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기획] 대학원생의 생활 심층취재

나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이면서 공부를 하는 ‘학생’입니다



연구와 육아를 병행하는 대학원생들, 이른바 ‘부모학생’들을 만나기란 전공을 불문하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저출산 고령화의 가속화를 염려하며 문제를 해결하자는 각계각층의 공허한 목소리가 높은 지금의 한국 사회 속에서, 결혼과 출산, 육아라는 인생의 단계들을 착실하게, 혹은 과감하게 선택한 대학원생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본지는 현재 아이를 키우면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원우 네 명을 만나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부모학생의 삶에 대해 들어보았다. 그들이 가진 고충과 사정은 각기 달랐지만, “박사 과정 중에 임신과 출산을 고려하는 후배가 있다면 꼭 말리고 싶다”라는 의견에는 다들 입을 모았다.


육아 때문에 강의를 한 학기 쉰다고 하면 잘릴 것

국어국문학과 박사수료를 한 A씨는 5개월 된 아이의 엄마이다. “박사 과정 중에 임신을 해서 수료 후에 아이를 낳았어요. 임신 상태로 수업을 들었고 대학 강의까지 12학점을 맡아 하다 보니 체력적으로 많이 무리가 됐었죠. 입덧 증세가 심해서 수업 듣거나 강의를 하는데 여러모로 힘들기도 했고요. 출산예정일이 12월이라 학기를 마치기 전이었어요. 그래서 11월에 겨우 보강을 했는데 만삭인 몸으로 강단에 서면 제 몸이 무거워도 학생들 눈치를 보느라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없어 힘들었어요.

지금은 대학 글쓰기 강의를 14학점 맡아 하고 있는 상황이라 바쁜 것은 여전합니다. 이번 학기 못하겠다고 하면 당장 강의가 잘리는 상황이니 여건이 힘들어도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해야죠. 지금 아이는 대구에서 시부모님이 봐주고 계셔서 주말마다 대구로 갑니다. 어쩌다 서울에 데리고 있거나 학교에 데리고 오려고 해도 수유실도 없어서 여간 난처한 게 아니에요. 동원글로벌리더십센터에 수유실이 하나 있다고 들었는데 문 닫는 시간이 너무 빨라요. 대학원생들은 사실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서 공부를 해야 하는데 충분한 도움이 되기 힘듭니다. 오죽하면 화장실에서 수유하거나 유축하는 사람들도 있겠어요. 저는 결국 단유를 하고 이유식을 먹이는데 아이 건강에 안 좋을까봐 마음이 많이 쓰입니다.

공부를 하면서 아이를 키우면 시간도 없고 체력적으로 손실이 커요. 월, 화, 수요일에 강의하고 수업 준비를 하고 나면 기진맥진해지죠. 목요일에 겨우 대학원에 나와서 논문 준비를 하려고 하는데 생각만큼 진도가 나가지 않아요. 공부 찔끔 했나 싶은데 금요일이면 다시 대구에 가서 일요일까지 있다가 와야 하죠. 무엇보다도 아이 생각이 나서 공부에 집중이 잘 안 돼요. 이유식은 잘 먹었나, 아픈 데는 없나 걱정이 돼요. 제가 강의를 나가는 학교에서는 학교 안에 어린이집이 있어서 교직원과 강사들이 9시부터 6시까지 이용할 수 있어요. 정말 부럽죠. 아침에 아기랑 손잡고 학교에 나와서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저는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그러다 6시에 다시 아이 데리고 들어갈 수 있으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주말에도 운영하면 학생들도 편안한 마음으로 아이 맡기고 공부에 전념할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선배들이 아이 낳고 박사논문을 몇 년씩 미뤄진다고 했는데 왜 그랬는지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요. 공부를 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드네요.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고요. 어떻게는 버텨야지, 하는 심정으로 버티고 있어요.”


