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의 노래, 혁명의 노래(4)

메르세데스 소사, ‘Gracias a la Vida’ (1971)

“생에 감사해, 내게 너무나도 많은 걸 주었어”

이경준(대중음악평론가)

아르헨티나의 시인, 입을 열다

‘Gracias a la Vida’는 남미의 어머니이자 아르헨티나 음악을 세계에 알린 장본인 메르세데스 소사의 대표곡이다. 노래는 한 폭의 풍경과도 같다. 단출한 어쿠스틱 기타 한 대만이 그녀의 목소리를 보조할 뿐이다. 하지만 그 여운은 깊고도 중후하다.

칠레의 민속음악가이자 시인인 비올레타 파라에 의해 쓰인 이 노래는 1966년 산티아고의 천막촌에서 처음 선을 보였다. 이 아름다운 노래를 만든 비올레타는 그러나 그 1년 후, 쓸쓸히 산티아고 인근의 외진 곳에서 권총으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다.

그렇게 창작자는 떠났지만 곡은 소사의 몸을 빌려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나는 가수가 되기 위해 노래하지 않았다”는 유명한 말처럼, 소사는 자신의 영달보다 조국 아르헨티나와 억압받는 계층의 삶을 위해 노래했다. 또한 서양의 음악을 추종하기보다 자신이 속한 땅의 음악을 우선시했으며, 이른바 ‘누에바 칸시온(새로운 노래)’ 운동을 이끈 선두주자이기도 했다. 그녀의 이상은 시민들이 스스로 자유의 의미를 깨닫고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가치가 반영된 곡이자 누에바 칸시온의 기념비 같은 곡 ‘Gracias a la Vida’는 시를 연상케 하는 서정적인 노랫말로 남미라는 지역적인 한계를 초월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잘 알려진 것처럼 아르헨티나는 페론 집권 이후 과거 세계를 호령하던 강대국의 지위를 잃고 일순간에 국가 전체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비운을 맛본 나라다. 권력의 유지를 위해 국민들에게 아낌없이 국고를 턴 ‘포퓰리즘’의 참혹한 결과였다. 경기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수많은 일자리들이 사라졌다. 노동자들은 거리로 내몰렸다. 대다수의 기업이 외국계 자본에 의해 잠식되었다.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고, 그들을 둘러싼 숱한 음모와 공작이 꼬리에 꼬리를 이었다. 수만 명이 살해되거나 암살되는 참극이 벌어졌다. 이런 지옥과도 같은 상황에서 그녀는 도처에서 노래를 불렀고 사람들의 멍든 가슴을 위무했다. 이런 그녀가 군부의 눈에 좋게 보일 리 만무했다. 정부는 그녀를 구금했고, 해외로 추방시켰다. 스페인으로 날아간 소사는 이곳저곳에서 노래를 부르며 생계를 꾸렸고, 조국에서 받은 것 이상의 인기를 모았다. 하지만 그녀는 1982년 다시 아르헨티나로 입국한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민중의 고통은 곧 자신의 고통이기도 했다. 그녀는 대중의 상처를 보듬고 치료해 주는 것이 예술가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녀와 더불어 사람들은 ‘Gracias a la Vida’를 노래하며 눈물지었고 정화되었다. 그것이 바로 노래의 힘이라는 걸, 공연장에 모여든 관객들과 가수는 직감하고 있었다.

위대한 긍정의 노래

‘Gracias a la Vida’는 아마도 인류가 탄생시킨 가장 위대한 긍정의 노래일 것이다. “생을 통해 말과 소리를 얻었기에 어머니와 친구, 형제자매, 영혼, 길을 비추는 빛을 갖게 되었다”는 가사는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한 순간이라도 삶이 내려준 축복을 잊지 말고 열정적으로 살아가자는 고결한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관점에 따라 인생은 질곡의 연속이기도, 행복과 기쁨이 충만한 소중한 대지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아주 작지만 미묘한 시각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그녀는 익히 깨치고 있었다. 지금 노래를 틀어놓고 있노라면, 모든 죄악을 그녀가 대속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뭉클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서는 오히려 세계에 대한 구원과 희망의 씨앗이 움트는 느낌이다. 이런 감정은 쉽게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남아메리카 대륙, 그리고 그곳에서 숨 쉬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그녀는 마치 강림한 성녀와 같이 노래 부른다. 노래를 들으면, 그게 무엇인지 금방 알 수 있다.

메르세데스 소사는 1935년 안데스 산맥의 투쿠만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몸에는 프랑스계의 혈통과 케추아족 인디언의 혈통이 동시에 들어 있었다. 혼혈이라는 배경이 그녀의 노래와 가치관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파악하기 힘들지만, 자신의 뿌리에 대한 애착이 노래를 부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리라는 점만큼은 추측 가능하다. 민생고에 시달리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며 자라난 그녀가 자신만큼이나 궁핍한 남미의 현실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어느새 베네주엘라의 솔레다드 브라보, 브라질의 카에타노 벨로주와 더불어 남아메리카를 상징하는 가수로 인정받게 된다. 언급된 그들은 모두 적극적인 정치 활동과 사회 참여에 앞장선 가수들이었다. 그들은 노래를 통해 소통하고 교감을 나누었다. 펜촉이 지식인들만을 대상으로 했다면, 노래는 더 일반적인 대중에게 호소할 수 있는 매개였기 때문이었다. 소사의 목소리는 객석을 가득 채웠고, 그녀의 노래는 더 많은 장소에서 불렸다. 그녀는 ‘Guitara di melo tu’, ‘Todo Cambia’, ‘Kyrie’ 등의 명곡을 남겼다.

천사의 품으로 돌아가다

신장질환과 폐병으로 시달리던 메르세데스 소사는 2009년 10월 4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병원에서 향년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음반은 총 40장에 달했다.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고, 수백만의 인파가 그녀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라 네그라’(소사의 별칭)은 하늘로 올라갔지만, 그녀가 뿌려놓은 노래만으로도 세상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을 풍족히 받아둔 후였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천사와 잠들라. 소사.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녀의 노래 한 소절을 듣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