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칼럼] 시간강사라는 행복한 유령들

허 민 (시간강사)


내가 출강하는 대학 중엔 강사 휴게실이 없는 학교가 있다. 공강 때면 주로 화장실이나 인근 산 중턱에서 시간을 보내곤 하는데, 생각보다 비참하거나 기분 나쁘진 않다. 내성이 생겨서라기보다는 시간강사라는 직함(?)조차 얻기 힘든 수료생의 현실에서, 그래도 나정도면 ‘운’이 꽤나 좋은 편에 속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강사 휴게실의 분위기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곳의 풍경이란, 어색한 눈인사와 잠깐의 눈붙임, 커피 한 잔, 독서, 수업점검 등으로 채워지곤 하는데, 이 짧은 침묵의 시간이 마냥 편하지는 않다. 당장 다음 학기 강의조차 보장 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강사휴게실을 자신의 공간으로 마음 편히 생각할 강사가 어디 있겠는가. 도서관에 가려면 사서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벤치에 앉아 있으면 번번이 마주치는 학생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그러니 나는 공강 때면 매번 산에 오른다. 오늘날 한국의 대학에는 시간강사를 위한 공간이 없다.

물론 시간강사를 위한 공간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장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대학사회에서 시간강사가 차지하고 하고 있는 위태로운 지위를 암시하기도 한다. 단기 근로계약직 종사자에, 4대 보험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고,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으며, 대학사회에서의 참정권도 보장받지 못한다. 시간강사는 ‘주장할 권리’가 박탈되었음에도, ‘강의의 질’을 유지해야 하는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 강의평가는 강사력 증진의 참고자료가 되기보다는 외려 ‘해고의 근거’가 된다. 시간강사는 교육자로서 존재할 수 있는 물질적 기반을 상실한 상태에서, 오직 ‘사명/정신’으로써만 직무를 수행해야 하기에, 그야말로 ‘유령적 존재’라 할 수 있다.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을 모두 박탈당한 상태에서 존재하는 ‘살아있는 죽음’으로서 시간강사가 대학사회를 부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강사조차도 될 수 없는 적지 않은 젊은 연구자들이 있다. 대학사회에서 시간강사가 유령 같은 존재라면, 시간강사가 못 된, 박사수료생이나 학위자들은 유령 조차되지 못한 자들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 인문학 전공자의 경우, 시간강사가 아니면, 대학사회에서 연구자로서 지속할 수 있는 경제적 수단이 없기 때문에, 그들 대부분은 대학 바깥을 배회하게 된다. 사교육계를 전전하거나, 교정알바를 하고, 운이 좋으면, 대기업 입사시험 출제위원으로 발탁(?)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자신의 전공과 무관한, 이러한 소일거리만으로, 생계를 유지해가며 연구자로서의 정체성까지 지켜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대학사회에서 유령으로나마 존재할 수 있는 시간강사는 그저 행복할 수밖에. 시간강사들은 교육자로서 존재할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을 박탈당한 상태에서, 오직 시간강사조차 되지 못한 자신의 동료들을 보며 안도해야 하는, 구조적 폭력 위에 서 있다. 대학사회의 가장 어두운 심연을 체현하고 있는 시간강사들은 오늘도 행복한 눈물을 흘린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1 07:1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