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학과 김희연

3월이면 갓 스무살을 맞이한 학생들로 넘실대는 학교. 여러 공간과 사람들에 대한 추억을 반추한다. 혹자는 말하리라. “겨우 이 정도를 가지고, 운동장이 없어진 것에 비하면야!” 필자 나름 소소하게 꼽아봤다. 혹여 있을지 모르는 오류에 대한 독자 제현(諸賢)의 질정을 바란다. 1. 정대후문 초입 경양식집 ‘어게인(Again)’. 식사가 길어져도 절대 독촉하는 일 없던 가게라 좋았다. 사이다, 콜라, 녹차, 커피 등 후식도 제공되었다. 그러나 주인아저씨는 권리금 때문에 쫓겨나듯 장사를 접게 되었다. 김치볶음밥 수북하게 주던 ‘아욱꽃’도 사라진 지 오래.

2. 그 아래 ‘동방서적’은 다양한 서적을 구비하고 있었다. 한 권을 사도 100원, 1000원 쿠폰을 줬다. 그 근처에 약국이, 맞은편엔 4천원이면 머리를 깎을 수 있는 이발소도 있었다. 참살이길에 있던 서점과 음반가게도 모두 변화해 가는 시대의 흐름 속에 경영난으로 사라졌다. 현재 동방서적이 있던 자리엔 정대후문에서 가장 짧은 역사를 자랑하는 복사집이 들어서 있다.

3. 현격히 줄어들어버린 나그네파전 파전의 지름과 고추튀김의 두께. 내가 알던 파전과 고추튀김은 이게 아닌데. 아마도 높아져버린 물가 때문이겠지만. 작아지고 얇아져 슬픈 음식이여.

4. 날씨 좋은 날이면 정대후문 앞에서 “이어폰, 이어폰, 이어폰!” 외치던 아저씨. 요일별로 동국대 등 다른 대학교 교문 앞에서도 장사한다고 하시더니, 소리 소문 없이 어딜 가셨는지.

5. 경영대 지하 ‘파라(para)’라는 이름의 카페. 1000원도 안 되는 값에 아메리카노를 만끽할 수 있었다. 푹신한 빨간 소파엔 시험기간마다 애정행각을 벌이던 커플들이 득실득실했다.

6. 홍보관 앞 통칭 ‘깡통’이라 불리던 편의점. 여름이면 똥똥한 닭둘기들이 파라솔 위에 기우뚱 거리며 앉아서, 단체로 푸드덕 거리며 각종 병균을 폴폴. 그 아래 앉아있던 모두가 비명을 지르곤 했다. 플라타너스 가득한 민주광장 등나무 벤치에서 1000원짜리 아이스커피의 풍류를!

7. 아는 사람만 아는 ‘중광녀’. 혜성처럼 나타난 그녀의 외양은 현란했다. 청명한 가을날, 중앙광장 잔디밭에서 소찬휘의 ‘Tears’를 부르며 막춤을 췄다. 지나가는 남학생들에게 손키스(!)와 하트 뿅뿅(!!!)을 선사하기도. “추고 싶어서” 춤춘다던 그녀의 행방이 묘연해 졌을 때, 어쩌면 춤을 통해 고시실패의 아픔을 달랬던 것은 아니었을까, 막연한 추측만 무성했다. 그녀가 다시 나타났던 어느 날, 필자는 반색하며 반쯤은 장난삼아 인사를 건넸다. “Long time no see! I missed you so much!” 그녀는 이렇게 화답했다. “OK, That's alright!” 으...응?

8. 정문 앞 지하도에서 100원만 달라던 ‘원만이 아저씨’. 서당훈장님처럼 망건에 도포를 두르고 다니시던 남자분. 승복 입던 여자분. 까만 토끼 가방을 등짐처럼 메고 다니던 남자분. 중앙도서관 지하 편의점에서 일했던 주근깨가 귀여운 여학생 알바. 그리운 모두들, 안녕하신지.

9. 서관 1층 로비 커피자판기. 커피맛 좋기로 소문나, 대도관 1층 자판기와 자웅을 겨뤘다. “제도권 교육의 흔적이 없는 맛이랄까.” 리모델링으로 복사기와 함께 자취를 감췄다. 중도개편으로 사라진 중앙도서관 3층 휴게실. 반가운 이들을 마주칠 때면 음료와 담소를 나눴던 곳.

이외의 것들은 지면관계상 생략. 각자의 회상에 맡긴다. 추억이 어린 것들은 사라지기도 변하기도 할 것이다. 여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돌이킬 수 없는 시절의 따뜻한 기억들은 가슴에 품고, 열심히 살기로 한다. 언젠가의 우리에겐 지금 오늘도, 매일이 그러한 나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