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상상력이야, 바보야!


시우 (자유기고가)


작년 9월 7일, 서울 청계천 광통교에서 영화감독 김조광수와 영화사 레인보우 팩토리 김승환의 결혼식이 치러졌다. ‘어느 멋진 날, 당연한 결혼식’이라는 명칭이 붙은 이 행사는 국내에서 이루어진 첫 번째 공개적 동성결혼식으로 알려지며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물론 이전에도 수많은 동성커플이 셀 수 없이 많은 결혼식을 올렸다는 점에서 김조-김의 결혼식을 ‘최초의’ 혹은 ‘공개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김조-김의 결혼식을 둘러싼 열띤 반응은 그간 비 이성애자의 관계가 얼마나 가시화되지 못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퀴어정치학, 헤게모니와 규범성 자체를 재구성하는 실험

김조-김의 결혼은 퀴어 페미니스트인 내게 달갑지 않은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개인적으로 김조-김이 차용한 결혼식의 문법은 진부해보였고, 친밀한 관계를 결혼으로 틀 짓는 것 역시 마뜩찮았다. 김조 감독은 동성결혼이 “기존 가족제도에 균열 내는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했지만, 나는 ‘동성결혼이 이성애규범적 가족제도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동성결혼이 합법화되기 바로 전까지다’라는 친구의 말을 떠올렸다. 결혼 자체가 이성 간의 관계를 전제한다는 사실을 비판하는 작업이 다시금 결혼을 동성 간 관계로 재승인하는 것으로 이어져야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퀴어 정치학은 문화적 인정, 사회적 정당성, 경제적 자원, 법적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싸움이기보다 기존에 강력하게 작동하는 헤게모니와 규범성 자체를 질문하고 조롱하고 전복하고 비틀며 재구성하는 실험에 가깝다. 이에 퀴어적 관점에서 기초한 동성결혼 논의는 ‘나’가 누구와 살 것인지에 대해 국가가 간섭하는 문제, 결혼이라는 형식 외에 관계를 승인하는 문화적, 법적 장치가 부재한 상황, 퀴어 친밀성과 결혼의 규범성이 충돌하는 지점, 결혼제도가 후기 자본주의 정치경제학과 공모하는 맥락에 대한 고민을 요청한다. 즉 동성결혼 문제는 ‘이성애자도 결혼하는데, 동성/양성애자도 하자!’는 구호로 매끈하게 환원되기 어렵다.

물론 누군가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결혼제도를 통해 승인받고 싶어 하는 욕망을 잘못됐다고 탓할 수 없다. 또한 친밀한 관계에 대한 ‘다른’ 모습을 쉽게 연상할 수 있는 결혼으로 담아내는 시도는 전략적인 효과를 지니기도 한다. 규범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부담감을 일으키는 것에 비해, 규범을 흉내 내고 모방하는 것이 더 큰 파급력을 지닐 때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김조-김의 결혼식에 “청계천을 더럽히는 동성결혼 박살내자”는 피켓을 들고 온 사람들이나 예식 중간에 무대에 난입해서 오물을 투척한 이들의 모습은 동성결혼이 갖고 있는 영향력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규범적 친밀성을 재구성하려는 전략 필요

나는 동성결혼을 주류질서와 공모하는 보수적인 기획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친밀성을 직조하는 이성애규범성을 공박하는 작업이라고 지지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점은 동성결혼을 둘러싼 논의가 어떠한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동성결혼 의제를 통해서 어떠한 정치학을 주장하고 싶은지, 적합한 관계가 무엇인지 정의내리는 규범성에 어떻게 맞설 것인지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성결혼이 의미화되는 과정, 동성결혼 의제가 확산되면서 나타나는 효과, 규범적 친밀성을 재구성하는 전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동성결혼 논의는 친밀성을 확장시키기보다 이성애규범적 재생산 정치에 복무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동성결혼 논의가 이성애규범적 결혼제도에 대한 비판적 인식으로 이어지기보다 법제화 찬반 논쟁 정도에서 머물고 있는 것이다. 퀴어 친밀성의 복잡다단한 면모가 ‘동성 간 관계의 법적 인정’ 차원으로 마름질되고, 퀴어 섹슈얼리티의 풍성함이 ‘동성애자’ 내지 ‘양성애자’라는 정체성 논의로 물화될 때, 퀴어 정치학의 급진성은 사라지고 만다. 트랜스젠더 연구자 리키 윌킨스의 표현을 빌리면, ‘자신의 목소리를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권리’와 ‘다를 수 있는 권리’는 언급조차 되지 못하는 것이다.


