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임주 (의과대 의과학과) 교수가 관찰한 쥐의 시냅스. 유 교수는 "현미경을 들여다 보면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듯 하다"고 말했다. 사진│유임주(의과대 의과학과)교수 제공
9:30 광학현미경과 시작되는 아침
이호연 연구원은 초파리의 성별을 구분하는 일로 하루의 일과를 시작했다. 개체 간 교배를 통해 유전형질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가 나오는 패드에 초파리를 올려두니 몇 초 만에 움직임이 멈췄다. 마취도니 초파리는 모두 광학 현미경으로 옮겨졌다. 랩(lab)실에는 광학현미경이 6대 있다.
이 연구원은 현미경 옆면을 터치해 광원을 켰다. 현미경을 위 초파리는 몸통 색깔, 초파리의 겹눈, 암컷 수컷의 생식기, 털을 비롯해 초파리 주둥이까지 자세히 보였다. 이호연 씨는 털 길이나 생식기를 본 후 지름 3㎜ 정도의 붓으로 초파리를 성별로 구분해냈다. 이 연구원은 “처음에는 징그러웠지만 매일 보다 보니까 이제는 별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답했다.
10:30 ~ 16:30 초파리 뇌 해부
생리식염수에 초파리 여러 마리를 띄우고 해부를 시작했다. 그는 초파리 뇌를 해부하기 위해 적게는 2시간부터 많게는 10시간까지 현미경을 이용해 해부한다고 했다. 그는 우선 주삿바늘로 초파리의 머리를 몸통에서 분리했다. 이후 떼어진 머리에서 다시 뇌를 싸고 있는 헤드 캡슐(뇌를 싸고 있는 겉껍질, 겹눈 등)을 제거해나갔다.
백색 투명한 뇌만 남고 나서야 초파리 하나의 해부가 끝났다. 뇌만 남기는 작업은 섬세한 손기술이 필요하다. 세포 간 결합력이 낮은 뉴런이 뭉쳐져 있는 정도의 조직이어서 주삿바늘로 헤드 캡슐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뇌가 찢어지기 쉽다. “식염수 위에서 둥둥 떠다니는 초파리 머리를 주삿바늘 두 개로 섬세하게 잘라내는 게 맘처럼 쉽지 않아요. 거기다 몇 시간이고 현미경을 보고 있으면 눈도 피로해져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죠.” 그는 해부 도중 잠깐 휴식을 취하며 핸드크림으로 손을 마사지했다. “주삿바늘을 계속 잡고 있으면 엄지와 검지 사이 근육에 쥐가 나거든요.”
수월하게 초파리의 뇌를 꺼낸 이 씨는 “해부에 능숙해지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고 했다. 이 연구원은 초파리 50마리를 해부하고 나서야 뇌를 꺼내는 데 처음으로 성공했다. “처음에는 6마리의 뇌를 분리해내는 데 1시간이 걸렸고, 그마저도 찢어지지 않은 한 두 개의 뇌는 주삿바늘 때문에 부분적으로 상처가 나 온전한 상태로 뇌를 관찰하는 것이 불가능했죠.” 한두 달 지나 한 시간 동안 10마리 정도를 해부할 수 있던 이 연구원은 연구실에 들어온 지 1년 반이 지난 지금 한 시간에 뇌 50개를 꺼낼 수 있게 됐다.
▲ 이호연 연구원이 관찰한 초파리의 뇌. 다초점 형광 현미경으로 촬영했다. 이 연구원은 "처음 본 콘포칼 사진은 별을 찍은 사진 같았다"고 말했다. 사진│이호연 연구원 제공
이 연구원은 포름알데히드와 생리식염수를 이용해 뇌를 고정시켰다. “이 과정을 통해 세포들이 해부한 시점 당시의 상태 그대로 고정이 되고, 방부 처리도 됩니다. 박제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시체를 방부하는 포름알데히드를 사용하면 건강이 걱정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딱히 코가 피곤하다고 느껴본 적은 없고, 다만 현미경을 오래 보면 눈이 피로한 것이 제일 힘들어요. 원체 눈이 건조하고 난시가 있어서 오래 현미경을 보고 나면 초점이 잘 안 맞을 때도 있고요”라고 답했다. 바빠서 건강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이 연구원은 “모든 공대생이 그렇지만 표현력이 부족해 바쁨을 주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20:00~24:00 콘포칼 현미경을 이용한 뇌 스캔
이호연 씨는 암실에 들어가 4~5일간 항체 색소 수용액에 담가 둔 뇌를 꺼냈다. 뇌를 항체 색소가 들어있는 용액에 담그면 특정 뉴런에서 만들어지는 단백질에 항체 색소가 붙는다. 그는 꺼낸 뇌를 콘포칼(confocal, 다초점 형광 현미경)로 관찰하기 시작했다. 형광은 빛이 닿을수록 세기가 약해지기 때문에 보관과 촬영은 암실에서 해야 한다.
콘포칼의 뇌는 빨간 빛이 났다. “빛나는 것은 뉴런(neuron, 신경세포)이에요.” 염색된 특정 뉴런만 형광으로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이 씨는 처음 콘포칼로 초파리의 뇌를 관찰했을 때 ‘밤하늘에 별 떠 있는 것을 보는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굉장히 흥분되고, 흥미롭고, 신기했어요. 과학 잡지나 교과서에서만 보던 신경세포를 내 손으로 직접 염색해서 관찰한 실험이었어요. 과학자가 되기 위해 한 걸음을 떼는 느낌이었죠.”
자정이 돼서야 이 연구원의 일과가 끝났다. 실험실에서 나와 기숙사로 향하는 이 씨에게 현미경의 의미를 물었다. 이 씨는 “저에게 현미경이란 학문에 대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던 계기”라며 도화선이라고 할 수 있죠.”라고 말했다.
이혜진 기자 tardis@kukey.com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9 07:58:4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