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를 위해 좋은 여성주의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이승화


나는 여자다. 그리고 페미니스트다. 페미니스트가 되겠다고 가족들에게 선언했을 때 엄마는 깜짝 놀랐다. “그거 여자가 아닌 거잖아!” 엄마 말도 맞다. 나는 여자고 페미니스트지만 페미니스트가 꼭 여자는 아니니까.

작년 영국 Elle 12월호에서 재미있는 특집을 진행했다. ‘this is what a feminist looks like’라는 글자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남성 연예인들 특집이었다. 유튜브에서 <Aziz Ansari is a Feminist (Korean sub)>라고 검색하면 볼 수 있는 아지즈 안사리의 페미니스트 선언 영상은 조금 더 재미있다. 아지즈 안사리는 단어로서의 페미니스트에 대해 먼저 정리했다. 페미니스트는 그저 남성과 여성에게 동등한 권리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만일 양성에게 동등한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면 페미니스트라고 해야 한다. 그게 바로 단어를 제대로 쓰는 법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글로 읽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게 이야기하니 한 번 보시길. 옆에 있을 법한 남자의 페미니스트 선언을 보고 싶다면 <여성혐오 발언 장동민 · 유세윤 · 유상무,  KBS서 퇴출하라>(여성신문, 2015년 4월 17일 기사, 이세아 기자)에 남성과 여성 페미니스트가 1인 시위하는 사진이 있으니 사진을 참조하는 것도 가능하다.

나는 엠마 왓슨의 UN 연설 영상을 좋아한다. UN 양성평등 캠페인인 <HeForShe>를 위한 연설에서 엠마 왓슨은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이야기한다. “페미니즘은 남성과 여성이 평등한 권리와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신념”이며 양성평등은 남성과 여성 모두 성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니 함께 하자고 청중들을 초대한다.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를 종합하자면 페미니스트는 페미니즘을 지지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페미니즘은 양성이 평등한 권리와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성차별주의에 반대하는 여성주의다. 성차별주의에서 오는 성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건 남성과 여성, 우리 모두에게 좋은 것이다.
나도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무의식적으로 목에 핏대를 올리며 소리를 지르거나 B사감처럼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을 떠올렸다. 몇 주 전까지. 모든 변화는 트위터에서 시작되었다.

2015년 2월 10일 트위터에서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 운동이 시작되었다. 계기는 김태훈 칼럼니스트의 칼럼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였다. 이때 여성이 겪는 억압이나 차별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사람들이 개인적 경험을 고백하면서 페미니스트임을 선언했다. 이후 4월 11일 작년 8월 옹달샘 팟캐스트에서 장동민 · 유세윤 · 유상무가 나눈 여성혐오 발언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여성혐오라는 단어가 가시화되었다. 마침 그 전날 MBC에브리원의 <결혼 터는 남자들>에서 김성주가 한 발언들과 맞물려 충격은 두 배. 김성주는 물론 옹달샘 멤버들이 오히려 더 많은 지지자들을 얻은 현 상황을 보면 경악스럽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이유로 외면하며 하루하루 살아왔더니 여성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일이 당연한 세상이 와 있었다.

그래서 그날 최소한의 일부터 시작했다. 장동민은 <마녀사냥>에서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는 여자가 최악이라고 말했다. 트위터에서는 그 말을 구호로 만들었다. ‘#설치고말하고생각하고’ 혹은 ‘#GoWildSpeakLoudThinkHard’.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이 해시태그를 통해서, 그리고 친구들과 이 구호를 알리는 다양한 이미지들을 공유하고 대화하고 있다.

칼럼을 쓰면서도 평소에도 페미니스트라는 선언을 반복해서 하고 있다. 여성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발언들을 불편하다는 이유로 외면한 결과가 얼마나 처참한지 지금 겪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외면하지 않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 벨 훅스는 말한다. 페미니즘은 여성이 선택의 권리를 되찾는 것이며 “페미니스트 정치학을 선택하는 것은 사랑하기를 선택하는 일이다.”(벨 훅스 저, 박정애 역, 『행복한 페미니즘』, 백년글사랑, 2002년, 226쪽.)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1 18: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