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외교학과 석사과정 김재린

몇 년 전에 영국을 여행할 일이 있었다. 신이 나서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던 나는 마침내 카디프 역에서 그 흥을 깨고 말았다. 여유를 부리다가 시간이 늦어, 고민할 새도 없이 열차 표를 사고, 아슬하게 에딘버러 행 열차에 올라 숨을 고르고 있는데, 내 손에 120파운드(당시 환율로 24만원)짜리 티켓이 있는 것이 아닌가. 머리가 혼란스러워진다. 내가 지금 몇 끼니 먹을 돈을 여기에 쓴 거지? 덕분에 잔고는 계획보다 빨리 사라졌고, 여행이 끝날 때쯤 나는 하루에 3천원으로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 아직도 가끔은 식빵을 보면 속이 울렁거린다.

그러나 나를 정말 허탈하게 만들었던 것은 철도 운임이 아니라 항공 운임이었다. 기차에서 만났던 아저씨의 조언대로 돌아가는 비행기편을 알아봤더니, 에딘버러에서 런던까지의 항공 운임은 44파운드(8만 8천원)에 불과했던 것이다. 나중에 알아보니 영국 철도는 1993년에 민영화가 결정되었고, 그 결과 1995년부터 현재까지 런던에서 카디프로 가는 열차는 운임이 196%, 런던에서 에딘버러로 가는 열차는 운임이 134% 올랐다고 한다. 그 사이 소매물가지수(RPI)가 66% 오른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인상률이다. 비슷한 값이면 비행기 대신 기차를 탔을 나지만, 이쯤 되면 화가 난다. 이런 줄도 모르고 값싸고 빠른 비행기 대신 비싸고 느린 기차를 탔던 나는, 그들 입장에서는 훌륭한 고객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는 곧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코레일은 ‘경영 합리화’를 근거 삼아 변신을 시도해왔다. 코레일의 도메인이 go.kr(government)에서 com(company)으로 바뀌더니, 수지가 안 맞는 무궁화호가 대거 사라지고 그 자리를 값비싼 KTX가 채우게 되었다. 이제 한 쪽에서는 출퇴근 시간 2호선 수준의 지옥철을, 다른 한 쪽에서는 선진국 수준의 요금을 체험할 수 있다. 이것으로도 ‘경영 합리화’가 부족한지, 새 정부에서는 새로 개통될 수서발 KTX를 운영할 회사를 만들어, 이 회사에서 코레일의 지분을 30%로 제한하기로 했다. 이 경우 수서발 KTX는 간단한 지분 매각만으로 민영화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민영화를 통해 효율성을 달성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괜찮지 않은가? 이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서는 효율성이 무엇인지 정의할 필요가 있다. 민영화를 통해 달성된다는 ‘효율성’은 기업의 효율성으로, 결국 기업의 순이익으로 평가된다. 이는 총 수익에서 총 비용을 뺀 값이다. 따라서 효율성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시장과 정부가 허용하는 한에서 최고의 값을 기차표에 매기고, 열차 운영에 지출되는 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이 효율성은 승객의 입장에서 보는 효율성이라고 하기 어렵다. 공기업의 적자가 세금으로 메워진다고 해서 ‘효율성’이 공익이 되는 것도 아니다. 코레일의 적자 노선이 공공재를 공급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값싼 무궁화호가 서민들의 주된 지역 간 이동수단이 되어왔음도 물론이다. 그러나 이들 적자 노선이 줄어들거나 그 운임이 오른다면 고속도로는 포화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니라 해도 더 큰 문제가 남아있다. 민영화가 추진되는 배경에는 시장이 정부보다 효율적이라는 믿음이 있는데, 통계를 보면 그것이 꼭 진실인 것 같지는 않다. Jonas Pontusson의 『Inequality and Prosperity』는 이를 잘 정리한 책이다. 이에 따르면 1980년부터 2000년 사이에 ‘큰 정부’를 대표하는 유럽의 사회적 시장경제(SME)나라들은 평균 1.9%의 1인당 GDP 성장률을 보여, 평균 2.3%의 성장률을 기록한 자유시장경제(LME)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았다(LME에서 아일랜드, SME에서 노르웨이를 제외할 경우 1.8%로 동일). 노동시간당 GDP의 경우 사회적 시장경제 국가들이 37.15달러로 자유시장경제 국가의 33.32달러를 앞선다(2002년 기준). 시장화를 통해 우리가 잃게 되는 평등과 공익을 생각하면 허탈한 결과다. 경제를 그 거시적 측면만으로 해석할 수 없음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자료는 우리가 과연 시장화의 비용을 감당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만든다.

나는 그 때의 퍽퍽한 식빵을 떠올리고는 답을 내렸다. 여러분은 어떠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