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인터뷰] 공공성 잊고 기업화 된 대학의 민낯을 보라

오찬호 <진격의 대학교:기업의 노예가 된 한국 대학의 자화상> 저자


대학은 시장의 편협한 명령에 항복하도록 내버려두기에는 너무나도 중요한 공적 기관이다.
-제니퍼 워시번


  ‘대학기업화’는 이미 낯설지 않은 화두다. 2000년대 이래로 기업이 대학을 인수하고 대학 총장으로 기업의 총수가 임명되는가 하면, 대학 캠퍼스 내에 대규모 상업시설이 들어섰다. 한편 대학구조조정의 흐름 속에서 대학순위평가가 시행되고 ‘취업률’과 같은 요소가 대학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등장했다. 취업률이 낮은 학과들은 통폐합됐으며 대학 간 경쟁의 분위기가 과열됐다. 이처럼 ‘대학기업화’라는 화두는 대학이 기업으로부터 재원을 마련하고 기업이 요구하는 가치를 적극적인 방향으로 받아들이며, 나아가 대학 스스로가 기업이 되기도 하는 일련의 과정을 포함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과정이 우리의 구체적 일상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본지는 최근 󰡔진격의 대학교:기업의 노예가 된 한국 대학의 자화상󰡕를 발간한 오찬호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을 만났다. 오 연구원은 “대학기업화가 일상적인 차원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며 운을 뗐다. “분명 대학기업화가 새로운 현상은 아닙니다. 이와 관련된 문제들은 이미 많은 각도에서 제기되어왔습니다. 그러나 막상 대학의 기업화가 구체적으로 우리의 생활에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무감의 대학, 무감한 강의실

  오 연구원의 최근 저작은 ‘진격대’라는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서 이윤 창출이라는 단일한 목적을 향해 진격해나가는 오늘날 한국 대학의 천태만상을 보여준다. 넥타이 메는 법이나 대기업 자기소개서 작성법을 배우는 필수 강의 개설, 훈민정음 강독을 영어로 강의하는 풍경 등 각종 사례들이 제시된다. 이러한 형식의 책을 쓰게 된 이유를 물었다. “사실상 이 책의 모든 사례들은 기업화된 대학의 암울한 모습으로 수렴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애초에 책을 통해서 보여주려 했던 것은 오히려 대학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례들의 구체적이고 다양한 결입니다. 그렇게 암울한 현실의 진실을 사회학적 렌즈를 끼고 더 적나라하게 보여주려 했습니다. 다만 이 무거운 문제를 더 대중적인 차원으로 의제화 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르포형식을 선택하면서도 ‘진격대’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설정을 통해 끝까지 잘 읽히게 하려 했습니다. 문제의 무게를 유지하면서도 책을 덮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더 풍성하고 더 살아있는 사례를 될 수 있는 한 많이 제시하려 한 것입니다. 물론 이 사례들은 모두 제가 대학 공간 내에서 직접 겪고 들은 것입니다. 진격대는 대학에 몸을 담고 있었던 제 경험의 산물이자 우리 대학의 현실입니다.”


