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인디 뮤지션: 주목할 만한 시선] 잠비나이


“아직은 한국에서 실력을 더 쌓아야 할 것 같다." (2012년 어느 자리에서)


글. 이경준 (대중음악평론가)




선명했던 내 꿈 거짓같은 시간 속에
죽어있다 절망과 함께
죽음의 달콤한 유혹이
나를 이끌어
나를 잡아줘
내 꿈을 잡아줘

잠비나이, <Grace Kelly>




세계는 알고, 한국인은 모르는 록 밴드 잠비나이

가히 파죽지세다. 한국의 록 밴드 잠비나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들은 해외바이어들이 밀집한 음악박람회 뮤콘 무대에서 “트렌드를 창조하는 유니크한 그룹”이라는 호평을 받았고, 해를 넘긴 2014년 북미 최대의 음악 페스티벌인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에 섰다. 최근에는 유럽 14개국을 돌며 20여개의 굵직한 공연을 소화하며 현지의 열광적인 반응을 얻어내기도 했으며, 지난 6월엔 뮤지션들의 꿈의 무대인 유럽 최고 규모 페스티벌 글래스톤베리의 스테이지를 장식하며 방점을 찍었다. 이만하면 어지간한 한류스타 부럽지 않은 살인적인 스케줄과 인기다. 이를 실감하지 못하겠다면 유튜브로 들어가 이들의 이름을 찍고 곧바로 뜨는 뮤직비디오 클립을 열어보면 된다. 해외팬들의 엄청난 댓글을 확인하고 놀라게 될 것이다.

밴드를 중심으로 불고 있는 ‘훈풍’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2011년 EBS 스페이스 공감이 주최하는 경연 프로그램 헬로루키 특별상을 받고 2013년에는 한국대중음악상 크로스오버음반상을 수상하며 조금씩 인지도를 넓히긴 했지만 대중 사이에선 여전히 무명이나 다름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밴드는 실망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곡작업을 하며 그 못지않게 치열하게 술을 마시며 영감을 얻었고 관객과 만났다. 마침내 이렇게 소기의 성과를 이뤄냈으며, 꾸준한 해외활동을 위한 교두보를 놓았다고 할 만큼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밴드의 초창기부터 바라본 한 사람으로서 기쁘기 그지없는 일이다.

잠비나이의 성공은 무엇보다 독창적인 콘텐츠의 힘이라 평할 수 있다. 이들은 이름 모를 국악기 몇 개 들고 나와서 ‘힐링뮤직’을 한다며 괴랄한 퍼포먼스를 구사하거나, 인사동 찻집에나 어울릴 법한 팝 레퍼토리를 연주하는 일 따위는 애초부터 하지도 않았다. 이런 음악과는 극점에 서서, 이들은 거문고와 해금을 두 축으로 포스트록과 하드코어 등 서구의 록의 컨벤션을 적극 활용한 헤비니스 뮤직을 추구한다. 일부 해외 사이트는 이들의 음악을 두고 ‘한국 전통을 담아낸 헤비메탈(traditional metal)’ 혹은 ‘민속 메탈(folk metal)’이라는 표현을 거침없이 쓰고 있을 정도다. 그 표현이 100% 적절한지의 여부는 검토의 여지가 있겠으나, 현 유러피언 헤비니스시장의 큰 지분을 담당하고 있는 네오포크(neofolk)의 범주 안에서 이해된 것만은 틀림없다. 록과 메탈을 어렸을 때부터 익히 체화하고 있는 서양 음악팬들이 한국에서 툭 떨어진 신예 밴드에게 마음을 열어준 것이다. “해외에서 연주하는 가장 훌륭한 밴드 중 하나”라는 어느 해외음악웹진의 댓글이 상황을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2010년 발표된 첫 EP [잠비나이]가 일련의 방향성을 제시했다면, 2012년 공개된 첫 풀렝스 음반 [Differance]는 ‘차연’이라는 타이틀이 상기하듯 전작에서 만든 흐름과 파장을 이어가면서도 자신들이 지나온 자취를 지워버리는 영민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때론 작은 해일이라도 일으킬 듯 에너지를 뿜어내다가도, 일순간 종교적인 구원의 색채로 돌아서더니, 마지막엔 종잡을 수 없는 심연으로 청자를 끌어들이고 마는 유독한 음반이다. 또한 전통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전통 내부를 위태롭게 하는 위험한 음반이며, 수록곡 ‘그레이스 켈리’의 제목과 눈앞에 펼쳐지는 이미지 사이의 연관관계를 찾으려고 분주히 애쓰던 사람들을 향해 도발적으로 씩 웃어주는 2012년의 문제작이다. 만약 아직까지 이들의 음악을 접해보지 못한 분이 있다면, 먼저 EP를 추천하는 바이고 다음에는 필히 이 작품을 들어볼 것을 권한다. ‘홍대 밴드’ 혹은 ‘인디뮤직’의 경계 안에서 일정 패턴으로 소비되어 온 음악과는 태초부터 궤를 달리하는 사운드와 대면할 수 있다.


최초항이자, 마지막 항인 밴드

이 모든 것을 억지스럽지 않게 구현해냈다는 점이 대단하다. 2011년 함께 했던 인터뷰 자리에서 밴드의 해금주자 김보미는 “음악에도 법칙이 있다. 그런 법칙에서 벗어날 필요는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국악을 전공했고 국악이 익숙한 사람들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사운드가 탄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고 밝힌 바 있는데 복기해보면 정말 밴드의 음악에 대한 가장 정확한 설명이라 생각된다. 자연스럽게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다!

앞에서 특정한 장르를 가져와 풀어보긴 했지만 기실 잠비나이의 음악에 온전히 들어맞는 나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포스트메탈 밴드이기도 하며, 네오포크 밴드이기도 하고, 동시에 국악 밴드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그 모두 인위적 ‘구획짓기’이기도 한데, 밴드의 음악을 들어본다면 이 말의 의미를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저 장르상의 네이밍들이 밴드를 가까스로 정의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장치들’이라는 확신이 들고야 만다. 그냥 하고 싶어서 음악을 하게 되었고, 어떻게 연주하다 보니 이런 음악을 하게 된 것을 어찌 함부로 분석할 수 있나. 잠비나이의 최초항은 잠비나이이고, 최종항도 잠비나이이다. 바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패밀리 트리’를 그리게 될 첫 한국 밴드인 것이다.
우리는 왜 이들에 주목하는가. 그것은 이들이 앞으로 보여줄 무수한 예측불가능성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기도 하고, 작품의 퀄리티에 대한 암묵적 신뢰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참신함이라는 용어가 단순히 형식의 파격으로 내용의 공허함을 가리려는 시도가 아님을 입증해준 밴드여서 그러하다. 계속해서 멀리서나마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9 09:2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