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 명제는 고대의 철학자에 의해 정의된 인간이지만 그 실효는 영원하다. 그리고 사회적 동물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소통이다. 현대사회에 접어들면서 소통의 빈도는 높아졌다고 볼 수 있지만, 소통의 질 또한 향상되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우리들은 티비나 인터넷을 통해서 일방향적인 소통, 혹은 반쯤 은폐된 소통을 한다. 모든 생필품은 집에서 배달시키기 일쑤이고, 컴퓨터 앞에서 하는 재택근무가 늘어나고 있고, 친구나 애인과의 관계는 엄지손가락을 통해 랜선 위에서 맺어지고 있다. 첨단문물이 가져다준 이점을 부정할 필요는 없지만, 과연 우리가 온전한 소통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우리도 모르게 소외가 되고 있는 건 아닌지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사고의 패턴은 사회적 산물이며, 각개의 사고를 만나게 해주는 매개물인 언어는 사회에서 만들어진 규약이다. 인간의 통증, 기쁨, 슬픔, 사랑에 관련된 감정들은 주어진 사회 안에서 타인과의 소통을 통하여 얻어진다. 이런 다양한 감정들이 풍부해질수록 삶에 대한 만족도도 비례적으로 커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이다. 소통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소통의 대부분은 작은 기호나 큰 기호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기호를 사용하고 해석하는 법을 잘 배워야 사람끼리의 소통을 잘 할 수 있다. 소통을 잘 하면 ‘눈치가 있다’라고 하고 소통에서 실패하면 ‘눈치가 없다’라고들 한다. 소통의 핵심이 사회적인 정서에 대한 지식과 사회적 협약의 준수에 있다는 증거가 우리의 언어 습관에 묻어 있다. 그래서 해당 사회의 여러 가지 복잡한 정서는 물론 사회구성원끼리 암묵적으로 맺은 비유나 은유와 같은 숨겨진 약속들까지도 잘 이해해야 소통에서 성공할 수 있다. 주어진 사회에서 ‘소통을 잘 한다’라고 하는 것은 소통하고자 하는 자가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전통과 문화는 물론 숨겨진 약속과 정서까지도 잘 알아야 함을 의미한다.
기호학자 퍼스는 소통에서 중요한 기호는 대상체, 표상체, 해석체로 되어 있다고 했다. 대상체는 기호사용자인 발신자와 수신자가 공동으로 느끼는 표현대상이 될 것이고 표상체는 공동으로 표현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퍼스에 의하면 해석체는 사회적으로 어떤 기호를 해석하는 사회적 정서이다. 이를 다르게 이해하면 어떤 기호를 다른 기호로 번역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호를 가지고 소통한다는 말은 자신이 거주하는 사회에서 그에 해당하는 다른 기호로의 번역을 의미한다. 하지만 단순히 어떤 기호를 다른 기호로 이해하는 것이 기호로 소통하는 자가 원하는 기호의 소통에서 성사조건이 아니다. 예를 들면 더운 여름에 어떤 공간에서 어떤 한 사람이 땀을 닦으면서 “왜 이리 덥지?”했을 때 그 공간에 있는 어떤 다른 사람이 문을 열었다면 그 소통하고자 사용된 기호들은 성공되었다고 할 수 있다. 기호발신자는 수신자가 문을 열도록 명령문이나 청유형을 사용하지 많고 혼자말로 의문문(더 정확하게는 답변을 요구하지 않는 수사의문문)을 사용하여 말했지만 기호수신자는 발신자의 의문문을 사회적인 정서로 번역하여 발신자의 입장이 되어 문을 열었다. 이는 기호 해석자가 문법적인 사항보다 사회적이고 정서적인 사항을 더 고려하여 해당 기호를 해석한 결과이다. 이처럼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소통한다는 말은 주어진 상황에서 주어진 기호를 다른 기호로 번역한다는 말인데, 여기서의 번역이라는 말은 책상 위에서의 이론적인 번역이 아니라 상황에 따른 다각적이면서도 총체적인 번역을 뜻한다.
작금의 많은 정치 사회적 이슈들의 근간에는 불통이 있었다. 순진한 분석일 수도 있겠지만 불통은 마음가짐에서 비롯되었다. 소통할 때 ‘이심전심’이라는 말은 나에게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만, 여기서 ‘매력적’이라는 말은 상상의 동물을 공상할 때나 생길법한 것으로 느껴진다. 소통의 결과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이겠지만, 단지 ‘이심전심’만을 신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 상대방이 처해있는 정서적 상황, 그리고 상대방이 속해왔던 사회를 이해하려는 마음이야말로 소통의 출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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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14 05:43: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