  오 연구원은 직접 대학 강의를 하면서 제도적인 변화에서 뿐 아니라 대학 내 구성원들의 변화로부터 기업화된 대학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7년 동안 시간 강사로 있으면서 대학 내의 ‘어떤 공기’를 감지했습니다. 특히 학생들이 사회적 문제나 연대의 방식에 대해서 상당히 무감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민간인 사찰이나 국정원 댓글 사건이 민주주의의 훼손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강의를 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민주주의의 훼손 자체가 왜 문제시 되어야 하는지를 마음으로 느끼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는 곤란했습니다. 이후 세월호 사건이 경제 성장 패러다임을 신봉하는 우리 사회가 낳은 문제라고 강의 했을 때에는 대부분이 무관심할뿐더러 어떤 학생들은 제 발언 자체를 음모론으로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이런 식의 분위기를 감지한 언젠가부터 학생들의 무감함, 그리고 각자도생의 논리에 익숙해져 있는 그들의 태도가 대학기업화의 추세와도 맞물려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그 구체적인 사례들을 정리하고 모으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어서 오 연구원은 대학기업화가 무감한 대학생은 물론이고 무감한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기능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취업사관학교로 전락한 대학에서 취업매뉴얼을 익혀야 하는 학생들의 삶에 협력과 연대, 공동체에 대한 감각은 개입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취업이 지상과제로 떠오른 이상 누구든 제 코가 석자이지 않겠습니까. 이미 잘 알려졌다시피 대학은 돈 이외의 것에는 반응하지 않는 무감 그 자체의 공간이 되었고, 더불어 무감한 강의를 듣는 무감한 학생들을 양성하는 역할을 해왔던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대학과 대학생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잠재적 대학생들과 대학 졸업생의 문제이며, 더불어 그들 가족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곧 우리의 감각이 길들여지는 이야기입니다. 대학이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단계로 여겨지는 만큼 대학의 기업화가 우리의 일상에도 영향을 미치는 건 당연하겠지요. 웃자고 하는 말이지만, 저만 해도 아직 초등학생인 제 딸이 주요과목을 공부하지 않고 역사책을 볼 때 때때로 미묘한 감정에 휩싸입니다. ‘얘가 이럴 때가 아닌데’ 하고 말예요.”



경쟁을 통한 퇴출이 가능하다는 인식 확산이 더 문제

  최근 학과제 폐지를 반대하는 교수들에게 기업 총수인 이사장이 “가장 피가 많이 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목을 쳐주겠다”면서 ‘막말 파문’을 일으킨 중앙대의 사례는 대학기업화와 연결되는 대학평가 및 대학구조조정의 폐해를 새삼 환기시킨다. 지난 4월 임시국회에서는 이른바 ‘대학구조개혁법’의 통과를 위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대학구조조정은 박근혜 정부의 4대 국정과제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이번 구조개혁법이 필연적으로 대학기업화로 귀결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학평가 및 구조조정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현재 대학평가의 기준은 취업률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실정입니다. 교육부 장관이 이미 기업이 직접 운영하며 학과재편을 진행 해오던 중앙대를 대학구조개혁의 모범으로 꼽으며 취임 후 첫 행선지로 정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더욱이 대학들은 취업률이 낮은 기초 학문 학과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을 것입니다. 물론 대학을 평가하는 기준에 취업률이 포함되어있는 것 자체만을 가지고 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허나 그것이 마치 만고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 연구원은 대학평가와 구조조정의 더 본질적인 문제로 경쟁을 통한 퇴출이 가능하다는 인식의 방향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는 점을 꼽았다. “그 평가의 기준이 대학을 평가할 때 과연 온당한 것인가, 만약 평가의 기준이 온당한 것이더라도 경쟁에 의해서 낮은 점수를 받은 영역을 퇴출해버리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경쟁을 통한 퇴출이 가능하다는 제도적인 선례를 남기고, 나아가 그러한 인식의 방식이 우리의 삶 속에 은연중에 각인되고 확산될 염려가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대학평가는 더욱 문제적입니다.”



‘반감’할 수 있는 감각을 잃지 말아야

  그렇다면 이제 대학은 어떤 역할을 해야만 할까. 그리고 진격의 방향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 걸까. 이와 관련하여 대학원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대학의 역할과 대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깊은 사회적인 대화와 합의가 필요한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화와 합의라는 길고 긴 과정 속에서 결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변함없는 명제가 있다면 대학이 우리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공적인 기관이라는 점입니다. 그 공적 기관으로서의 핵심적 역할 중에는 비판적인 시민을 양성해야 한다는 것이 있습니다. 앞서 설명했듯 지금의 대학들은 죽은 시민을 만들어냅니다. 무감을 양성하는 현재 대학의 역할과 방향이 분명 잘못됐다는 것을 명백히 깨닫고 그 어두운 민낯을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감하게 살지 않도록, ‘반감’의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대학에서 연구 인력이자 강의자로 있는 여러분이 대학기업화의 흐름에 손쉽게 편승해버리지 않길, 성과주의를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길, 그것을 거부할 용기도 낼 수 있길 바랍니다.”


■ 인터뷰·정리: 최은혜 기자 sinedoque@naver.com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1 15:28:02: