꽤 잘 먹혔다.  
      

이런 역할을 잘 수행한 선수로는 지금은 은퇴한 브루스 보웬이 있다. 더티 파울을 자주 범했기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선수였지만, 그의 수비가 없었다면 스퍼스의 우승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그만큼 그의 수비는 중요한 순간 빛을 발했다. 2000년대를 풍미한 포인트가드 게리 페이튼도 거친 수비와 트래쉬토크의 달인이었다. 다만 페이튼은 보웬과 달리 수비 외적인 부분에서도 뛰어났다. NBA 명예의 전당에 오를만큼 걸출한 실력을 가진 선수였다. 보웬은 스퍼스에 공헌한 점을 인정받아 등번호 영구결번을 받았다.(지금은 라마커스 알드리지의 등번호 사용으로 영구 결번이 취소된 상태)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더티파울을 범하는 경우는 많다. 매치업 선수가 슛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일부러 손을 세게 때린다든지, 또는 팔꿈치로 몸을 친다든지.. 이런 반칙을 통해 상대에게 두려움을 심어주면 쉽게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선수 입장에선 이런 부분을 쉽게 포기하기 힘들다. 물론 이 파울 자체가 고의성을 띄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옹호를 받지는 못한다.    
  
끊어야 하는 상황  

앞의 사례와는 달리 반드시 파울을 범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예를 들면 경기 흐름상 교체를 해야 하는데 경기가 논스톱으로 진행될 경우, 이럴때는 파울을 통해 경기를 멈춰 선수가 교체투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중요하다. 특히 접전상황에서는 상대가 핵심선수를 못 들어오게 하기 위해 파울을 피하면서 경기를 펼치기 때문이다. 얼마나 빠르게 파울을 범하느냐가 경기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사실 고의적 파울이 가장 많이 나오는 상황은 따로 있다. 바로 종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접전을 펼칠 때다. 특히 3점~4점차로 지고 있을때는 공격할 시간이 없으므로 일부러 파울을 저지르기도 한다. 팀파울을 만들어 자유투를 내주고 공격권을 다시 받기 위함이다. 사실 이는 도박에 가깝다, 상황에 따라 자유투 득점을 내줄 수도, 실점 없이 다시 한번 공격권을 가질수도 있기 때문.

선택권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펼치는 극단적인 방법이지만 효과는 탁월하다. 실제로 이 전술을 통해 지고 있던 경기를 뒤집는 사례도 많았다. 2002년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결승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4쿼터 막판까지 큰 점수차로 지고 있던 경기였지만 압박 수비와 자유투 작전을 시도, 극적인 동점을 이끌어냈다. 기사회생한 대표팀은 연장에서 분투, 중국을 꺾고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자유투 작전이 없었다면 보지 못했을 감동적인 장면이다. 

여담이지만 이런 작전의 피해자는 대부분 자유투가 좋지 않은 선수들이다. 전주 KCC의 하승진, 지금은 은퇴한 샤킬 오닐이 대표적, 특히 오닐은 핵-어 샤크(자유투가 좋지 않은 샤킬 오닐에게 일부러 슈팅파울을 범하는 작전)라는 작전을 만들어 낼 정도로 자유투 능력이 떨어졌다.

마지막으로 경기 흐름을 끊는 파울이 있다. 주로 경기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한 용도로 시도한다. 예를 들면 상대가 뛰어난 경기를 펼쳐서 기세를 꺾어야 할 때, 혹은 작전타임이 필요한 타이밍에 파울을 범하는 식이다. 실전에서는 아무래도 전자보다는 후자의 경우에 더 많이 사용한다.

파울은 필요악이자 양날의 검

이렇듯 파울을 적절히 사용하면 오히려 경기를 치르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허나 아직은 이런 파울 전술을 반대하는 여론이 좀 더 거세다. 이 자체가 경기의 흐름을 끊는것을 의도로 하기 때문에 (경기를 관람하는)관중들에게 지루함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옳은 말이다. 경기를 치르는 입장과 보는 입장은 다르기 때문.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파울을 잘 사용하는 방법은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없다. 우선 파울 상황이 벌어졌을 때 선언을 하는 과정이 복잡하고 길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자연스레 경기가 늘어진다. 앞으로 국내 농구팀이 지금처럼 수비를 중시하는 농구를 버리지 않는다면 지루한 경기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KBL은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공격 농구의 필요성을 많이 강조하고 있다. 저득점 경기를 줄이기 위해 스코어를 늘릴 수 있는 여러 룰을 고안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파울은 필요악이자 양날의 검이다. 파울의 미학을 논하기 위해 이 글을 썼지만 읽고 나서는 파울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어느정도 이해하는 선에서 그칠 수도 있다. 허나 괜찮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성 혹은 연인과 함께 농구장을 간 사람들이여, 상대가 파울이 많아 경기가 지루하다고 하거든 당당하게 이야기해보자. 저 팀은 전술상의 문제로 파울을 하는 것이라고! 상대에게 점수를 따고 뭐 그런건 아니지만 적어도 똑똑해 보일수는 있지 않을까. 필자의 글이 농구를 재밌게 보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