벌써 5학기 째 휴학 중…후회할 때 많아

이공계 전공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31살의 B씨는 현재 22개월 된 아이의 엄마이다. “임신을 한 것을 알게 된 건 박사 2학기 때였어요. 계획에 없었던 임신이었죠. 저는 당시 연구조교였고, 매일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가 넘어서 퇴근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저희 실험실에서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2개나 있었기 때문에 주말에도 출근해야 할 때도 있었고, 가끔 야근도 불사했습니다. 하지만 첫 아이인데다가 초기에 조심해야 한다는 의사선생님의 당부도 있어서 교수님께 임신 사실을 알려드렸어요. 실험실에 여러 약품과 접착제 등이 널려 있어서 걱정이 되었거든요. 안 그래도 연세가 많으신 남자 교수님이라 말씀드리는 것이 어려웠는데, 말씀을 드리는 순간에 한숨을 쉬셨어요. 결국 프로젝트에서 빠지게 되면서, 제가 해야 할 몫을 다른 동료들이 맡아서 해야 했기 때문에 뒤에서 싫은 소리들을 하는 걸 알고 있었어요. 임신 소식에 축하를 받지는 못할망정 욕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서러워서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운적도 있네요.

아이를 낳고 벌써 5학기 째 휴학 중입니다. 아이를 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요. 저희 친정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는 저희 오빠 부부의 애들을 두 명이나 봐주고 계셔서 부탁드릴 수가 없고, 시댁은 지방인데다가 칠순이 넘으신 시아버지만 계세요. 남편도 지금 박사 과정 중인 대학원생이기 때문에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아 어린이집이나 베이비시터는 생각도 못합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제 동기들이 벌써 박사 수료하고 큰 연구들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리는 것을 보면 제 처지가 생각나 우울해져요. 손에서 공부를 놓은 지 오래라서 복학한다고 하더라도 잘 따라갈 수 있을지도 걱정이에요. 다음 학기에는 꼭 복학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오빠에게 조카들을 어린이집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하고 친정집에 맡기는 수밖에는 없는 것 같아요.

아이는 정말 예쁘지만 사실 지금 상황을 후회할 때가 많아요. 좀 더 자리를 잡은 뒤에 임신을 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어디 가서 후회한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요.”


어머니가 아기 봐주셔…고정적 수입 없어 고민

인문계열 박사 수료 상태인 36살 C씨는 9개월 된 아이의 아빠이다. “아내와 대학원에서 만났습니다. 아내가 제 후배였어요. 제가 나이가 있기 때문에 결혼과 출산을 서둘렀습니다. 아내가 석사 수료 상태일 때 임신을 했고, 현재 석사 논문을 쓰는 중입니다. 주변에서 아이가 돌이 지나면 기어 다니기 시작하기 때문에 그 전에 논문을 쓰는 게 편할 것이라고 충고를 해줬다는군요. 아이가 만으로 6개월 될 무렵에 하루 6시간 베이비시터를 고용했고, 아내는 그동안 학교에 가서 논문을 쓰면서 한 달을 보냈습니다. 그때 제가 논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월급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시터를 고용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었지만, 이번 학기부터 청주와 인천에 있는 대학으로 강의를 나가게 되면서 학원 일을 그만두게 되어 수입이 절반 이하로 줄어버렸어요. 그래서 결국 남양주에 사시던 저희 어머니가 집에 오셔서 계시게 되었어요. 어머니가 옛날 분이시다 보니 아내가 공부를 계속하는 것을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제가 얼른 자리를 잡기를 바라시고 아내가 그런 저를 내조해야 한다고 생각하시죠. 겉으로 별 말씀은 없으시지만 아내가 어머니 눈치를 많이 보고 논문을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게다가 핏덩이 아기를 두고 매일 학교로 나가면서 애타는 마음이 들어 집중이 잘 안 되는 모양입니다. 저는 가운데에서 어머니께 죄송하기도 하고 아내에게 미안하기도 해서 둘 사이를 조율하느라 애를 먹습니다.

