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아스, 노베르트.  『죽어가는 자의 고독』. 김수정 역. 문학동네. 1982(2009).

문명화된 죽음과 현대인의 고독

김민철(자유기고가)



대표작 『문명화과정』으로 잘 알려진 석학 노베르트 엘리아스의 후기 저서인 『죽어가는 자의 고독』은 문명화과정이 가져온 죽음을 대하는 현대인의 부정적 측면의 변화와 이에 대한 저자의 사회학적 고찰이 담겨져 있다. 오랜 기간 동안의 문명화 과정과 기술, 의학의 발달 과정 속에서 사회구조의 변화와 함께 사람들의 심리구조와 퍼스낼리티 변화가 진행되어 왔고 이것은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에 반영되었다. 과거에 비해 수명이 연장된 현대인에게 죽음은 격리 가능한 것이 되었고 이는 자기불멸성의 환상을 가능케 해주었다.


죽음의 격리

이 글을 통해서 임종의 순간 뿐 아니라 노화 과정에까지 죽음을 확장시킨 엘리아스는 평온하지만 외로운 현대인의 죽음이 고통스럽고 공포스러웠으며 위협적이었지만 친숙하기는 했던 이전 시대의 죽음과 대조적이라고 말한다. 현대인에게 죽음은 낯설고 당혹스러운 것이다. 따라서 죽음은 격리되고 외면당한다. 결국 죽어가는 자들은 배제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불멸성의 환상에 젖어들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개인의 불멸성의 환상은 사회적 개인화 과정과 결합되어 더욱 빈번하게 나타난다. 물론 내세에 영생을 누릴 것이라는 집합적, 소망적 환상에 기대어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공포를 다스리는 점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그러나 최근에 나타난 포괄적인 개인화 과정으로 인해 집합적 환상으로부터 분리된 개별적이고 비교적 사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불멸의 환상이 보다 빈번하게 출현하여 전면에 부상하고 있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론 이는 높아진 삶의 안정성으로부터 기인하는 측면이 있음을 무시할 수는 없다.


진화와 죽음의 양상 변화

엘리아스는 현대 사회에서 나타나는 죽음과 관련된 몇 가지 특수성을 지적한다. 먼저, 현대인은 과거에 비해 현저히 수명이 늘어났기 때문에 스스로의 삶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여 죽음이라는 관념을 자신으로부터 멀리 떼어 놓게 되었다. 이는 의학발달과 과학적 진보를 통해 가능해 진 특징이다. 또한, 높은 안전성을 획득하게 되었고 그럼으로써 자연적 과정의 마지막 단계로서 죽음을 체험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현대 선진 사회에서 사회 내적으로 폭력이 상당히 진정되었고 폭력으로 인한 죽음을 예외적이고 범죄적으로 규정하면서 이로 인해 우리가 느끼는 타인의 폭력으로부터 신체의 안정성 정도가 유례없이 커졌다. 예전에는 침상에서 평화롭게 죽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예외적인 것이었으며 현재 우리가 당연시하는 보편적 인간 속성이라고 간주하는 관념들은 사실상 오랜 사회적 과정을 통해 매우 서서히 모습을 갖추게 된 특수한 사회 구조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사회학적인 문제, 죽음

죽음은 한 인간의 절대적 종말이다. 이러한 죽음을 탈신화화 하는 것에 대해 저항이 커진 것은 체감된 위험의 크기가 커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 죽음 그 자체가 문제가 되어 사람들이 공포와 경악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죽음에 대해 미리 가지고 있는 그들의 이미지 때문인 것이다. 모든 개인은 공통의 사회적 패턴을 습득하고 따라서 죽음이라는 생물학적 과정이 아니라 진화 과정의 특정 단계에 고유한 죽음의 관념과 이와 결부된 태도가 사람들이 죽음과 맺는 관계에 있어서 결정적인 것이 된다. 결국 죽음은 사회학적 문제로 바라보아야 할 대상이 된다.

이 글 전체를 아우르는 키워드는 ‘죽는 자의 고독’이 아닌 ‘죽어가는 자의 고독’이다. 이는 노화 과정에서 경험하는 삶의 변화와 관계의 변화가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는 점을 적절하게 드러내 준다. 여전히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들이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기존의 공동체로부터 격리되어 극도의 외로움과 고립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인 문제를 효과적으로 부각시키는 적절한 묘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음의 격리, 죽어가는 자에 대한 태도, 죽어가는 방식 자체의 변화는 문명화 과정과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실제로 죽음에 대한 관심은 웰빙, 웰다잉이라는 용어들과 함께 현저하게 증가한다. 엘리아스가 지적한 죽어가는 자의 고독은 노인자살과 노인의 삶의 질이라는 문제와도 매우 밀접하게 연결된다. 결국 이 글이 우리 시대의 현실에 대한 보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해주고 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9 08:44: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