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광장과 진혼비의 의미

‘80년대 초 민주화 대열의 선봉에 서서 싸우다 군에 강제 징집되어 죽음을 당한 6명의 학우의 혼을 달래려 이 비를 세운다.’ 진혼비 후면에 적힌 구절이다.
경제학과 초대학회장인 김두황 씨는 5공화국 정권 초기 정권 유지와 사회 안정을 목적으로 시작된 녹화사업의 피해자다. 녹화사업이란 강제징집으로 입대 혹은 입대 전 운동권 활동 경력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운동권 동료와 조직을 실토하게 하는 심사과정과 휴가 기간을 이용해 운동권 동향을 파악해 보고하도록 하는 활동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폭행, 고문 등이 이뤄졌다. 1983년 김두황 씨는 강제징집 3개월 만에 두부가 없어진 상태로 발견됐다. 1985년 4월 17일 문무대 109인 사건으로 강제징집 후 복학한 81학번 학생들이 의문사한 김두황 씨를 비롯해 6명의 민주열사를 기리기 위해 민주광장에 진혼비를 세웠다. 과거에 교양관 잔디밭이라 불리던 민주광장은 민주열사들을 위해 장례를 치른 곳이 되어 현재의 민주광장으로 불리게 되었다.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인 5월 18일, 민주광장에 세워진 민주열사추모비인 진혼비를 찍은 사진 한 장이 학내외에 파장을 일으켰다. 그 사진에는 바이오의공학부 학생들이 주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비석과 비석 주변에 술안주와 조리기구를 올려놓은 모습이 담겼다. 이들은 사과문을 신속히 게시하며 주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추모비의 의미를 훼손시킨 점을 반성했고, 학내 구성원들은 이번 일을 과거에 무관심한 현재의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경솔한 행동에 대한 공개 사과 요구

논란이 된 사건은 경제학과-정경포효반 학생회가 20일 ‘바이오의공학부 학생회와 총학생회 축제준비위원회의 공개 사과를 요구합니다’라는 대자보를 게시하면서 공론화됐다. 이들은 대자보를 통해 바이오의공학부 학생들의 행위를 비판하고 축제를 주관하는 축제준비위원회(축준위, 위원장=하지연)의 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이에 바이오의공학부 학생회는 21일 ‘바이오의공학부에서 사과드립니다’라는 대자보를 게시해 추모비의 의미를 훼손시킨 점에 대해 사과했다. 바이오의공학부 서동권 학생회장은 “민주열사 분들을 기리는 비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고 지적 받았을 때 바로 시정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반성하고 열사님들의 넋을 기리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주점 기획에 참여했던 김정민(보과대 바이오의공학15) 씨 또한 “잘 모르고 했던 행동이 학교 전체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 같아 창피하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더불어 바이오의공학부 학생회 측은 6월 20일 진행될 고대민주열사추모제까지 민주열사추모비 주변을 청소하고 신입생을 대상으로 민주열사 교육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무관심 되돌아보는 계기로

이번 사건은 바이오의공학부의 행동에 대한 비판을 넘어 민주열사비에 대한 학내 구성원의 무관심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바이오의공학부 측에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한 경제학과-정경포효반의 박희석 공동학생회장은 “이번 사건을 통해 민주광장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동언(정경대 행정14) 씨는 “사건이 잘 마무리됐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 모두 추모비에 대한 인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본교 민주동우회(회장=진창원)는 ‘후배들의 사과와 관심, 고맙습니다’라는 대자보 게시를 통해 이번 사건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민주광장과 진혼비의 의미를 되새겼다. 민주동우회 김성곤 사무국장은 “구석에 작게 자리 잡고 있는 진혼비에 대해 학생들이 잘 모르고 있어 일어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며 “후배들에게 역사를 전달하지 못하고 소통이 부족했던 선배들의 탓도 있다”고 말했다. 민주동우회 운영위원 이준영 씨 또한 “사과에만 그치지 않고 실천적 반성까지 나아간 후배들이 고맙다”고 말했다.  

언론의 자극적 보도에 대한 비판

이번 사건을 보도한 일부 언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일부 언론사가 ‘경제학과 학생회 집행위원들이 두 차례 방문하여 이 문제를 지적할 때까지 앞서 서술된 부분은 시정되지 않았습니다’라고 서술된 대자보의 내용을 일부 언론사들이 ‘두 번을 방문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고 서술하는 등 사실관계를 흐렸다는 것이다. ‘바이오의공학부 학생회와 총학생회 축제준비위원회의 공개 사과를 요구합니다’ 대자보를 작성한 이승주 경제학과-정경포효반 공동학생회 기획사무국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사실을 오도하는 보도와 자극적 보도를 지양해 달라고 부탁했다. 민주동우회 운영위원 이준영 씨 또한 “고려대답게 당사자들끼리 잘 정리한 사건을 놓고 선정적으로 보도한 일부 언론사들의 시정을 바라는 바”라고 말했다.
한편 민주동우회와 일부 81학번 교우들은 올해 진혼비 안내판 건립을 목표로 학교와 협의할 예정이다. 6월 20일 민주광장에서는 민주동우회가 유가족과 함께 고인의 뜻을 기리는 ‘고대민주열사추모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글│이영나 기자 lyn@kukey.com
사진│강수환 기자 swan@kukey.com
참고자료│민주로드 사이트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14 17:4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