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지루, ｢사라지는 지식인 – 공적 가치의 쇠퇴와 대학의 위기｣

크리스 헤지스, ｢지혜의 환상 – 돈에 물든 교육과 비판적 지성의 죽음｣

토요시마 코이치, ｢어용학자 비판이 불가능한 대학사회｣

대학이 상업화되면서 비판적 지성을 길러내는 일은 점차 대학의 역할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러나 직업교육을 넘어서서, 민주주의를 체득한 정치적 주체들을 길러내는 일까지 대학이 감당할 때 고등교육의 정당성은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녹색평론󰡕 통권 제130호에는 ‘대학의 타락, 지성의 죽음’이라는 제목 아래 대학의 현문제를 비판적 지성의 죽음으로 보고, 이에 대해 세 명의 외국인 필자들의 글을 소개함으로써 문제를 제기했다. 헨리 지루는 캐나다 맥마스터대학 영문학 및 문화연구 교수로서, 그간 대학의 기업화·상업화·반지성적 경향을 집요하게 비판해 왔다. 크리스 헤지스는 <뉴욕타임스>에서 활동했고, 현재 독립언론인·지식인으로 활발하게 비판적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토요시마 코이치는 사가대학 대학원 공학계 연구과 교수이자 원자핵물리학자이다. 본지에서는 이들의 글을 소개함으로써 대학의 역할에 대해 재고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보고자 한다. 외국인 필자의 글과 외국 사례를 보면서 독자들은 비판적 지성을 양육해내지 못하는 현재 대학의 문제가 한국을 넘어 세계적 차원의 문제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공적 가치의 상상력과 지성의 역할

헨리 지루는 신자유주의의 도래로 인해, 사회적 책임 및 비용이라는 담론에서 시장이 제외된 현상에 주목하며 논의를 시작한다. 시민이 소비자가 되고, 가혹한 경쟁의 언어가 공공성과 연대의 관념을 해체하고 있다. 미국 민주주의가 제공하는 혜택은 노인, 젊은이, 실업자, 이민자, 가난한 백인과 유색인종들을 배제한다. 도덕은 시장논리에 종속되고 민영화, 규제완화, 상품화 등이 공공선의 담론을 대체한다. 개인적 고통이 보다 넓은 공적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하는 것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헨리 지루는 이러한 사회적 진단 위에서 비판적 지식인의 소멸을 말한다. 비판적 지식인의 소멸은 공적 가치의 상상력을 공급하는 대학의 기능에 장애가 생겼음을 떠올리게 한다. 대다수의 고등교육기관이 도구적 목적과 계량적 패러다임에 속박되어 전적으로 경제적 목표에 매달리고 있다. 대학총장이 CEO로 불리고 월스트리트나 기업 펀드매니저의 언어를 사용한다. 기업 중심의 이데올로기가 공립교육과 고등교육을 신자유주의 노선으로 재편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학교가 학생들의 도덕적 상상력과 비판적 능력을 키우기보다는 예비 헤지펀드 매니저를 기르면서 정치의식이 없는 학생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헨리 지루는 바로 이런 점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고등교육의 정당성을 ‘직업교육’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유지에 필요한 주체를 길러낼 수 있는 근원적 공간’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다가올 민주주의와 깨어있음의 교육학

헨리 지루는 고등교육이 공적 가치를 사유하고 실질적 민주주의를 배양할 교육적 가능성이 남아있는 매우 드문 공적 영역의 하나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특히 시장근본주의자, 종교적 극단주의자, 완고한 이데올로그들에게 맞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를 통해서만 민주적 공적 공간으로서의 고등교육을 재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비판적 사유에 깊은 경멸감을 품고 있으며 세상을 비판적으로 읽도록 가르치는 교육을 불쾌하게 생각한다는 것이 헨리 지루의 진단이다. 자크 데리다의 “다가올 민주주의”를 인용하면서 헨리 지루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에 대해, 그리고 스스로 비판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열려있는 민주주의를 말한다. 비판적 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다른 시각을 얻게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나 개념을 생산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를 통해 사회는 활력을 얻을 수 있다. 헨리 지루는 또한 에드워드 사이드의 “깨어있음의 교육학”을 소개한다. 대학 안팎에서 고통을 겪는 인간의 현실을 인지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이론을 비평의 형태로 사용하는 것,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는 것, 개인적 이슈와 사회적 이슈 사이의 연관성을 명확히 함을 겁내지 않는 것, 이런 것들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깨어있음은 엄격한 이론적 작업 없이 조잡한 선동을 하거나 누군가를 매도하는 행위를 거부하는 것이기도 하다.

