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공계 교수들은 이공계 대학원생들의 고충을 귀담아 들어야



본지는 이번 학기에 ‘이공계 연구환경’이라는 주제로 이공계 대학원 재학생 혹은 졸업생들의 글들을 실었다. 이공계 원우들이 경험하고 있는 고충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번째로는 경제적 문제이다. 이공계 원우들은 연구실에서 제공되는 장학금 명목의 돈만으로 생활비와 등록금을 충당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연구실에 매일 출퇴근해야 하므로 따로 아르바이트를 할 만한 시간적 여유는 부족하다. 역량을 쌓아야 후에 자리를 잡고 경제적 안정을 도모할 수도 있을 텐데, 당장 생활비가 없으므로 없는 시간을 쪼개어 아르바이트를 하며 미래를 버리는 악순환에 빠져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학문적 문제이다. 원우들은 회사에 ‘입사’한 것이 아니라, 학생이자 연구자로서 대학원에 ‘입학’한 것이다. 그런데 다수의 이공계 원우들은 연구실에서 진행하는 기업이나 국가와 연계된 프로젝트에 참가해야만 한다. 연구자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연구의 모든 과정을 중시하며 그것들을 차근차근 익혀나가는 것이 필수임에도 불구하고, 원우들은 황급히 가시적 성과를 내야만 하는 직장의 상황으로 내몰린다. 단기적 프로젝트에 연연하다보니 연구실에 축적된 것은 학문적 전통이 아니라 프로젝트와 관련된 행정업무 처리방식인 경우도 태반이다.

세 번째로는 인격적 혹은 관계적 문제이다. 연구실에서 지도교수의 권력은 절대적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교수가 편법적으로 연구비를 처리하거나, 상하구조에 기대어 원우를 성희롱·성추행하거나, 원우 개인에게 돌아가야 할 인건비를 공용화시키는 경우도 많다. 날마다 연구실에 출근해야 하는 이공계 원우들은 선배 혹은 지도교수와 관계가 한 번 틀어지면 오랫동안 정신적 외상을 겪기도 하고, 학위논문 심사에서 불이익을 당하기도 하며, 학계에서 자신의 자리를 잡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그토록 긴 시간과 노력을 들여 대학을 졸업하고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도교수에게 한 번 잘못 보인 것 때문에 지금까지 쌓아온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지도교수가 성추행을 저지르고 사임하는 추악한 경우에도 아무 잘못 없는 원우들은 갑자기 연구실의 존폐가 흔들리는 상황을 만나기도 한다.

지금 우리 이공계 원우들이 이러한 고충들을 겪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연구실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지닌 사람은 여전히 교수다. 권한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이공계 교수들은 이공계 원우들의 고충을 귀담아 듣고 원우들을 함부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교수 한 사람의 역량에 기대지 않아도 연구실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교수들이 바뀌지 않으면 시스템으로도 불충분할 것이다. 경청의 덕목이 필요한 시절이다. 선생이 된다는 사실의 엄중함을 교수들이 잊지 말기를 바란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8 01:58: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