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즈음, 당시 시골에 살던 기자로서는 서리가 아이들의 놀이 중의 하나였다. 여름밤이 되면 동네 형들을 중심으로 밤에 수박, 참외 등을 서리하여 동네 외진 곳에 만들어 놓은 아지트에서 먹으며 놀곤 했었다. 가을이 되고 밤이 익을 무렵, 용감하게도 나와 또래 아이들은 밤 서리를 모의했고, 하교 후 집에 가는 길에 그것을 감행했다. 기민하지 못한 탓에 우리는 대낮에 주인에게 발각되어 도망가지도 못하고 그곳에 얼음땡 놀이에서 얼음을 한 것처럼 서 있어야 했다. 주인 아주머니는 우리들에게 “니들 어디 살아?” 물었고 우리는 각기 사는 곳을 말했는데, 기자는 “저...쪽 동네요.”라고 말했다. 사실은 바로 옆옆집에 살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아주머니는 우리를 고맙게도 풀어주셨다. 문제는 다음 날에 발생했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나는 등굣길을 걸어가던 중, 그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버지와 아주머니는 아는 사이였는지 다정케 인사하였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학교에 도착하기까지 죄책감과 주눅으로 아버지 왼편에서 고개를 못 들고 묵묵히 걸어가야 했다. 여전히 그때의 장면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최근 탈북 청소년 9명이 라오스에서 강제 북송되었다. 중국에 체류하던 탈북 청소년 9명은 지난 9일 한국행을 위해 라오스로 넘어갔으나 당국의 불심검문에 적발돼 지난달 27일 강제 추방되었다. 문제는 이 북송 과정에서 한국정부의 대응태도와 사후 입장표명이다. 복수의 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바는 우리 정부가 지난달 10일 탈북 고아들이 라오스 당국에 적발되자 신병인도를 요청하고 면담을 시도했지만 이들이 추방된 지난 27일까지 한 차례도 면담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한국정부와 라오스 주재 한국대사관의 무능을 질타해야겠지만, 더 심각한 문제가 드러났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라오스 정부가 불법 월경 혐의로 이들 청소년들을 억류하고 이 사실을 남북한 정부에 알렸지만 남한 정부는 이에 대한 면담 요청조차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또한 한국 주재 라오스 대사관 이와 비슷한 성명을 내놓았다. 이게 만약 사실일 경우, 정부는 뻔히 들통 날 거짓말을 했다는 얘기가 된다. 문제가 불거지자 면피성 발언을 한 것이다. 노력도 안 했고, 거짓말로 사건의 책임을 피하려고 한 것이다. 북송된 아이들이 어떤 운명이 될지 우리는 안다. 지금까지 정부가 보여준 행태가 심히 우려스럽고 개탄스럽다. 아마추어 정권에 거짓말 정권, 이게 2013년 한국 정부의 현주소다.

 박해경 기자 efferus2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