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의 생활 심층취재]

연구자 보육권에 대한 포괄적인 공감이 필요하다


지난 4월, 대한민국 최초로 ‘워킹맘, 워킹대디 지원센터’가 문을 열었다. 저출산 대응정책의 일환으로 마련된 소위 ‘일, 가정 양립지원정책’이 소기의 성과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정부의 ‘일, 가정 양립지원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있으니, 바로 대학원에서 학업을 주로 삼는 대학원생들이다. 조주은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에 따르면, 현재의 ‘일, 가정 양립지원정책’은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노동자들만을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 부모학생, 곧 대학원생들은 지원 대상에서 배제된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맞벌이 가정도 아니기 때문에 보육시설 입소 순위에서도 밀리기 일쑤다. 학업과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하는 스터딩맘, 스터딩대디들은 이처럼 정책적 지원의 사각시대에 놓여 있다. 그렇다면 이들 부모 대학원생들은 학내에서는 배려와 격려 속에 학업을 지속하고 있을까.


남몰래 눈물 흘리는 부모학생들의 고군분투기

박사과정 대학원생 A씨는 오늘 큰마음을 먹고 아이를 학교에 데려 왔다. 학과 세미나가 있는 날이지만 아이를 맡아줄 곳이 없어서 어렵사리 학교에 데려 왔다. 세미나 시간에도 여러모로 눈치가 보였지만 아이가 울기 시작하자 더욱 난처해졌다. 모유 수유를 할 곳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그래서 황급하게 달려간 곳은 여자 화장실이었다. 좁은 화장실 칸에 들어가 수유를 하려니 갑자기 내가 왜 공부를 하나 싶은 서글픈 생각이 든다. 지저분한 공간에 있는 아이에게도 미안해진다. 이공계 대학원생 B씨는 임신을 했지만 4개월째 그 사실을 실험실 동료들에게 숨겨 왔다. 아이를 가진 것은 분명 축하받을 일인데도 자신으로 인해 프로젝트에 차질이 생긴다고 눈총을 받을 생각에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지도교수에게 말을 꺼내자 역시나 한 시간 가까이 꾸지람을 들었다. 심지어 지도교수는 왜 미리 피임을 하지 않았느냐고 나무라기도 했다. 한편 박사논문을 집필 중인 대학원생 C씨는 오늘도 아이를 시댁에 맡기고 학교에 나왔다. 엄마가 무슨 공부냐는 시댁 식구들의 질책에 자신이 마치 죄인처럼 느껴졌다. 도서관에서 공부에 집중하려 하지만 아이 걱정으로 좀처럼 논문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육아와 학업 어느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괴롭고 울적하다. 최근에는 우울증 증세마저 심각해지고 있다. 아이 엄마가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는 것은 주제넘은 호사를 부리는 일인 것만 같다. 공부를 할수록 아이에게 죄를 짓는 느낌마저 든다. 이상의 사례는 대학원 사회에 실재하는 부모학생의 모습이다. 육아와 학업을 병행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지는 것이 오늘날 ‘스터딩맘’들의 현주소다.


