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연구환경]

이공대 대학원생의 신분은 학생인가? 직장인인가?


어느 이공계생


관련자라면 한번쯤 생각해 보거나 접해봤을 질문이다. 엄연히 신분은 학생이지만, 출퇴근 시스템, 업무강도, 급여(장학금) 등을 따져보면 이공계 대학원생이 작은 규모의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필자는 대학원생의 환경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업무 체계는 관료제, 보상은 상아탑’. 대학원생은 업무 강도나 환경에 비해 보상 및 대우가 열악한 게 현실이다. 열악한 내용과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그런 이공대 대학원생의 아쉬운 현실의 원인을 한 가지 짚어보고 싶다.

연구실은 지도교수의 권한이 절대적인 공간이다. 지도교수의 인성이나 자질이 바르지 못해도, 불합리한 처우에 어떤 반항도 못하고 따라야 하는 게 대학원생의 현실이다. 과도한 업무 및 잦은 주말 근무, 합리적이지 못한 급여, 연구 외의 과한 행정업무 및 사적인 업무 요구, 편법적인 연구비 처리, 비인격적 대우, 심지어 학생들에게 폭언을 하거나 그들을 폭행하는 일도 심심찮게 발생하는 게 현실이다. 물론 다수가 그런 건 아니지만 소수만의 일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관행적인 부분이 많다. 왜 이런 환경이 형성되었는가? 지도교수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환경은 손쉽게 결과를 얻어내는 방법일 것이다. 편법적 운영을 해도 특별히 제재가 가해지지 않으니, 이러한 환경은 대물림 되었을 것이다. 의례적으로 과도한 업무를 부가하며 주말 및 휴일근무를 요구하거나, 연구과제 인건비를 공용화해 기타 비용으로 사용하는 등 우리 연구환경에 깊게 뿌리내린 관행은 현재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이로 인해 이공계 대학원생들이 기본적인 권리도 누리지 못한 채 연구에 임하고 있다. 어떻게 관행적인 부분을 끊을 수 있을까?

사실 해결책은 쉬운데 있을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제안일지 모르나, 연구실 환경에 대해 제재나 피드백이 될 만한 시스템 수립, 교수와 대학원생에 대한 교육, 그리고 연구실 운영에 대한 지속적 방안모색이 필요하다고 본다. 학교 제도나 규율이 연구실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일부는 기업문화를 벤치마킹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기업은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인성과 규율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을 시행한다. 안전교육처럼 말이다. 사내 규율, 위반행위 및 처벌, 성희롱 예방교육, 사내 보안 등 다방면의 교육이 지속적으로 이뤄진다. 학교 내 시스템은 이런 부분들이 너무 취약하다. 대학원생들의 기본근무시간, 인건비 배분방식, 행정업무 범위, 비인격적 대우에의 대처법 등등에 대한 큰 틀의 규율이 우리들의 연구환경에는 충분히 갖춰지지 못했다. 신호체계가 잘못된 곳에서 법규를 잘 지키라고 강조만 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본다. 교수는 모든 일을 다 해내는 슈퍼맨이 아니며, 모든 것을 냉철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솔로몬도 아니다. 연구실내에도 시대에 맞는 가이드를 제시해 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왜 대학원에 진학해 석·박사 과정을 밟는가? 물론 취업난이라는 시대적 이유도 있겠지만, 젊은 시절의 열정을 학문에 쏟아내고 싶은 게 사실 아니었던가? 솔직히, 세계적 이공계 논문에 개제될 만한 좋은 결과도 연구생들을 거쳐서 나온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젊은 인력들이 좀 더 합당한 처우를 받았으면 한다. 학업에 대한 우리의 열정과 성취감이 기틀이 되어 삶을 돌아가게 만들 수 있는 그러한 학업 여건이 조성되었으면 한다. 그것은 단순히 대학원생의 대우를 개선시키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학계의 학업 성취가 선진국을 뒤따라만 가는 것이 아니라 선도해 나갈 수 있도록 만드는 초석이 될 거라 생각한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9 09:2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