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천,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 오월의 봄, 2013.

최근에 벌어진 남양유업 사태는 시민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제품의 유통과정에서 노골적으로 자행된 폭력적인 방식에 대한 분노는 불매운동으로 이어졌다. 이 같은 분노의 밑바닥에는 기업 윤리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가 자리한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단체이지만 이윤을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윤리와 인간성을 져버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갖가지 부정을 저지른 재벌 총수는 선망의 대상이고, 이윤 추구를 위한 비정규직 확대와 해고는 필요악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 노출된 광고에 의해서만 기업의 이미지를 인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기업의 제품을 소비하고, 기업에서 일하거나 일하기를 욕망하지만 과연 기업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는 총 아홉 명의 노동자의 입을 통해 기업의 진실을 폭로한다. 이 책의 저자 김순천 작가를 만났다.

앎의 고통은 고통당하는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아홉 명의 인터뷰이(한 명의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부탁으로 책에 실리지 못했다고 한다. 가명으로 나가더라도 회사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공포 때문이었다. 저자는 이 인터뷰이와의 인터뷰를 공란으로 남겨두었다)의 증언은 생생하고 고통스럽다. 임신한 직원에게 하루 종일 서서 일하게 하는 직무를 주는 기업, 둘째를 임신하면 낮은 고과를 줘서 기어코 해고시키는 기업, 노동자들을 관광버스에 태워 묻지마 관광을 보내고 성매매를 하게 해 기업의 비리에 입을 열지 못하게 하는 기업, 노조파괴전문 컨설턴트를 고용해서 노동자들에게 무기를 휘두르는 기업, 하루 종일 파티션만 바라보게 하는 기업, 산업재해를 노동자 개인의 부주의로 몰아가는 기업, 노동자들끼리 감시하고 점수를 매기게 해 인간적인 유대를 파괴하는 기업, 대학에 들어가서 학생들의 자유로운 언론활동을 통제하는 기업까지.

이 고통스러운 이야기들을 읽는 동안 과연 인터뷰를 진행하고 글로 쓴 작가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물었다. 작가는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불편과 고통은 최소한의 예의라고 말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고통을 느낄 수 있겠죠. 하지만 이 책에서 나오는 분들의 고통에 비할 수 있을까요? 책을 읽으면서 드는 이 정도의 고통은 그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봅니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웃음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바라봤어요. 웃음만을 강조하다보면 현실의 모습을 가려버릴 수도 있다고 본 거예요. 저 역시 웃음만 강조하는 시대는 건강하지 않다고 봐요. 치유, 웃음만 강조되고 우리가 처한 문제나 고통을 깊게 들여다보는 시선은 없는 것 아닌지 물어야 합니다.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고 난 다음에 치유를 할 수 있는 거지, 치유라는 말로 모든 문제를 봉합하려는 것이 문제라고 봐요.”

기업의 횡포를 제어하지 못하면 싸이코패스 기업 탄생해

작가는 삼성에서 노동자 이만 삼천 명을 해고한 사실을 아느냐고 물었다. “저는 삼성에서 노동자 이만 삼천 명을 해고했다는 사실보다도, 이 사실이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에 더 놀랐습니다. 삼성에는 하얀 방이라는 방이 있다고 해요. 그 방은 온통 하얀 색으로 칠해져 있고 테이블 하나와 의자 두 개가 있는데, 그 방으로 불러서 퇴직을 종용한다고 합니다. 그 방으로 불러들이는 것 자체가 굉장한 공포라고 해요. 이것을 거부하면 전환배치나 낮은 고과를 주는 등 온갖 방법으로 퇴사를 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고 합니다. 마치 개인이 잘못해서 퇴사된 것처럼 하는 것이죠.”

그는 경영자들이 이러한 인간파괴적인 경영을 부끄럽다고 여기지 않고 성공적인 경영기법으로 소개하는 세태를 비판했다. “이런 기업의 횡포를 제어하지 못하면 싸이코패스 기업이 탄생하게 됩니다. 남양유업도 그런 회사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죠. 그건 남양유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 기업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봅니다. 갑과 을의 관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가 사실 심각한 상황이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기업에 무심합니까. 기업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 상세하게 보려하지 않고 제품만 향유하죠.”

그는 왜 기업들이 산업재해를 인정하지 않고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지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산재 접수 건수는 굉장히 낮은데 산재 치료비는 높다고 해요. 무재해 기업이 되면 국가에서 일 년에 400억 원 정도 받는데, 그 돈을 받기 위해서 산재로 노동자가 죽거나 부상당해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거죠. 무재해 기업에 돈을 주는 것은 그 돈으로 재해를 당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라는 것인데 오히려 악용하고 있는 거예요.”