부모학생조합 결성해 본부 측에 정책 마련 요구

그렇다면 대학원 사회의 부모학생에 대한 이같은 무관심과 배려 없음은 당연한 일일까. 서울대 부모학생조합 ‘맘인스누’ 대표 서정원 씨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지난 2012년 결성된 ‘맘인스누’는 지난 3년간 서울대 본부 측에 지속적으로 건의한 결과 부모학생들을 위한 정책을 이끌어냈다. ‘맘인스누’를 처음으로 조직한 서정원 대표는 육아와 학업을 병행하며 극심한 우울증을 겪었다고 했다. 두 아들을 낳아 키우면서 화장실에서 모유 수유를 하는가 하면, 쉬는 시간에 벤치에 앉아 남편이 옷으로 가려주는 중에 아이에게 젖을 물리기도 했다. 여학생휴게실에서 아이를 돌보려다 눈총을 받기도 했고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에 출입하려다 쫓겨날 뻔하기도 했다. 시간 부족과 체력 부족으로 인해 학업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무렵에 서정원 씨는 자신처럼 고통스러워하는 부모학생이 또 있으리라는 생각하고 다른 학생들과 소통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처음에는 단 3명으로 시작한 조촐한 모임이었다. 그러나 이후 네이버에 인터넷 커뮤니티를 만들고 카카오톡에 단체 채팅방을 만들면서 수백 명이 가입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이가 아픈 위급 상황에 대처하는 법이나 휴일 나들이 장소와 같은 육아정보를 나누기 시작하던 것이 차차 품앗이 형태로 발전했다. 한 회원이 지방에 학회를 가게 되었는데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다고 하면 서울에 있는 다른 회원이 아이를 맡아 돌보아주었다. 서로 잘 안 쓰는 육아용품을 교환하기도 했다. 매주 1회 모임을 정례화하여 나눔의 시간을 가지던 중 차차 학내의 불합리한 환경을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대학신문과 중앙일간지에 글을 썼고, 학생복지 관련 부서와 구청 담당부서에 지속적으로 정책을 건의했다.
그 결과 학내에서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부모학생들의 출산휴학 기간이 최대 3년간으로 연장됐고 임산부 학생들이 장애인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임시주차증을 발급 받을 수 있는 정책이 마련되기도 했다. 또한 임산부와 영유아 동반 학생을 위한 대출 서비스도 새롭게 생겨났다. 중앙도서관 대출실에 직접 방문해 원하는 자료를 요청하면 담당 직원이 서고에서 책을 가져다주는 방식으로 서비스가 개선되었다. 영유아 동반 부모학생들에게는 금지구역처럼 여겨지던 도서관 출입도 일부 허용되었다. 중앙도서관 서고를 제외한 4층 로비까지 출입이 가능하도록 제도가 개선되었다. 부모학생조합 ‘맘인스누’는 최근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전환하여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통해 민주적공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 중이다. 비혼모에게 쓰지 않는 육아용품 전달하거나 2년간 기저귀 비용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부모학생 배려하는 해외 대학 사례들

해외 유수 대학의 사례들은 부모학생을 배려한 양육, 재정, 학사 등의 지원 정책을 운영하며 가족 친화적인 캠퍼스 분위기를 형성하는 바람직한 사례를 보여준다. 한국연구재단 프로젝트 지원을 받아 ‘맘인스누’ 구성원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 버클리 대학의 경우 자녀를 가진 대학원생들에게 정규학기 900달러, 계절학기 600달러를 등록금에서 환급해 자녀보육 비용으로 지원한다. 또한 위급 상황 시 매년 60시간까지 아이(3개월~만5세)를 맡길 수 있는 단기 보육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스탠퍼드대학교는 기혼자 대학원생들이 가족 기숙사에 입사할 수 있도록 규정이 마련되어 있으며 캠퍼스 곳곳에 22개의 수유실이 비치되어 있다. 시카고대학의 경우는 별도로 부모학생지원센터를 마련되어 있기도 한데, 논문 집필방에서 학생이 논문을 쓰는 동안 돌보미가 아이를 돌봐주는 정책을 시행 중이다.

이는 비단 해외 일부 대학의 사례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부모학생이 학문적 목표와 가정을 돌보는 책임을 균형 있게 유지하도록 지원하는 것은 대학이 행해야 할 마땅한 의무이기 때문이다. 편하게 공부하려면 외국에 가라는 말을 하는 대신 한국 사회도 아이를 키우면서 공부할 수 있는 사회로 바꿀 수는 없을까. 이를 위해서는 당장 부모학생을 위한 공간 마련이 먼저 시급하다. 어린이집을 비롯한 보육시설이 마련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이 동반 연구 공간도 설치되어야 한다. 유축실과 수유실이 캠퍼스 곳곳에 설치되어 영유아를 동반한 대학원생이 곤경을 겪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들이 연구에 몰입할 수 있도록 기혼자를 위한 기숙사를 제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부모학생들이 육아로 인해 경력단절을 겪고 다시 대학원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출산휴학 기간을 늘리는 것도 필수적이다.

환경 미비로 인해 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나 논문을 쓰지 못해 학위를 못 받은 엄마, 아빠들은 우리 주변에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지금 이 시각에도 캠퍼스 어디에선가 육아과 학업을 병행하려는 노력에 지치다 못해 학업을 포기하려는 부모학생연구자가 있을 것이다. 우수한 연구 인력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품은 연구자가 사회적 배려의 부족으로 인해 뜻을 꺾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더 이상 부모학생의 악전고투를 개인의 차원으로 돌리며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연구자 보육권에 대한 포괄적인 합의와 공감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사 : 선민서 기자
일러스트 : 강세진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1 20:1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