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읽기] 베이컨. 프랜시스, 『새로운 아틀란티스』, 김종갑 역, 에코리브르, 2002.

근대의 유토피아: 새로운 아틀란티스

김민철 자유기고가



공부를 하는 이들 치고 프랜시스 베이컨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베이컨은 흔히 철학을 이야기할 때 경험론의 대표적인 이론가로 나오고, 귀납법을 이야기한 사람으로 다루어진다. 베이컨은 1561년에 태어나서 1626년에 숨을 거두었는데, 극도로 혼란한 시대를 살면서 그는 철학에 대한 개념을 급진적으로 바꾸어 놓는데 일조했다. 그는 기존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견지하던 철학에 대한 생각과 세계관을 바꾸려했던 것이다. 베이컨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지나치게 천착하고, 당장 먹고사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철저히 눈에 보이는 것에 주목해서 관찰과 실험을 중시했고, 사는 데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학문을 제시하려했던 것이다. 이러한 베이컨의 철학은 훗날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고, 이후 그는 근대 철학의 대표적인 이론가 중 하나로 자리매김 하게 되는 것이다.


베이컨의 유토피아론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처럼 중요한 사상가로 간주되는 프랜시스 베이컨이 그 유명한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에 비견될 만한, 하나의 이상향을 이야기의 형식을 통해 제시하기도 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는 것이다. 지금 소개하는 매우 얇은 책인 『새로운 아틀란티스』에서 베이컨은 나름의 유토피아론을 제시하는데, 이것은 그의 대표작인 『신기관』에 비하면 사람들의 관심을 크게 얻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매우 중요한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우리가 이 책을 통해 근대의 정신과 근대사회의 기본 원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베이컨의 이야기는 주인공 일행이 육지에 표류하게 되면서 시작한다. 주인공 일행은 표류한 지역의 안정과 풍요로움에 매료되었고, 그 사회의 작동원리를 독자에게 설명해준다. 이른바 새로운 아틀란티스가 누구의 주도하에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솔로몬 전당이라고 불린다는 학술원에 주목한다. 학술원은 지금까지 지구상에 있던 제도 가운데 가장 고귀한 기관이고 왕국의 등불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학술원의 회원은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게 되는데, 주인공을 만난 학술원 회원은 학술원의 목적이 사물의 숨겨진 원인과 작용을 탐구하는데 있다고 말한다. 그럼으로써 인간 활동의 영역을 넓히며 인간의 목적에 맞게 사물을 변화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베이컨 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생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사물의 원인과 작용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말했던 이데아나 본질을 알아가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또한 앎을 통해 올바름이나 궁극의 행복을 추구하기보다는 특정 목적에 따라 사물을 변화시키려 한다는 점을 통해 우리는 베이컨이 말하는 학문이 전통적인 생각들과 얼마나 큰 차이를 보이는지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새로운 아틀란티스에서 학술원 회원들은 궁극적으로 이들이 믿는 하느님의 섭리와 하느님이 만든 피조물을 연구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들은 과학과 기술 그리고 그것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서 연구하기도 하고, 사회적 관행들에 대해서도 분석한다. 회원들은 또한 기존의 연구 성과들을 다시 관찰하고 연구하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새로운 원리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학술원 회원들은 지구의 곳곳을 다니며 자연의 작동원리와 기술을 익히려 노력할 뿐만 아니라, 세상의 거의 모든 것들을 연구한다. 그리고 여러 곳을 다니며 새로운 발견이나 유용한 발명을 알리기도 한다.


모어의 유토피아와 새로운 아틀란티스

베이컨이 이 책에서 설파한 학술원을 근간에 두는 유토피아는 인간의 지식과 과학의 힘으로 무한정의 편리함과 풍요를 추구하는, 가능성과 낙관의 기운이 넘쳐흐르는 패기로 충만한 곳이다. 베이컨은 옳고 그름을 묻지 않는다. 대신 인간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묻는다. 반면 이보다 한 세기 전에 토마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이익과 풍요를 경멸했다. 이 글에서 보석은 죄인을 상징하는 표식일 뿐이다. 모어는 대신 옳고 그름을 물었고 행복함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불과 한 세기 사이를 두고 비슷한 공간에서 활동했던 두 학자의 생각은 이처럼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두 학자 그린 유토피아 중 어느 것이 바람직한지를 묻는 것은 현재의 시점에서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작금의 세계는 모어의 논리보다는 베이컨의 논리에 상대적으로 가깝게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 대부분의 곳에서 누군가는 베이컨의 논리를 힘주어 설파하고 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1 15:2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