기업은 단지 이윤추구만을 위한 단체 아니야

작가에게 기업을 사유하는 기업가들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에 대해 물었다. “한국의 기업가들은 기업이 잘 되면 자기가 잘 해서 기업이 잘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요? 기업은 기업가의 힘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 밑바탕에는 시민이 있어요. 기업이 획득한 부는 그러므로 시민들의 생활로 환원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기업가들은 그 부를 나누기보다는 축적하고 자기 자손에게 물려주는 데에만 골몰하죠. 얼마나 천박한 사고방식입니까? 사회적 책임이 거의 제로 상태라고 봐도 될 거예요.”

작가는 기업가들의 사고방식만큼이나 보통 사람들의 기업에 대한 사고 또한 왜곡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많은 사람들이 기업을 단지 이윤을 추구하는 단체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 기업에 들어가서 일하는 사람들도 기업을 먹고 살기 위한 곳으로 생각하구요. 하지만 저는 기업의 목적이 단순한 이윤 추구라고만 생각하지 않아요.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일하면서 보내죠. 기업에서 생활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생활은 고통스럽게 하고 스트레스를 풀려고 여행이나 쇼핑, 술에 의존하게 되죠. 스트레스를 푸는 것과 일하는 것이 완전히 분리된 상황이에요. 일하는 삶의 터전에서 행복한 것이 중요하죠. 일하는 공간은 인간적이어야 하구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스웨덴이나 노동환경이 훌륭한 나라들을 보세요. 일하는 공간은 비인간적이고 괴로워야만 이윤 창출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런 폭력적인 노동 상황에 대해서 ‘왜’라고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그는 기업의 문제는 단지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기업은 실로 우리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어요. 대학, 국가체계, 사회 분위기 같은 것들에 모두 영향을 끼치죠. 노무현 정부 때 공무원 교육을 삼성 연구소에 맡긴 것만 봐도 그래요. 사회에 대한 기업의 영향력이 실로 크기 때문에 그만큼의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삼성이 문제가 되는 것은, 다른 기업들도 삼성을 모두 따라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연봉 문제, 구조조정 문제, 중소기업과의 관계, 이런 모든 것들을 복제하거든요.”

기업에 대한 인문학적 고민 필요

“얼마 전에 대학생들이 가장 닮고 싶은 경영인으로 이건희 삼성 회장이 뽑혔다고 해요. 기업에 대한 대학생들의 선망을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지요. 실제로 많은 대학생들이 기업에 대한 선망만 있지, 그 기업이 어떤 곳인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고민도 하지 않아요. SKY대학에 속한 학생들은 노동자의 일이 절대 자신의 일이 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학생들이 별다른 고민 없이 기업에 들어간다면 어떨까요. 이 년 전에 A기업의 연구직 노동자가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어요. 회사에서 여러 팀을 꾸려서 사업을 하다가 사업을 접으면 팀원들을 다 해고시키는 식이었어요. 그냥 해고를 통보하는 식이 아니라 해고를 시키려고 낮은 고과를 계속 주는 방식으로. 그런데 그 연구직 노동자는 그것을 회사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회사에서 더 이상 ‘필요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을 충격으로 받아들였어요. 회사에서 필요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을 곧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을 알고 가야해요.”

작가는 기업에 대한 인문학적인 고민을 강조했다. “이제 우리는 기업에 대한 인문학적인 사고를 시작해야 합니다. 음식이나 문화에 대해서 사유하는 책은 많은데 왜 기업을 철학적 사유의 대상으로 다루는 책은 이렇게 드문 걸까요? 기업에 대해서 사회학적으로, 철학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기업이 인간적인 공간이 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도 없습니다. 일상적으로 행복하지 않으면서 민주주의가 무슨 필요가 있겠어요?”

작가는 마지막으로 ‘희망’에 대해서 말했다. “현실을 보고 고민하는 것은 문제 해결의 과정입니다. 저는 이 책을 쓰면서 현실이 얼마나 절망적인지, 가혹한지에 대해서만 말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그 속에서도 희망을 보자는 거죠. 한국에도 좋은 기업이 있습니다. 나쁜 기업들의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바꾸려는 기업들이 있어요. ‘기업에서는 불행하다’는 편견이 깨지는 기업들이지요. 그 속에서 저는 희망을 봅니다.”

최은영 기자 euni15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