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대화] 김이듬, 『히스테리아』, 문학과지성사, 2014.



시를 끊을 수 없는 것이 나의 운명이다


시는 불친절하다. 시는 대중을 의식하지 않는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는 한 시인의 자조 섞인 독백은 시와 시인이 가진 선험적 운명에 대한 예견이다. 소외된 자리에서, 시는 시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시는 거시적이고 규범적인 시선에 의해 배제되고 상처받은 삶의 사적인 국면들을 들여다보며, 시의 언어는 우리가 안전하다고 믿어왔던 세계 속으로 파고들어 균열을 일으킨다. 통제 가능한 일상과 객관적인 언어, 완결된 질서에 대한 우리의 환상은 허물어진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시인, 김이듬이 있다. 그 역시 대중적 열광의 대상이 되지는 못했지만, 특유의 위트와 예민한 감수성, 일상적 삶에서 건져 올려낸 낯선 발상, 날카롭고도 아름다운 문장의 매력으로 어떤 독자들을 매혹시키며 자신만의 시 세계를 성실히 구축해왔다. 김이듬 시인을 만나 신간 『히스테리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히스테리아』는 2001년 등단 이후 꾸준한 작품 활동을 펼쳐온 김이듬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이다. 예민하고 불친절한 그의 시들과는 달리, 실제로 만난 시인은 다정하고, 언뜻 수줍었으며, 단정한 문장으로 말을 이었다. 자리에는 『히스테리아』의 해설을 맡은 조재룡 평론가도 함께 했다.

이제 막 출간한 시집을 두고, 시인은 “갓 나온 핏덩이를 강물에 띄워 보낸 느낌”이라는 말로 작가로서의 소회를 표현했다. “출산에 비유하자면 산후 우울증처럼, 출간 우울증이라고나 할까요. 끝냈다는 기분이 들면서도, 내놓아 버린 내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기도 합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언제나 미흡하다고 느끼고, 결코 완성될 수 없는 작업이기에 조바심이 나기도 하지요. 하지만 일단 작가의 손을 떠난 시들은 온전히 독자의 몫으로 넘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애정

전작들에서 보여준 시인의 문제의식은 이번 시집에서 더욱 강렬해진 에너지와 깊어진 사유를 품고 계속된다. “나는 기생이다 위독한 어머니를 위해 팔려간 소녀가 아니다 자발적으로 음란하고 방탕한 감정 창녀다”(「시골창녀」)라 고백하고, “이 인간을 물어뜯고 싶다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널 물어뜯어 죽일 수 있다면 야 어딜만져 야야 저리 치워”(「히스테리아」)라고 내뱉는 그의 시들은 우리의 이데올로기가 가진 기만과 위선의 포즈를 경멸하고 거부한다.

조재룡 평론가는 김이듬의 시가 “한없이 낮은 곳으로 향하고 끊임없이 아래로 침몰하는 속죄양의 길”(149면)을 택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사회 공동체는 그 내부의 평화를 위한 정화 과정의 일환으로, 사회의 주류에 포섭되지 못하고 주변부를 맴도는 ‘잉여’와도 같은 존재들에게 집단적 폭력을 가합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일종의 ‘희생양’인 셈입니다. 김이듬 시인은 이전의 작업들에서 이러한 사회 주류의 자기 동질성의 논리가 갖는 폭력성을 조롱하고 처벌하려는 욕망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번 시집에서는 주변부로 밀려난 희생양들의 자리로 직접 들어가, 그들의 개별적인 목소리를 통해 대리전쟁을 치르기를 자청하고 있지요.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것은 소외되고 억압된 자들의 삶에 대한 속죄 의식입니다.” 이에 대해 김이듬 시인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대로 쓴 결과라고 말했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인식에 대해 혐오합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방식보다 밑에서 바라보는 방식을 더 좋아해요. 어린 시절에 버려졌던 경험 때문인지, 저는 늘 저 자신을 하나의 아브젝시옹Abjection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어요. 사회에 의해 더럽고 혐오스러운 것들로 치부되는 존재들에 대해 친밀감에 가까운 감정을 느낍니다. 우리의 통념처럼, 그들이 그렇게 사회악적인 존재들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소수의 독자들일지라도 배신하지 않고 계속 쓸 것

지금-여기에서 시를 쓰고 있는 시인은 어떤 존재일까. 김이듬 시인은 시를 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시를 끊을 수 없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아요. 제 삶을 길 위에 있는 자전거로 비유한다면, 시를 쓰면서 자전거가 벽을 뚫어버리고 나가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현실에서 느끼는 모든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순간이지요. 시 속에는 경찰이 없습니다. 그 안에서는 모든 행위가 가능해집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세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돼요. 조재룡 평론가가 말한 ‘불행에 대한 환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원치 않았던 사건들이 나에게 갑자기 다가왔을 때, 나약한 존재에 불과한 나 자신이 취할 수 있는 태도를 적어보려고 시도한 몸짓의 결과가 바로 『히스테리아』 입니다. 시를 쓰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못 끊는 것이 시라고 생각해요. 쓸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쓰고 싶어요.” 조재룡 평론가는 곁에서 지켜본 시인이 늘 노력하는 자세로 글을 쓴다는 점을 꼭 밝히고 싶다고 말했다. “김이듬은 말을 터뜨리는 시인의 계보에 자리합니다. 에너지가 넘치고 힘이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간혹 감정적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그의 시들은 굉장히 지적인 사유의 결과물입니다. 그는 실제로 상당한 다독(多讀)의 작가이기도 하고, 인문학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글을 씁니다. 재능만으로 시를 쓰는 작가들은 금방 그 바닥을 드러내기 마련입니다. 김이듬의 시는 시인의 지적인 노력에서 오는 풍성한 영감을 기반으로 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많은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쓴 시들은 아니에요. 허물어지는 모래를 쌓는 기분으로, 혼자 이야기하듯 썼어요. 저는 스스로를 비주류이자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더 이상 시집을 출간해주지 못하겠다는 말을 언제라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제가 쓴 시를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의 어딘가가 나와 닿아 있을 것이므로, 친구처럼 느껴요.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저를 믿어주는 독자들을 저 또한 배신하지 않고 계속 가고 싶어요.”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9 15:15: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