섹슈얼리티 위계

트랜스/젠더/퀴어 연구소 소장 루인은 동성결혼이 “기혼이반, 결혼하는 양성애자, 결혼하는 트랜스젠더, 트랜스젠더-비트랜스젠더 동성관계의 공적 결혼” 등 동시대적으로 나타나는 다양한 관계의 양상 및 역사를 무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동성결혼을 이성애-동성애 구도로 재현하는 것을 경계한 바 있다. 퀴어 역사에는 이성애규범을 경유하는 물질적, 제도적 자원의 분배과정을 비판하고, 인식가능성을 규율하는 권력의 작동을 교란하며, 특정한 정체성 범주 자체를 탈안정화하는 여러 실천이 있어왔다. 퀴어 관계의 복합성에 대한 충분한 논의 없이 이루어지는 동성결혼 법제화 주장은 보수적 기획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페미니스트 게일 루빈은 ‘성을 생각하기’에서 섹슈얼리티 위계 개념을 제안한다. 그녀에 의하면, 위계 상위에 있는 섹슈얼리티는 건강하다고 평가되고, 존경의 대상이 되며, 적법하다고 여겨진다. 반면 위계 하위에 있는 섹슈얼리티는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다루어지고, 부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범죄로 간주될 때도 있다. 위계를 가르는 기준선은 변화가능하기에, 위계 하위에 놓인 섹슈얼리티일지라도 위계 상위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좋은 섹슈얼리티에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예컨대 동성 간 관계의 경우, 배타적이고 낭만적인 관계를 장기간 유지했을 때 (이성 간 관계와 닮았다는 이유로) 사회적 권력과 자원을 획득하기 쉬워지는 것이다.


동성결혼 법제화를 너머 새로운 구조를 창조적으로 발명해야  

섹슈얼리티 위계 개념을 고려할 때, 동성결혼은 규범성에 도전하는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하기 어렵다. 동성결혼의 가치는, 문란한 동성애, 사도마조히즘, 페티시즘, 성매매, 세대 간 성애, 공적 공간에서의 섹스와 같이 퀴어 공동체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위계 하위에 놓인 섹슈얼리티와의 끊임없는 구분 짓기를 통해서만 성립하기 때문이다. 동성결혼 법제화는 퀴어 역사에 중요한 성과가 될 수 있지만, 가장 시급하거나 핵심적이거나 퀴어한 의제는 될 수 없다.

같은 맥락에서, 퀴어 연구자 주디스 잭 핼버스탬은 동성결혼 법제화에 대해 ‘이미 이성애자들조차 매력을 느끼지 못해 구매하지 않는 결혼이라는 상품을 퀴어 집단이 쟁취하려는 우스운 상황’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는 훨씬 다양하고 급진적인 퀴어 운동의 흐름이 있음에도, “현상유지에 잘 맞물리고, 이성애자들이 발명한 사회적 가치의 정당성을 확증”하기에 동성결혼이 가장 가시적이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미 굳어져버린 부패하고 망한 제도에 부드럽게 미끄러져 들어가는 데 만족하지 않고, 무언가 ‘결혼 너머’에 있다는 관념, 따라서 인간의 다양성은 이미 존재하는 구조를 맴도는 대신 새로운 구조를 창조적으로 발명함으로써 꽃 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주인의 연장으로 주인의 집을 허물 수 없다

물론 동성결혼 법제화를, 젠더 규범에 충실하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며 구매력을 갖춘 ‘착한 동성애자 시민’만을 적법한 주체로 인정하는 동성애규범성 문제나 지배 질서에 편입되고자 끊임없이 공모하는 퀴어 미래성으로만 독해할 수 없다. 동성결혼을 둘러싼 논쟁은 친밀성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가능하게 하고 담론장에서 의미투쟁을 할 수 있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퀴어 지리학자 나탈리 오스윈이 지적했듯, 퀴어 정치학은 자본주의 논리와 실천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공모의 공간에서는 규범에 대한 저항과 굴복 모두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페미니스트 시인 오드리 로드가 이야기한 것처럼, “주인의 연장으로 주인의 집을 허물 수 없다”는 것이다.

퀴어 정치학은 동성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하고 안정된 가정을 꾸리는 것과는 상관없으며, 오히려 이들이 규범에 가까운 모습을 보일수록 현 체재는 재생산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동성결혼으로 마침내 가능해진 합법적 동성가족, 즉 동성커플과 이들이 돌보는 아이들’이 퀴어 상상력의 전부라면, 퀴어 연구자 리 에델만이 공격적으로 이야기했듯, 동성결혼 논의는 “미래에 대한 다른 상상을 불가능하게 하는 파쇼적 존재론”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에겐 풍성하고 창조적인 퀴어 친밀성을 기념하는 방식이 결혼 외에 어떤 것이 있는지, 동성결혼이 정말 퀴어에게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하는지, 동성결혼 논의가 ‘퀴어들만의 문제’로 다루어지는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살피는 작업이 필요하다. 문제는 동성결혼 법제화가 아니라 친밀한 관계를 재구성하는 퀴어적 상상력이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9 12:1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