이런 저런 어려움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좋은 수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냥 버티고 있습니다. 제가 육아에 신경을 쓴다고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아내에게 더 많은 책임이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또 아내가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을 시작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대책이 없습니다. 어머니도 연세가 있으신데 언제까지고 부탁드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요. 아이는 점점 더 커지면서 육아 비용도 더 많이 들 텐데 고정적인 수입이 없으니 그것도 걱정이에요.

요즘에는 지인의 소개로 자서전 대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아시면 또 아내에게 뭐라고 하실까봐 몰래 하고 있어요. 강의 준비하고, 지방으로 강의를 다니고, 아이도 보고, 아르바이트까지 하다보면 제 공부는 언제 하고, 논문을 언제 쓸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제가 아는 기혼자 선배들 중에서 아이를 낳은 뒤 학원 강사나 과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다가 아예 그쪽으로 정착한 사람들도 많아요. 한번 시작하면 돈을 생각보다 많이 벌기 때문에 그만두기가 어렵다고 하더군요. 저도 그렇게 될까봐 두렵습니다. 마음이 약해서는 애 키우면서 공부 못한다, 마음 독하게 먹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그것이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라고 지도 교수님이나 선배들이 말씀해주시는데 그게 말처럼 쉽나요.”


연구자는 임신과 출산 포기해야 하나

사회계열 박사 수료 상태인 D씨는 현재 28개월 된 아이의 엄마이다. “박사 과정 중에 임신과 출산을 했지만 딱 한 학기만 휴학했어요. 아기가 12월에 나왔는데 바로 다음 해 3월부터 학교 가서 수업을 들었어요. 결석이 잦을 수밖에 없었지만 발제도 하고 과제도 제출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어요. 출산 후에 주 양육자가 자주 바뀌면 아이한테 좋지 않다고 하고, 또 그맘때가 아이와 엄마의 애착 형성에 제일 중요한 시기라고 하지만 이를 악물고 학기를 마쳤어요. 제도적인 장치가 아무것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엄마의 죄책감을 키우는 그런 말들을 다들 걱정해주는 듯이 해주더군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정말 몸이 많이 상한 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그때 무리하면서 학교를 계속 다니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공부를 한번 쉬면 다시 시작하기 쉽지 않잖아요?

제가 육아와 연구를 병행할 수 있었던 것은 주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줬기 때문이에요. 일단 저는 시댁과 친정이 모두 서울에 계셔서 번갈아서 아이를 맡겼고, 양쪽 부모님이 모두 협조적으로 아이를 봐주셨어요. 특히 친정 부모님이 제가 공부를 그만두게 될까봐 노심초사하고 계세요. 친정 부모님께 아직도 경제적 원조를 받고 있어요. 또 미혼인 제 동생과 주부이신 남편 누님께 아이를 맡기기도 했어요. 세미나 할 때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서 데려가기도 했는데, 같이 세미나를 하는 동료들이 기꺼이 이해해줬어요. 회사원인 남편은 주말마다 집에서 아이를 봤고요, 저도 틈이 날 때마다 아이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려고 정말 애썼어요.

저도 주변에 도움을 청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도 잘 도와줬어요. 만약 저처럼 운이 좋은 상황이 아니라면 육아와 연구를 병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제 경우가 특이한 케이스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요. 사실 도움을 청할 곳이 마땅치 않은 대학원생들이 더 많아요.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는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고요. 특히 대학원에 다니면서 공부를 계속하려는 사람들이 힘들다는 목소리를 내면 마치 이기적인 욕심으로 스스로 택한 길이면서 징징거린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럴 때 정말 화가 나고 서럽죠. 그럼 연구자가 되기로 선택한 사람들은 결혼과 출산, 육아를 모두 포기해야 하나요?”


인터뷰 : 신아현 기자, 선민서 기자
일러스트 : 강세진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1 16:3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