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이별 뒤에(신승훈), 10년의 약속(전람회), 사랑 Two(윤도현 밴드), 소원(김현성). 나의 뮤직 스트리밍 플레이어에 담긴 곡들이다. ‘그래, 이 곡이었어!‘하고 소스라치며, 하나둘씩 옮겨 담다보니, 어느새 나의 앨범에는 다양한 장르의 노래 150여곡이 촘촘히 걸려 있다. 이들은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걸친 당대의 히트곡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며칠 전 버스 정류장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내가 좋아하는 그녀, 유리는 없었지만 분명히 가수 ‘쿨’이었다. 아쉽지만 그들은 나를 볼 수 없었다. 버스정류장 광고판 안에서 데뷔 20주년 기념 콘서트 ‘안녕들 한가요’에 놀러 오라며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으니까.

꼬질꼬질한 교복을 입고, 단발머리에 뺑뺑이 안경을 쓴 채 “대학만 가봐라”를 부르짖던 시절, 아버지는 KBS1에서 방영하는 ‘가요무대’를 참 좋아하셨다. 방송시간은 매주 월요일 밤 11시였는데, 당시 다른 채널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었다. 매주 그 시간마다 때로는 애교를 부리고, 때로는 떼를 쓰며, 아버지와 리모컨 쟁탈전을 벌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버지는 왜 그렇게 고루하고, 똑같아 보이는 무대를 즐기셨을까. 최근 방영한 무한도전 ‘토토가’의 폭발적인 인기가 시원한 답이 될 것 같다.

히트곡, 그리고 당대 아이콘들이 갖는 의미는 단순히 노래 한 곡, 가수 한명이 아니다. 그 시대를 살아온 우리의 추억이었고, 세월의 흔적을 발견하는 신기함이었다. 그리고 그 노래들에는 그 때로 돌아갈 수 없는 아쉬움도 담겨있다. 그래서 ‘토토가’ 무대는 온몸이 들썩일 만큼 신나고, 그러면서도 어딘가 짠하고 아련한 이상한 경험을 선사했다.

이제야 흘러간 히트곡 무대를 보고 또 보는 부모님의 심정을 이해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가장 찬란했을 그 어느 때를 떠올리고 함께 들뜰 수 있을 정도의 열광. 당대 음악이 소환하는 젊은 날의 감성과 추억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지. ‘토토가’는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지내온 20~30대가 성인이 된 뒤 거의 처음으로 흠뻑 빠져서 감상한 음악방송이었으리라.

언젠가 1020 음악이 지금과는 다른 감성으로 당신의 마음을 두드릴지 모른다. 복고라 불리는 과거를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이 복고패션이라며 열광하는 것이 아닌, 진정 당신의 지난날과 달콤한 추억이 녹아있는 소중한 일기장을 펼치듯. 마치 나에게 ‘토토가’의 노래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봄을 맞아 모처럼 대청소를 했다. 반가운 친구를 만났다. 먼지에 잔뜩 쌓인 카세트테이프였다. 펜으로 꾹꾹 눌러쓴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1997년 3월, 고등학교 친구들과 처음으로 - 미영, 민정, 다영, 승호, 해진, 승범...>. 처음 고등학교 친구들과 노래방에 갔을 때 놀던 걸 녹음한 테이프였다. 내일은 침대 밑 어딘가에 있을 워크맨을 찾아봐야겠다.


김근영 동인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3 01:49: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