크리스 헤지스 역시 헨리 지루와 비슷한 관점에 서 있다. 그는 ｢지혜의 환상 – 돈에 물든 교육과 비판적 지성의 죽음｣에서 특히 세상과 동떨어진 학문에 대해 문제의식을 표한다. 전문화 과정에는 종종 언어적 고립이 동반된다. 이로 인해 원활한 소통을 이루지 못하는 전문가들이 배출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지배계급은 자기만의 언어를 사용한다. 금융시스템을 조작하는 영리한 사기꾼들과 경제학자들은 엘리트 경영대학원의 전문가들이 만들어낸 모호하고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말한다. 문명의 언어가 소통을 가로막는 배타적 방언들로 분열할 때, 책임감 있는 지식인은 소통을 보조하고 촉진해야 한다고 크리스 헤지스는 주장했다.

국가의 신관이 된 어용학자들

토요시마 코이치도 ｢어용학자 비판이 불가능한 대학사회｣에서 비판적 지성의 회복을 역설한다. 그는 특히 원자력 신화와 관련하여 ‘어용학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후쿠시마원전 재해라는 미증유의 사태를 거치면서 ‘원자력 안전신화’라는 말은 이제 일본에서 탈핵론자들뿐만 아니라 국민들 사이에서도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말이 되었다. 그러나 ‘원자력 안전신화’는 후쿠시마현 사태 이후 사라지지 않고 ‘방사능·방사선 안전신화’로 변화하고 있다. 원자력은 안전하다는 신화가 벗겨지는 것 같아도, 방사능은 안전하다는 신화가 남아있는 한 여전히 ‘원자력 안전신화’는 유효하다. 토요시마 코이치는 ‘방사능·방사선 안전신화’를 퍼뜨리는 중심적 학자로 나가사키대 대학원의 야마시타 슌이치 교수를 언급한다. 그는 후쿠시마현 ‘방사선 건강 리스크’ 관리 자문으로 취임하여 현을 순회하며 방사선에 대한 주민의 경계심을 없애는 강연활동을 했다. ‘한 번에 100mSv(밀리시버트) 이상의 방사선에 노출되면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지만, 50mSv 까지는 괜찮고, 원전으로부터 10~20km권내의 주민으로서 피난한 사람은 방사선량으로 1mSv 정도 노출되었을지 모르겠지만 건강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내용을 선전하고 다녔다. 그러나 ICRP(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의 견해에 따르면 100mSv 이하라 할지라도 암 발생 위험은 존재한다. 토요시마가 보기에 야마시타는 신관과 같다. 왕의 권위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하고 제사의 의전을 독점하는 것이 신관이다. 즉 현대사회에서는 국가에 의해 인증되고 권위를 부여받은 과학자 집단이 고대의 신관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토요시마는 야마시타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어용학자의 문제의 원인과 배경을 논한다. 비판활동이 실제적인 영향을 갖기 위해서는 대학이나 연구자들의 커뮤니티가 민주적이어야 하고 연구자 개개인이 폭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 대학은 사회에 공헌해야 하고, 당연히 거기에는 사회의 위험을 알리는 역할이 포함되어야 한다. 부정적 견해를 밝히는 이들은 종종 배척당하는데, 문제가 심각해지면 비판적 지성의 활동이 대학에서마저도 통용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토요시마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2004년 시작된 국립대학 ‘법인화’를 계기로 문부과학성이 대학에 관여할 수 있는 영역이 확대되었다고 한다. 대학이 비판적 지성을 통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공간은 갈수록 협소해지고 있다.

토요시마는 정부 국립대학이 정부 법인화의 움직임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일본교직원조합 대학부의 후계조직인 ‘UIP센터’는 노동기본권을 얻을 수 있다며 오히려 법인화를 지지하기도 했다. 토요시마는 ‘과학독재체제’에 제동을 걸고, 사회의 민주주의 확대를 위해서 대학사회의 종합적 비판정신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학론과 지식인론을 전개해서 대학의 마땅한 모습에 대한 설득력 있는 이론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불가능한 것을 행하고 사유해야 한다. 만약 가능한 것만 일어난다면, 그 이상의 것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한다면,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헨리 지루는 다가올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불가능성의 가능성이라는 역설을 떠올리게 하는 데리다의 위와 같은 말도 인용했다. 비판적 지성은 현재에 대한 부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미래가 열려있다는 진실에 초점을 두고 있다. 비판적 지성을 수용할 수 있을 때 사회는 보다 역동적으로 더 좋은 미래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대학은 비판적 지성을 길러냄으로써 새로운 사회의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데 기여해야 한다.

박성태 기자. clsrnofu@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